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비누에는 공장화, 기계화, 대량생산을 통해 만든 제품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판매업에서 무시할 수 없는 최소 수량, 재고라는 부담과 적당히 합의를 본 적당한 품질과 가격대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 ‘비누의 신선함’과 ‘다양한 비누’라는 선택지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완성도 높은 수제 비누를 만들어 소개하는 ‘공방 드 은자’ 대표 한은경 씨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패션 매거진 뷰티 에디터에서 수제 비누 브랜드 ‘공방 드 은자’ 대표가 된 계기가 있을까요?
뷰티 에디터는 저의 첫 번째 직업이었고, 두 번째 직업이 바로 솝 메이커입니다. 두 직업 모두 취미에서 직업으로 연결된 케이스죠. 뷰티 에디터 시절 늘 갈증을 느끼던 아로마테라피를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2018년 4월 처음 비누를 배우고 그해 6월에 사업자 등록을 했어요. 대담했죠. 취미를 온전히 취미로 두지 못하고 결국 일로 연결시키는 저를 보며 당차게 홈 공방을 시작했고, 올해로 공방을 운영한 지 5년이 됐어요.
뷰티 에디터로서 다양한 브랜드와 제품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제품을 만드는 데 더욱 엄격하고 꼼꼼한 기준이 있었을 것 같아요.
공방 드 은자는 비누의 레시피 기획 단계부터 원료 구입, 도구와 공방 관리, 온갖 서류 관리, 제조 공정, 포장, 판매, 홍보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해내야 하는 1인 기업입니다. 그중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 역시 원료와 제조 공정이에요. 뷰티 에디터 시절에도 스스로 좀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전 성분과 제조 공정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제품 위주로 취재하고 촬영했어요. 트렌드와 광고에 힘입은 제품보다는 내실이 탄탄한 제품에 눈이 가더라고요. 이런 기준은 제 이름을 걸고 만드는 비누에도 당연히 적용했죠. 아니, 더 엄격해졌어요. 그래서 브랜드 초기에는 비누 하나를 출시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죠. 오랜 고민과 연구, 샘플 작업 등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비누라도 지속적으로 레시피를 업그레이드하면서 머물러 있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브랜드 초기부터 지금까지 수차례의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치고 또 거쳐 완성된 비누가 바로 ‘솝푸’와 ‘사봉드마르세유’, ‘프리미엄 팜프리 키친 솝 바 001 EM+시나몬’이에요.
3가지 비누, 어떤 점이 특별한가요?
공방 드 은자에는 다양한 비누가 있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비누가 출시될 예정이지만 사실 솝푸, 사봉드마르세유, 프리미엄 키친 솝 바 001 EM+시나몬 이 3가지만 있으면 다른 비누는 필요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애착과 애정이 가장 크고, 그만큼 완성된 비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솝푸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에 다 씻어낼 수 있죠. 특히 국내산 어성초와 녹차가 듬뿍 함유돼 두피든 얼굴이든 몸이든 트러블이 있는 피부에 이만한 게 없어요. 피부가 좀 건조하다 싶을 땐 사봉드마르세유로 세안과 샤워를 해보세요. 아이가 어릴 때 이 비누로 온몸을 다 씻길 만큼 무향으로 자극적이지 않고 촉촉해서 좋아요. 지금은 어느덧 사춘기가 돼 솝푸로 머리를 감고 샤워하고 울긋불긋 뾰루지가 나기 시작한 얼굴도 말끔하게 씻어내고 있어요. 이 두 비누만 있으면 욕실에 샴푸, 보디 클렌저, 클렌징 폼, 핸드 워시 등이 전혀 필요 없어요. 그리고 프리미엄 팜프리 키친 솝 바 001 EM+시나몬은 위생용품 1종 세척제라 설거지도 하고 과일과 채소도 세척하죠.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이 비누로 수세미와 행주도 빨고 마지막에 손도 씻어요. 고무장갑을 끼지 않아도 손이 트지 않아 설거지 세제와 과일·채소용 세척제, 고무장갑, 주방용 핸드 워시 등도 다 이 비누 하나로 대체 가능해요. 실제로 이 3가지 비누가 공방 드 은자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예요.
