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류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36세·본명 엄홍식)이 구속 위기에서 벗어났다. 경찰은 유아인의 죄질이 나쁘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범행과 관련된 증거들이 이미 상당수 확보돼 있다”,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가수 돈스파이크는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됐지만, 유아인과 아이돌 출신 가수 남태현, 방송인 서민재 등은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유아인을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도주 우려가 없다고 보는 게 구속영장 기각의 주된 사유인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아인은 여러 차례 소환조사 요구에 불응했고,
“기자들이 있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마약 투약 증거들이 있음에도 “투약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경찰은 왜 구속영장을 신청했을까
유아인은 마약류 5종 투약 혐의를 받고 있다. 대마·프로포폴·코카인·케타민·졸피뎀 등의 마약류인데, 수사의 시작은 프로포폴이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유아인이 2021년 한 해 동안 프로포폴을 73회 처방받아 4,497ml 투약했다는 기록을 넘겨받았고, 올해 2월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과다한 프로포폴 투약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수사 착수 3개월 만인 5월 중순, 경찰은 유아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이 초범인 유아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마약 투약 횟수와 종류가 과다했다. 유아인이 1년 동안 프로포폴을 투약한 횟수는 70회가 넘었다. 올해 2월 5일 유아인이 미국에서 입국하는 것을 공항에서 기다렸다가 모발과 소변을 채취해 감정하면서 투약이 의심되는 마약류가 대마·프로포폴·코카인·케타민·졸피뎀 등 5종으로 늘었다.
혐의는 중해졌지만, 경찰의 수사 과정에 비협조적이었던 것도 구속영장을 신청한 주요 이유였다. 유아인은 여러 차례 소환조사 요구에 불응했고, 한 번은 소환조사를 앞두고 “기자들이 있다”는 이유로 일정을 일방적으로 변경했다. 마약 투약 증거들이 있음에도 “투약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경찰 조사에서 일부 대마 흡입을 제외한 나머지 혐의는 부인한 것. 유아인은 “프로포폴과 케타민·졸피뎀 등은 치료 목적이었으며 특히 코카인은 투약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을 속이려는 시도도 있었다.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거주지가 달랐다.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갔지만 관련 증거를 전혀 확보하지 못했던 경찰. 하지만 실거주지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찰이 추가로 실거주지를 압수수색해 마약 투약 혐의 관련 증거물을 확보하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 함께 마약을 투약한 공범을 해외로 도피시키려다가 실패했다는 정황도 경찰에 포착됐다. 해외로 도피시켜 경찰 수사를 피하게 하려 했던 연락 등을 확인한 것. 벼르던 경찰은 지난 3월 27일과 5월 16일, 두 차례 유아인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장시간 조사를 실시했다. 그 후 5월 19일 유아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유아인과 함께 마약을 투약했고, 증거인멸 시도 정황이 있는 작가 최 아무개 씨에 대해서도 함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한 검사는 “수사기관들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시도하면 뭐하냐,
법원이 이를 함께하지 않으면 마약 문제는 갈수록 더 커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유는
그럼에도 재판부는 유아인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 이민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5월 24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 유아인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원래 법조계에서는 “구속영장이 발부돼도 이상하지 않고, 기각돼도 이상하지 않다”는 평이 나왔다. 구속영장이 발부될 이유와 기각될 이유가 모두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구속영장이 발부될 이유는 ‘다종의 마약을 다량 투약했고, 유명 연예인이라는 점’이었다. 유아인은 대마·프로포폴·코카인·케타민·졸피뎀 등 5종의 마약을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이처럼 다양한 마약을 상습적으로 투약하는 것은 중독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케이스다. 특히 재판부가 ‘유명 연예인’은 나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엄한 기준(구속)으로 접근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기각될 이유를 더 높게 샀다. 유아인이 초범이라는 점, 마약 매매·유통범이 아닌 투약범이라는 점, 일부 혐의를 인정했다는 점, 유명 연예인이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더 높게 고려했다. 법원은 실제로 “증거 확보, 도주 우려 없음”을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범행과 관련된 증거들이 이미 상당수 확보돼 있고, 피의자도 기본적 사실관계 자체는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 수사에서 혐의를 거의 대부분 부인했던 유아인은 영장실질심사 출석 당시 취재진의 질문에 “혐의를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다. (마약 투약을) 후회하고 있다”며 인정하듯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마·프로포폴·코카인·케타민·졸피뎀 등 5종의 마약 투약을 모두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증거인멸 시도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유아인이 경찰 수사 흐름에 맞춰 “투약 증거가 있는 마약은 인정과 함께 뉘우침을, 증거가 불충분한 마약에 대해서는 억울함을 호소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로 재판부는 유아인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코카인 투약 혐의에 대해서는 “코카인 사용 혐의는 일정 부분 다툼의 여지를 배제할 수 없어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피의자는 주거가 일정하고 동종 범행 전력이 없고, 피의자가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함께 구속영장이 신청됐던 공범 최 씨도 구속을 면할 수 있었다. 