나를 기억시키는 향
“가장 좋은 기억은, 언제나 코에 남아 있다”라는 유명한 독일 작가 쿠르트 투콜스키의 말처럼 유독 찬 바람이 불면 지나가는 낯선 이의 향기가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무슨 냄새지? 무슨 향수였더라?’ 하며 심지어 지난날의 기억까지 떠오르기도 한다. 문득 딱 1초, 정말 일순간에 맡은 어떤 냄새를 통해 몇 년 혹은 수십 년 훨씬 지난 과거의 기억 한 자락 또는 사람과 공간, 그때의 분위기, 온도까지 떠오르는 경험이 한 번쯤 있을터. 이처럼 향기는 기억을 일깨우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향은 우리 내면에 깃들어 있는 갖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 또한 지녔다. 사랑, 친밀감, 포근함, 강인함, 자신감, 아련함, 평온함 등을 일깨우기도 하니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사람은 불쾌하거나 유쾌한 감정 없이 어떤 대상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라고 했다. 그 의미를 되뇌어보면 향은 우리의 감정을 고스란히 함께 담아 ‘기억’이라는 저장공간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 향에 스며든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 무슨 냄새를 맡고 있나요
매일 우리는 약 2만 5,000번의 숨을 쉬고, 12㎥ 이상의 공기를 들이마셔 폐로 보내며 숨을 쉴 때마다 수백만 개의 냄새 입자가 코로 들어간다. 향기는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매일 똑같은 일상과 환경도 향기가 더해지면 새롭게 재인식시키는 능력을 지녔다. 또한 우리가 냄새를 맡는 코, 즉 후각은 인간의 뇌와 곧바로 연결된 유일한 감각 자극으로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본능적인 인지가 이루어진다. 즉 어떠한 냄새를 맡았을 때 좋고 싫음의 분별이 본능적으로 이뤄진다는 것. 코는 첫 만남에서 이미 냄새를 인지해 눈 깜짝할 사이에 뇌에 정보를 전달하고, 뇌에서 모든 판단이 이뤄진다. 즉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서 나는 향을 통해 호감과 반감이 결정된다는 것.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 사람 7명 중 1명꼴인 15.2% 이상이 상대방에게서 나는 향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경험이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냄새가 좋게 느껴지고 자신과 냄새가 잘 어울리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갖고 끌리게 된다는 것. 그렇다면 내가 오늘 아침에 눈을 떠서 맡은 첫 냄새는 무엇이며, 지금 자신에게서 풍기는 냄새는 어떤 종류인지 후각에 집중해보자. 나와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향이 나를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어떤 향기에 끌릴까?
향수 시장 규모는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1,023% 증폭되며 코즈메틱 부문 선두권을 선점했다. 경기가 불황일 때는 소소한 행복, 소소한 자기 만족을 위해 립스틱을 구매한다는 립스틱 효과는 옛말이 된 지 오래. 이제는 자신의 후각을 만족시키고, 타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향기에 지갑을 열고 있다. 하늘 아래 같은 레드 립스틱이 없다고 말해왔듯이 이제는 하늘 아래 같은 우디 향과 같은 플로럴 향 또한 없다. 이처럼 뷰티업계에서 매일같이 쏟아지는 신상 향수 중 내게 어울리는 향수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의 저자 로베르트 뮐러-그뤼노브는 “대답은 간단하면서 복잡하다. 향은 사용하는 사람의 개성과 어울려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개성과 스타일을 정의하고 표현하는 향은 무엇인지 영국의 향 전문가이자 작가 마이클 에드워드의 <세계의 향수>에 소개된 향기 원형 도표를 통해 찾아보자.
“아무런 향기도 느끼지 못한 날은 잃어버린 날이다.” -이집트 금언
“향수를 창조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드러낸다.” -에르메스 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
“존재하는 것은 모두 향기가 있다.” -영화 <향수> 대사 중
향수는 여러 가지 향 계열로 나뉜다. 오리엔탈 향은 관능적이고 화려하다. 그리고 정향, 바닐라, 계피, 고급 목재, 이국적인 꽃과 같은 향기로운 아로마를 지니고 있다. 플로럴 향은 이름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아이리스, 장미, 재스민, 치자 등의 꽃향기가 포함된다. 이 향은 관능적인 느낌에서 우아한 느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감귤류인 시트러스 향 계열은 사시사철 여름과 태양의 느낌을 준다. 감귤류에는 귤, 레몬, 오렌지 오일 등이 함유돼 있다. 진정한 클래식은 시프레 향 계열이다. 이 향은 상쾌함과 꽃향기의 느낌을 살짝 띠는 은은하고 우아한 향이다. 푸제르 계열은 씁쓸한 느낌을 주는 허브 향이 매혹적이며, 라벤더, 오크모스, 쿠마린의 향을 베이스로 사용한다.
좋은 향수의 비밀
좋은 향기는 뭘까? 어쩌면 타인이 그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 호감과 매력을 느끼고 끌리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때 중요한 포인트는 향수를 은은하게 조금만 사용하는 것이다. 1m 주위에서 향을 감지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그리고 향수는 피부가 얇고 맥박이 뛰는 부위, 목이나 손목에 뿌려야 가장 진하게 향기를 발산할 수 있으며, 반대로 향기를 은은하게 느끼고 싶다면 머리카락이나 옷, 등 쪽에 뿌리는 것도 향을 질리지 않게 즐기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