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제시한 방법은 임차인 우선매수권이다. 거주하던 주택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갔을 때 먼저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특별법으로 2년간 한시적으로 운용된다. 해당 주택 매수를 원하지 않는다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되면 기존의 보증금은 반환받지 못해도 해당 주택에서 저렴한 임대료로 장기 거주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주택이 경매 처리됐을 때 우선매수권 행사가 무조건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임차인(세입자)이 선순위인지 아닌지, 낙찰가가 얼마인지에 따라 여러 경우의 수가 생긴다.
경매로 주택이 낙찰되면 법원은 경매 비용 등 필요경비를 제한 다음 정해진 배당 순위에 따른 선순위 채권자들부터 차례대로 배당해준다. 쉽게 설명하면 1번, 2번 식으로 순위를 매겨 낮은 번호부터 돈을 내주는 방식이다. 여기서 순위가 밀리면 자칫 배당받을 돈이 없을 수도 있다. 임차인이 선순위를 점할 수 있는 대출금 없는 집의 임대차계약이 선호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인천 지역의 감정가 3억 4,100만원인 주택에서 전세를 사는 후순위 피해자의 사례를 살펴보자. 금융기관의 대출인 선순위 근저당 금액 1억 5,000만원이 있고, 전세보증금은 8,800만원이다. 2회차까지는 유찰되고, 3회차 경매에서 최저 매각 가격인 1억 6,709만원으로 낙찰됐다고 가정해보자. 참고로 경매에서는 유찰될 때마다 최저 매각 가격이 20~30%씩 떨어지는데 인천은 30%다. 경매 비용으로 400만원, 선순위의 근저당권 비용으로 1억 5,000만원을 먼저 제하고 나면 후순위인 전세 사기 피해자의 손에는 1,300만원가량 쥐어진다. 이럴 때 우선매수권을 활용해볼 수 있다. 자신의 전세보증금을 낙찰 대금과 상계할 수 있으므로 배당받을 보증금을 제외한 선순위 근저당 금액인 1억 5,000만원을 법원에 납부하면 해당 주택의 소유권을 얻는다. 전세자금대출이 있다면 기존 전세대출금도 곧바로 상환해야 한다. 사기 피해 주택은 대부분 중저가 주택에 몰려 있어 세입자의 자금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4억원 한도 내에서 전세대출금을 포함해 임차인 우선매수권을 이용해 낙찰받는 데 필요한 돈을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당장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지만 추후 주택 가격이 오르면 이익이 날 수도 있다.
이론상 유찰이 거듭돼 낙찰 가격이 낮아지면 우선매수권 사용자가 유리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최저 매각가가 근저당권 설정 금액보다 떨어지면서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막으려고 선순위 근저당권을 지닌 금융기관 또는 대부업체가 낙찰받는 방어 입찰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주변 시세보다 낮다면 당연히 일반 투자자도 입찰에 참여한다. 이 때문에 통상적으로 2〜3회차 입찰에서 감정가의 50〜70% 선에서 낙찰된다. 만일 추후 가격 상승 등에 대한 기대감이 없거나 낙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보증금 회수를 포기하더라도 LH에 우선매수권을 넘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살펴봤듯 사고가 터진 후의 뒷수습보다 전세 사기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사전 예방에 힘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처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이 불투명한 시기에는 보증보험에 가입되지 않는다면 전세 계약을 삼가는 것이 안전하다. 임대차계약을 맺을 때 따져보기를 생략하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계약 전에 건물의 가치인 매매가격과 부채인 대출금 및 선순위 전세금의 합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부채의 총합이 매매 시세의 70~80%보다 낮아야 비교적 안정적이라 할 수 있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깡통 전세는 우선매수권 청구 대상이 아니다. 만약 80%를 상회한다면 전세보다는 월세 계약이 안전하다. 한 사람이 한 건물의 모든 세대를 소유하고 있는 다가구주택의 선순위 임차보증금의 합을 확인하는 방법은 건물 주소의 행정복지센터를 찾아가면 된다. 세대별 임차보증금과 확정일자를 열람해볼 수 있다. 선순위 보증금의 순서는 실거주가 시작된 날짜가 아닌 전입신고와 확정일자가 좌우한다.
- 정기구독
- 공지사항
- 편집팀 기사문의 | 광고 제휴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