재판부는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에서는 ‘전면 혐의 부인’으로 다투던 유아인이 법원에 가서는 ‘일부 혐의 인정과 사죄’로 전략을 바꾼 것이 구속을 면하는 데 중요한 법정 전략이 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지점이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도주의 우려와 혐의를 부인하면서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라며 “불리한 증거가 확실하게 있을 경우 혐의를 인정하면서 뉘우치고, 진짜 억울한 부분에 대해서만 다투겠다고 밝히면 방어권을 위해 구속영장을 기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연예인은 얼굴이 알려진 공인이기에 거꾸로 도주 가능성이 더 낮지 않겠냐”며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경찰과 검찰 안팎에서 “법원은 마약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오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약 사건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우리나라는 마약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기준이 성립돼 있는 것이 문제다. 비교적 중독성이 약한 마약이라고 분류되는 대마 등을 하다가 걸린 초범의 경우 불구속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된다”며 “수사기관들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시도하면 뭐하냐, 법원이 이를 함께하지 않으면 마약 문제는 갈수록 더 커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재신청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검토했지만, 새롭게 법원에 ‘영장 필요성’을 제시할 사안이 많지 않다고 보고 지난 9일 유아인을 기소했다. 경찰은 유아인 외에, 그의 주변인 8명과 의료 관계자 12명 등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수사해 재판에 넘기겠다는 계획이다.
유아인은 되고, 돈스파이크는 안 된다?
자연스레 구속영장이 신청됐던 마약 투약 연예·방송인들이 비교군으로 거론된다. 유아인에 앞서 마약류 투약 혐의로 물의를 일으켰던 방송인 돈스파이크(46세·본명 김민수)는 곧바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바 있기 때문.
14차례 필로폰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된 돈스파이크. 그는 지난해 9월 28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 대부분을 인정했지만 법원은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그를 구속했다. 돈스파이크는 동종 전과가 3차례 있고, 현행범으로 체포돼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 밖에 연예인들은 대부분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마약(필로폰) 투약 혐의를 받는 남태현과 서민재 또한 유아인과 같은 이유로 지난 5월 18일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두 사람은 지난해 8월 마약류를 투약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서민재는 자신의 SNS에 “남태현 필로폰 함, 내 방인가 회사 캐비닛에 쓴 주사기 있다. 그리고 나 때림” 등 글을 게재했다 삭제해 파문이 일었다. 이후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며 수사가 시작됐고, 이들은 혐의가 입증돼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하지만 법원은 두 사람의 영장실질심사 후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과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특히 남태현에 대해서는 “현 단계에서 구속은 방어권에 대한 지나친 제한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검찰과 경찰을 중심으로 ‘법원 결정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지점이다. 실제로 이원석 검찰총장은 유아인 구속영장 기각 후 “법원 판단이 마약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인식과 경각심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고 주위에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심에서 집행유예(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를 받고 풀려난 돈스파이크 사례도 언급하며 ‘엄벌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예인들의 마약 사건 양형이 올라가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전과’가 있던 돈스파이크도 2심에서는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되기도 했다.
마약 사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법원은 마약을 매매·유통시키는 경우에는 범죄단체로 보고 징역 5년 이상의 높은 형량을 선고하지만, 마약을 구매해 투약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중독된 피해자’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는 것 같다”며 “마약 투약 초범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를 따져서 중할 경우 1심에서도 실형을 선고해야 경각심이 생기지 않겠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