여름날 사용하기 좋은 공방 드 은자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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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콜+티트리
과잉 피지와 땀, 끈적거리는 피부를 말끔하게 씻어내는 데 도움을 주는 페이스 앤 보디 클렌징 솝. 110g 이상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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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솔 샤워 바
박하잎에서 추출한 멘톨 성분이 쿨링감을 선사하는 샤워 전용 비누. 샤워 후 선풍기 앞에 앉아 있으면 극락의 시원함을 경험할 수 있다. 110g 이상 1만1천원.
자신만의 브랜드 운영은 또 다를 것 같아요. 운영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혼자서 브랜드를 이끌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힐 때가 많아요. 워킹맘이라는 제약으로 생기는 시간적인 문제도 그렇고 혼자서 생산과 관리, 유통, 마케팅을 모두 하다 보면 일정대로 일을 해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더군다나 코로나19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죠. 하지만 이 모든 걸 한꺼번에 고민하다 보면 아무 일도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갔어요. 난 어차피 이 일을 80대 할머니가 돼도 할 거라 생각하니 그리 급할 게 없더라고요. 남들보다 느리지만 조금씩 튼실하게 업력을 쌓아나가자는 마음으로 5년을 이어왔습니다. 브랜드 5주년을 맞으면서 최근 몇 달간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내가 지난 5년간 뭘 했을까? 수많은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뒤 답을 내렸죠. ‘난 5년간 공방 드 은자라는 비누 연구소에서 R&D(연구개발)에 투자한 것이다’라고요. 버틸 수 있을 만큼만 제조와 판매를 했기 때문에 매출 실적이 높은 브랜드도 아니고, SNS 팔로워를 몇만 명 이상 보유한 유명 브랜드도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제가 공방 드 은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비누의 퀄리티 덕분이죠. 비누를 직접 구입해 사용해본 고객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피드백은 비누의 퀄리티에 대한 것이에요. 완성도 높은 비누를 만든다는 자부심, 잘 만든 비누를 잘 썼다는 고객의 피드백으로 어려움을 버텨내고 힘을 받기도 하며 지금에 있는 것 같아요.
첫 공방을 차리고, 어떤 비누를 만들고 싶었나요?
특별히 어떤 비누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계획 없이 시작했어요. 그냥 비누 만드는 것이 미치도록 재미있어서 뭐가 됐든 다 만들어보고 말겠다는 무모함으로 시작했죠. 다만 뷰티 에디터란 직업을 오래도록 해온 사람으로서 원료는 당연히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니 비누 공부를 시간이 날 때마다 했고, 아로마테라피도 열심히 공부해 미국 공인 국제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그리고 디자인이 무조건 예쁘고 세련돼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죠. 주변 지인들이 모두 패션·뷰티업계 종사자들이다 보니 눈높이가 높고 취향이 다양한 편이라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비누를 조금이라도 색다르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다 지금의 공방 드 은자만의 색을 지닌 비누들을 소개하게 된 것 같아요.
“거품이 잘 나면서 세정력이 좋고, 단단함이 오래도록 유지되며,
씻고 나서 땅김 없이 촉촉함이 지속되는 것이
비누의 필수 3요소라고 생각해요.
좋은 원료와 올바른 방식으로
정성껏 만든 수제 비누여야 가능한 일이죠.”
언뜻 보기엔 모빌 같아요. 베스트셀러 제품이죠? ‘모기가 피행잉 솝’, 이름부터가 남다른 이 제품을 만들게 된 스토리가 궁금해요.
