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쯤이었다. 주안이 학교 근처에서 개인적인 일이 있었는데 일을 끝내고 나니 주안이 하교 시간과 맞아 주안이를 데리러 갔다. 주안이가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안이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방과 점퍼는 운동장 언저리에 두고 친구들과 함께 축구공을 뻥뻥 차면서 그 추운 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신나게 뛰어다니는 게 아닌가. 10분 남짓 지났을까. 다들 학원 때문인지 한두 명씩 가버리고 몇 명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주안이를 불렀다. “주안아, 가자!”
주안이는 하도 뛰어다녀 머리와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상태였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너무 추워서 손발이 얼고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았지만, 온몸이 땀범벅이 된 채 아쉬운 눈빛을 보내며 “아빠! 3분 만”을 외치는 주안이의 모습이 어찌나 안타깝던지 조만간 학교 운동장에 와서 같이 축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이 진짜 왔다. 며칠 전이었다. 미리 약속을 했던 터라 학교 운동장에서 주안이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몸을 풀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춥지도 않고 딱 좋았다. 수업이 끝났는지 학교 건물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안이가 보였다. 주안이는 역시나 가방과 점퍼를 운동장 언저리에 놓고 친구들과 함께 공을 신나게 차기 시작했다. 운동장에 서서 주안이가 볼 수 있게 손을 크게 흔들며 “손주안!” 하고 불렀다. 주안이가 반갑게 맞아주며 나에게 친구들을 소개해주었다. 주안이와 축구를 하러 왔다고 친절하게 설명도 했다. 이제 다 같이 축구할 차례다. 그런데 주안이가 단둘이 축구를 하잔다.
친구들은 무리를 지어 다른 골대로 공을 차러 갔다. 주안이는 자기가 그동안 갈고닦은 축구 기술들을 보여주고 몇 번 패스를 주고받더니 생각보다 일찍 집으로 가자고 했다. 땀도 얼마 나지 않은 듯 보였다. “주안아, 조금 더 하자~ 아빠 오늘 시간 많아!” 했더니 “아니야 아빠, 집에 가자~ 나 배고파!”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돌아왔다. 뭔가 아빠보다 친구가 더 좋다는 느낌은 아닌 것 같은데(내 바람인가?), 내가 예상했던 모습을 완전히 깬 시간이었다. 축구를 하다가 내 체력이 부족해 헉헉대면 “아빠 5분만 더…” 할 줄 알았는데 뭔가 시작도 안 하고 끝난 느낌이랄까.
하지만 대화하면서 서로 감정을 나누는 건 성장한 주안이가 더 편하고 좋다. 하루 두 번 공연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간혹 주안이가 안 자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럼 “아빠! 오늘 두 번 공연했어? 힘들지는 않았어? 고생했어~” 하고 안아주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 셋이 산책이나 쇼핑할 때면 항상 엄마 아빠 사이에 주안이가 손을 잡고 걸었는데, 어느새 엄마 아빠 둘이 사이좋게 손잡고 걸으라면서 엄마 옆이나 아빠 옆으로 와서 걷곤 한다. 생각이 깊어진 주안이를 보고 있노라면 기특하고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 요즘 부쩍 많아졌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