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이와 함께하는 여행지를 꼽을 때 나와 아내는 관광도 하고 교육 효과도 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박물관, 유적지, 랜드마크가 있는 장소 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주안이가 의외의 장소를 제안했다. “피라미드가 있는 이집트나 세계에서 가장 큰 워터파크와 사막이 있는 두바이를 가보고 싶어요.” 우리 부부는 동시에 “응? 뭐라고?” 하며 주안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내와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여행지였다.
며칠 뒤 다시 가족회의를 열었다. 주안이가 이집트에 가보고 싶은 이유에 대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피라미드가 얼마나 큰지, 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의 피라미드가 있는지 내 눈으로 보고 싶어요. 박물관에서 작은 스핑크스들을 봤는데 정말 큰 스핑크스도 직접 가서 느껴보고 싶어요.” 이어 두바이에 대해서도 말했다. “부자 나라라 도로에 슈퍼카도 많이 돌아다닌다는데 구경해보고 싶어요. 세계에서 제일 큰 워터파크에도 가보고 싶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과 7성급 호텔도 보고 싶어요. 사막 투어도요. 두바이 여행은 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예요.”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영화 <나 홀로 집에>를 본 뒤 뉴욕에 가보는 게 소원이었다. 결국 서른이 넘어 그 꿈을 이뤘다. 그런데 이 녀석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두바이를 가는 것이 버킷 리스트라고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설명하는 게 아닌가.
주안이 얘기를 다 듣고, 이제 결정을 내릴 타이밍이 왔다. 나는 “이집트는 우리가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과 여행하는 기간이 짧아 안타깝지만 이번엔 불가능할 것 같아. 두바이는 가능할 것 같지만, 사실 두바이에만 가기에는 좀 아쉬운 느낌이 있어. 유럽에 갈 때나 몰디브 같은 곳에 가게 될 때 3~4일 정도 더 기간을 잡고 두바이에 들렀다 오는 일정으로 가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아. 주안이는 어때?”라고 얘기했다.
주안이는 확고했다. “엄마·아빠도 바쁘고, 저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긴 여행을 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데 언제 그렇게 여행할 수 있겠어요? 할 수 있을 때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사실 주안이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결정해야 하는 순간 정작 나는 망설이는데 주안이는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이번 휴가 기간엔 결혼기념일과 주안이 생일이 껴 있었다. 결국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장소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사막 한가운데서 액티비티를 경험할 줄이야. 그 모래의 촉감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곳에서 열린 주안이 생일 파티도 아주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워터파크도 잊을 수 없다. 리조트 안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은 것도, 게임장에서 열심히 공을 던져 에어팟을 선물로 받은 것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아들 덕분에 생각지 못한 경험도 하고 함께 추억도 만들며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느낀다. 매일매일이 감사하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