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
㈜다선교육 대표
더학원 입시연구소 대표
전 ㈜타임교육 학원사업본부장
전 <시사저널> 교육 주간
백재훈
㈜다선교육 입시연구소장
전 ㈜유레카 논술 총괄 본부장
전 ㈜타임교육 미래탐구 입시연구소장
유정임
㈜뉴스1 부산경남 대표
<아이가 공부에 빠져드는 순간> 저자
네이버 블로그 <아이가 공부에 빠져드는 순간> 운영
1학기의 기세가 중요하다
김동영(이하 ‘동영’) 심리적인 면에서 1학기 성적이 1년을 좌우한다는 생각은 맞기도 하지만, 교과과정의 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완전히 타당한 말은 아니에요. 단순하게 수학 과목을 예로 들어보면 최근 한 설문 조사 결과,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는 가장 큰 시점이 고등학교에서 삼각함수를 배울 때라고 하더군요. 실제로 학생들이 일반적인 함수보다 도형과 기하를 훨씬 힘들어 하는데요, 그 도형의 기초가 중학교 2, 3학년 2학기 수학입니다. 1학기 과정은 주로 수식을 이용한 계산을 중심으로 배우고 2학기 과정은 도형을 다루는데, 이때 도형의 개념을 정확히 배우지 않으면 고등학교 삼각함수와 기하를 이해하기 힘들어지죠. 그래서 학원에서는 방학 특강으로 중학교 2학기 과정과 고교 기하 파트를 묶어 2학기 내용만으로 속성반을 운영하기도 해요. 그런 걸 보면 수학은 2학기 공부가 중요해 1학기에 잘했다고 성적이 완전히 좌우되는 건 아니에요.
백재훈(이하 ‘재훈’) 그럼에도 공부라는 게 심리적 부분이 크게 좌우해요. 그래서 학년 초의 기세가 중요하긴 하죠. 특히 중학교나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1학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적 변화가 일어나기도 해요. 언젠가 중2 학생이 과학고 진학을 원해 상담한 적이 있는데요, 수학과 과학에 대한 심화 학습을 해본 경험이 전혀 없고 영어 성적만 좋은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어요. 그게 거의 유일한 장점이었지만 저 정도 의지라면 실패해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KMO(한국수학올림피아드) 준비를 시켰어요. 그런데 아주 짧은 시간에 근소하게 수상을 놓칠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뒀어요. 어쩔 수 없이 일반고에 진학했지만 이후 자신감이 생겨서인지 최상위 성적을 유지하면서 서울대 공대 진학을 준비하더군요.
고교 신입생, 동아리 선정도 전략적으로
유정임(‘정임’) 엄마 입장에서도 1학기의 각오가 중요하긴 하더군요. 경험상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학기 전에 준비할 게 참 많죠. 심적으로 긴장도 되고요.
동영 아무래도 입시가 목전에 있으니까요. 공부에 관심 있는 친구는 대부분 개학 전에 고교 수학 과정을 미리 공부하고 올 텐데요,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정도의 범위는 선행이라기보다 예습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진학할 고등학교의 1학기 중간고사 기출문제를 풀어보는 건 기본이죠. 영어와 국어는 교과서가 다르고 수업 시간에 다루는 지문 중심으로 학교 시험이 출제되기 때문에 기출문제를 풀어보는 게 큰 의미가 없지만, 수학은 진학할 학교의 출제 경향과 수준을 알아본다는 생각으로 풀어볼 필요가 있어요. 그렇게 풀어보면 스스로 수학에서 몇 등급을 받을지 예측이 가능해요.
정임 맞아요. 교육청 학교 알리미에 나오는 평균 내신은 수행평가를 포함한 거라서 등급을 추정해볼 수 없어요. 그러니 선배들의 성적표를 구하거나 다니는 학원에 해당 고교의 성적 자료를 구해달라고 부탁해 평균과 표준편차만 알면 자신이 몇 등급인지 계산해주는 인터넷 프로그램이 많아요. 생각보다 낮다면 약점을 보완하는 데 집중하고, 안정적이라면 다른 과목에 시간을 투자하는 게 현명하겠죠.
재훈 새 학기에 고교생이 되면 교과 성적 못지않게 동아리 선정 경쟁이 치열합니다. 무조건 공부 잘하는 선배들이 모인다는 동아리에 가입하려는 경향이 강한데요, 전략적으로 잘 생각해야 해요. 요즘 의학 동아리가 최고 인기 동아리라 하더라고요. 1, 2학년 때 의학 동아리 활동을 하다 고3 때 다른 학과로 지원하면 대학 입시 면접에서 이 부분을 해명하기가 쉽지 않아요. 성적이 안 돼 다른 학과에 지원한다는 인상도 좋지 않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다른 학과에 지원하면 당연히 의대에도 지원했을 거라고 판단해 선발하기를 꺼리는 경향도 있겠죠.
