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배우 하정우가 버디 무비 <비공식작전>으로 돌아왔다. 영화 <터널>로 ‘찐 호흡’을 맞춘 김성훈 감독과의 재회이자 불법 프로포폴 투약으로 자숙 기간을 가졌던 하정우의 스크린 복귀작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영화는 실종된 동료를 구하기 위해 레바논으로 떠난 외교관 ‘민준’(하정우 분)과 현지 택시 기사 ‘판수’(주지훈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실화에 기반을 둔 영화로, 200억원대 예산이 투입된 쇼박스표 대작이다. 영화 <신과 함께>로 호흡을 맞춘 절친 배우 주지훈과 열연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하정우는 영화 <국가대표>를 시작으로 <황해>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베를린> <암살> <아가씨> <터널> <1987> <신과 함께> 시리즈 등 시대와 장르를 막론한 대작들에 연이어 출연하며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덕분에 200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를 이끈, 최연소 1억 배우가 됐다.
최근에는 영화 <수리남>으로 제2회 청룡시리즈어워즈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정우는 “존경하는 최민식 선배님 앞에서 받게 돼 부끄럽고, 큰 영광이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오랜만에 관객을 만나는데 기분이 어떤가?
영화 <클로젯> 이후 처음이다. 어제 무대 인사를 했는데, 조금 낯설더라. 순간 ‘아, 이런 일들을 내가 오랫동안 해왔었지’ 하는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여름방학을 겨냥한 영화에 오랜만에 함께하게 됐다. 아주 특별할 것도 없지만,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새롭기도 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배우로서도 부담감이 있을 텐데, 어떻게 만들어나갔나?
캐릭터의 톤앤매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렇다고 실화라는 무게감에 눌려버리면 재미와 감동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 무게감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우회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할까? 솔직히 어려웠다. 그럴 때 감독님과 함께 작업했던 <터널>을 소환했다. 갇혀서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주야장천 눈물만 흘리면서 끝낼 건가? 김성훈 감독의 삶의 태도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낭만을 찾는다. 터널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히려 여유를 부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달리하면서 조금씩 톤앤매너를 잡아나갔다. 상황마다 나를 대입해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풀어나갔다.
김성훈 감독과는 <터널>, 주지훈 배우와는 <신과 함께>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런 이유로 신선한 느낌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새로움을 드릴까 하는 고민은 오래전부터 해왔다. 주지훈 배우와는 <신과 함께>에서 강렬한 인상을 줬기 때문에 ‘쟤네들이 티키타카하는 건 식상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서워 작품을 하는 데 주저하거나 반대되는 걸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그 식상함을 푸는 건 숙제다.
다시 재회한 주지훈과의 호흡은 어땠나?
<신과 함께>가 2018년 여름에 개봉했으니 5년 정도 흘렀다. 그사이에 주지훈 배우는 작품을 많이 했다. 그래서 기대감, 궁금함이 있었던 것 같다. 첫 촬영을 할 때 의상을 입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구력이 쌓였구나,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30대 때 만나고 40대 때 다시 만난 것이다. 또다시 호흡을 맞추니 그때의 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전작 <수리남>부터 이번 영화까지 해외 로케이션이 많았다. 힘들지는 않았는지?
<수리남>을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두 달간 촬영하고 열흘 뒤에 모로코로 넘어가 4개월간 촬영했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지낼 만했다. 훈련이 힘든 군대는 내무생활이 편하다는 말이 있지 않나. 사실 촬영이 고돼 늘 곯아떨어져 힘들다는 걸 느낄 겨를이 없었다. 마침 이슬람 국가의 금식 기간인 라마단까지 겹치는 바람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더위와 모래바람에 맞서 촬영했는데, 사람이 웃긴 게 또 적응을 하게 된다. 모로코인 스태프는 촬영하면서 물도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그 낯섦이 피곤함을 잊게 하는 부분도 있더라.
로케이션을 오래 하면 노하우가 생기지 않나?
먹는 게 중요하다. 모로코에 들어가기 전 꼼꼼하게 리스트를 미리 정리했다. 그걸 문서화해 컨테이너에 식료품을 배로 먼저 보냈다.(웃음) 예를 들어 간장 10L, 멸치액젓 5L 등등이다. 돼지고기 금지 국가라 대신 사골곰탕이나 달걀장조림, 소고기장조림 같은 걸 많이 해 먹었다. 김치도 다 먹으면 배추에 소금을 절여 남아 있는 국물에 재탕해 먹는 식이었다. 해외 로케이션을 하면 촬영 외에는 할 일이 없어 장 보고 요리하고 하는 게 중요한 일이다.
영화 내내 쨍쨍한 자연광이 인상적이었다. 의도한 바였는지 궁금하다.
해를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됐을 정도다. 해가 구름에 가려지면 촬영이 올 스톱이었다. 한국이었으면 ‘빨리 찍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해외 로케이션이라 갈 집도 없었다. 어느 날은 무심코 해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구 하나 짜증 내지 않고 모두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라. 그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모든 스태프가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 마치 영화 같았다.
감독으로서 차기작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9월 촬영 예정인 영화 <로비>는 <허삼관>(2015) 이후 약 8년 만에 선보이는 하정우의 연출작이다. 직접 주연도 맡았다. 국가 사업권을 따내려 골프 로비를 하는 연구원 ‘창욱’의 이야기다).
연기자로서 지루해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더 지루해 보이기 전에 뭔가를 해보고 싶다. 기다린다고 도전해보고 싶은 시나리오가 오는 것도 아니다. 안 온다면 내가 직접 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맞다, 개인적으로 생각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로비>를 연출하려는 것도 도전의 일환이다. 배우로서 표현하고 싶은 것에 한계를 느끼기도 하는데, 연출은 또 다른 배출 통로이다. 쑥스럽지만 내 연출의 행로를 돌아보면 감독 데뷔작 <롤러코스터>(2013)는 그냥 너무 찍고 싶은 마음에 덤볐다. <허삼관>은 내 딴에는 상업적 성공을 이뤄볼까 까불면서 만든 것 같다. 최선을 다했지만 과연 순수한 마음으로 영화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번 연출작은 기존 상업영화의 포맷이 아닌, 내가 도전하고 싶은 것을 해볼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