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하는 모바일 게임은 아들과 나에게 상상 그 이상의 만족감을 안겨준다. 둘이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 시종일관 웃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물론 평소엔 아들에게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라 하고, 게임하는 시간을 정해두게 하는 등 호락호락하지 않은 아빠지만 결국 내 몸이 고단할 때는 아들에게 “게임하자!”며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간혹 남자 둘이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휴식이 필요한 요즘, 나의 최애 타임은 창문을 열어놓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주안이와 게임을 하는 시간이다.
얼마 전 주안이 방에서 주안이와 한창 게임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택배 물건을 정리하고, 마른빨래를 각자 옷장에 넣어달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알겠어! 주안이랑 이것만 하고 금방 할게.”
그런데 갑자기 주안이가 그 좋아하는 게임을 중단하고 벌떡 일어나 엄마를 도와주러 가는 것이다. “주안아, 잠깐만 지금 중요한 타이밍인데 요것만 끝나고 같이 가자!” 그런데 이 녀석, 일어나면서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엄마에게 가며 말을 잇는다. “게임은 다시 하면 되지만, 엄마 말은 지금 듣지 않으면 엄마가 서운하거나 화날 수도 있잖아.”
나보다 훨씬 나았다. 사실 내가 아내와 종종 다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원할 ‘때’ 들어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서로 누가 맞고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를 놓고 말다툼을 했는데, 주안이는 지금 내 눈앞에서 내가 그렇게 어려워하는 걸 이렇게나 쿨하게 해내는 것이다.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이 원하는 걸 먼저 해주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인데 그걸 어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내려놓는 것이 ‘게임’인데도 말이다. 순간 내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얼른 패드를 내려놓고 설거지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한 뒤, 뭔가 뜨거워진 가슴을 안고 주안이와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우리 모습을 보더니 “아직까지 게임을 하고 있냐”며 주안이를 나무랐고, 나에게 “애 교육을 이렇게 시킬 거냐”며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억울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뜨거운 남자의 마음이 통한 걸까? 그날 아들과 나는 한마디 변명 없이 쿨하게 패드를 접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각자 해야 할 일을 했다. 주안이는 다음 날 학교 갈 준비를 하고, 나는 준비를 끝낸 주안이와 독서를 했다.
어찌 보면 다른 가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이날 나는 주안이의 마음과 성장하는 모습까지 더 깊게 알게 된 느낌이었다. 그런 아들 덕분에 아들을 더 사랑하게 됐고, 아내를 더 현명하게 사랑하는 법도 배웠다. 주안이는 그렇게 하루하루 성장하는 중이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