4년 전 모기 기피 행잉 솝이 수제 비누 업계에서 유행이었어요. 여름이 되면 여러 비누 공방에서 비슷비슷한 모양과 향의 모스큐브를 만들어 판매하더라고요. 당시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팝업 마켓이 열렸는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기 기피 행잉 솝을 만들자고 생각했죠. 손이 좀 더 가더라도 더 예쁘고 남다른 디자인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양한 컬러로 알록달록하게 모양도 제각각인 디자인으로 만들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팝업 마켓 첫날 준비한 물량이 모두 소진됐어요. 그래서 팝업이 열리는 내내 밤늦게까지 추가로 제작하며 사랑받은 제품이 모기가 피행잉 솝이죠. 모기와 날벌레가 기피하는 성질을 가진 시트로넬라, 페퍼민트, 시나몬리프 에센셜 오일을 황금 비율로 블렌딩해 향을 내고, 식용색소로 색을 낸 제품이에요. 올해부터는 여기에 유칼립투스 에센셜 오일을 추가해 향이 더욱 상쾌해졌죠. 정말 많은 고객이 수년째 재구매하고, 여름이 되기 전부터 언제 구매가 가능한지 문의가 들어올 정도예요. 모기가 피행잉 솝을 걸어둔다고 해서 모기나 날벌레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절대 아니에요. 이 제품은 살충제가 아니고 그저 모기나 날벌레가 싫어하는 향으로 만든 인테리어 소품 겸 자연 친화적인 퇴치제죠. 이 제품을 판매할 때 과대광고는 절대 하지 않아요. 날아올 모기 10마리가 5마리 정도로 줄어드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해요. 하지만 제가 이 제품을 4년 넘게 판매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모기 기피 효과가 없어서 실망이에요”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많은 고객이 처음엔 모기 기피 효과를 기대하고 구매했는데 막상 제품을 받아보니 너무 예뻐서 모기가 계속 꼬여도 용서가 된다는 피드백을 줄 정도로 여름철 인테리어 소품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제품이죠.
‘공방 드 은자’의 운영 방침, 철학, 브랜드 소명이 있다면요?
Fresh Handcrafted Soaps with Love.
Good Soap, Good Life.
Less Waste, Better Life.
공방 드 은자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세 문구예요. 첫 번째 문구는 진정성, 애정, 정성을 담아 소량씩 신선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대량생산을 할 거였다면 처음부터 공장화, 기계화했겠죠. 혹은 좀 큰 교반기를 들여와 한 번에 많은 비누액을 블렌딩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한 번에 많이 만들어 재고를 쌓아둔 뒤 출고하다 보면 좀 나중에 출고되는 비누는 신선하지 않잖아요. 저 같아도 그런 비누를 돈 주고 사고 싶지 않거든요. 또 제 욕심에 비누 종류를 다양하게 해서 골라 쓰는 재미를 고객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래서 현재는 재고 부담도 덜고 조금이라도 더 신선한 비누를 공급하고자 하는 마음에 비누의 종류를 다양하게 늘리되 소량씩 자주 만들고 있어요. 지금은 특정 비누가 품절돼 단골 고객이 그 비누를 당장 구매하지 못하는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는 선에서 이 사이클로 잘 돌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두 번째는 문구 그대로 좋은 비누 하나가 삶을 더 좋게 만들어준다는 믿음으로 비누를 만들고 있어요. 이건 온전히 제 경험에서 비롯된 문구예요. 온갖 화장품과 생활용품으로 가득한 삶을 살다가 비누 생활을 시작하면서 180도 바뀐 삶을 살고 있거든요. 클렌저도 이중, 삼중으로 하고 여러 단계의 스킨케어, 보디케어 화장품을 쓰던 패턴이 좋은 비누 하나로 클렌징이 마무리되고 클렌징 후에도 피부가 땅기지 않고 촉촉하게 유지되다 보니 스킨케어와 보디케어 단계도 자연히 좋은 보습제 하나로 해결되더군요. 주방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설거지용 세제, 과일·채소용 세척제, 고무장갑, 핸드 워시 같은 것이 싹 사라지고 1종 세척제 비누 하나만 두고 사용하게 됐죠. 잘 만든 비누라면 욕실과 주방이 훨씬 건강해지고 심플한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세 번째 문구는 쓰레기를 조금씩 줄여나가다 보면 삶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뜻이에요. 고체 비누를 쓴다는 것 자체가 친환경 생활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는 두 번째 문구의 뜻처럼 욕실과 주방에 좋은 고체 비누를 두고 생활하다 보면 피부와 건강에도 이롭고, 액상을 담고 있는 플라스틱 용기도 자연히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애정과 정성을 담아 소량씩 신선하게 제조되는 다양한 비누를 그때그때 취향에 맞게 골라 쓰자. 그러면 피부도 건강도 챙기고 불필요한 일회용품과 쓰레기도 줄여나가면서 나와 지구를 위한 삶의 실천이 가능해질 테니 말이다”랍니다. 이것이 바로 브랜드 운영의 소명이자 제가 앞으로도 쭉 추구할 신념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