정임 하지만 일반적인 과학 동아리나 컴퓨터 동아리에서 생명공학과 관련된 활동을 하다가 의대에 지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일 겁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의학 동아리에 지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 맞는 친구들과 같은 동아리에 들어가는 겁니다. 수학과에 가고 싶은 친구와 컴퓨터공학자를 꿈꾸는 친구, 의대에 가고 싶은 친구가 같은 동아리에 가입했다면 의대 지원자가 감염병 확산 과정을 연구하고, 수학과 지원자가 수학적 모델로 감염 속도를 예측하고, 컴퓨터공학 지원자가 프로그램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공동 발표한다면 서로 도움이 되겠죠. 각자의 역량도 더 부각될 겁니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꼭 가겠다는 친구들은 동아리 선정도 전략이 필요한 셈이죠.
동영 수학 외에도 준비해야 할 것이 국어 내신인데요, 고1 과정에서 국어 내신은 대개 문법 영역을 포함해 출제됩니다. 그러니까 국어 문법 기초는 마스터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영어는 학교별로 격차가 너무 큽니다. 일반고는 내신 시험 문제가 교과서와 수업 중 나눠주는 학습 프린트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지만, 일반고 중에서도 명문고라 불리는 상위권 학교나 자사고, 특목고에서는 보조 교재로 영어 원서를 사용하기도 하고 수업 프린트물이 무척 어렵습니다. 외국 생활을 경험했거나 영어에 익숙한 학생이 너무 많아 내신 난이도를 높이지 않으면 성적 구별이 어려워 더 어려워지는 건데요, 자신이 진학할 학교의 영어 내신 시험의 난이도를 미리 알아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재훈 중3 학생들이 새 학기에 고1이 되면 통합과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물리, 생명과학, 화학, 지구과학의 내용을 통합적으로 공부하라는 의도지만 사실 각 과목 교사가 번갈아 들어와 수업을 진행하고, 대부분 과학Ⅰ 수준이라서 중학교 과학 수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고교 과학을 선행하지 않은 경우 당황하게 됩니다. 학교별로 1, 2학기에 물리, 화학과 생명, 지학을 나눠 수업하는 경우도 많은데 진학할 학교의 방식을 미리 체크하고 1학기 범위 정도는 예습을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많은 학생이 대입까지 1년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에 조급해지는데,
고등학교 2년을 통틀어 학습한 양보다 더 많은 양의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해요.
오히려 너무 길어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지,
시간이 부족해 실패하는 게 아니에요.
고2, 3학년생이 조급할 필요가 없는 이유
정임 말 나온 김에 고교 2, 3학년생은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핵심만 짚어준다면요?
재훈 고2, 3학년이 되면 내신이 부족한 학생은 수시를 포기하고 정시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많이 세우는데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수시를 포기한 학생도 3학년 9월이 되면 무조건 6장의 원서를 쓰게 되는데요, 자신이 방치한 내신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있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은 사소한 거라도 꼬박꼬박 채워두는 게 좋습니다.
동영 고3 학생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많은 학생이 대입까지 1년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에 조급해지는데, 1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긴 시간입니다. 고등학교 2년을 통틀어 학습한 양보다 더 많은 양의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해요. 오히려 너무 길어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지, 시간이 부족해 실패하는 게 아니에요. 수능 만점을 목표로 한다면 1년이라는 시간이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내신 등급을 1~2등급 향상시킬 시간은 경험상 충분해요. 그러니 결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중학교 입학생 ‘자유학기제 활용법’
정임 초등학생이나 중학교 1, 2학년생은 어떤 새 학기 준비를 염두에 둬야 할까요?
동영 초·중·고 신입생 중에 누가 제일 스트레스가 많을까요? 흔히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중학교 신입생이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초등학교 때는 성적이 매겨지지 않다가 중학교에 가면 성적이 매겨지기 시작하잖아요. 등급과 점수가 나오면서 학생 간 성적 격차가 눈에 보이기 시작해요. 이런 익숙하지 않은 스트레스가 학생은 물론 부모의 스트레스로도 이어지죠. 그러니 학생과 부모 모두 예민해져 스트레스가 더 극대화됩니다. 그 결과로 빚어진 게 자유학기제를 이용한 ‘수학 선행 학습’입니다. 중학교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평가와 시험 없는 자유학기제 혹은 자유학년제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같은 스트레스 때문에 오히려 이 기간을 이용해 중등 수학 과정을 선행하는 학원이 많아요.
정임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물론 어느 정도의 선행은 긍정적인 측면도 인정해야 해요. 예습과 복습은 학습의 기초니까요. 그런데 주위의 얘기와 제 경험상 분명히 중등 과정 전체를 한 학기에 몰아 선행하는 건 투자한 노력에 비해 극히 비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더라고요. 보통 이런 경우 3~4학기 내용을 압축해 선행하는데, 정작 2년 뒤에 그 개념을 기억하는 학생은 거의 없으니까요.
동영 선행이 꼭 필요하다면 1학기 정도만 하고, 남는 시간에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차라리 좋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컴퓨터 프로그램을 할 줄 아는 학생이 환영을 받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진학 후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공부하기는 만만치 않아요. 시간도 없고 현실이 따라주지 않죠. 그러니 중학교 때 해두는 것이 좋아요. 무엇보다 영어는 교과 공부를 넘는 수준으로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수능 절대평가로 영어의 중요성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정작 영어를 잘하는 고교생이 너무 많은 것도 현실이에요. 이 속에서 영어 내신까지 관리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재훈 그래서 저는 중학생 때 꼭 진로를 고민하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때 자신의 꿈에 대해 구체적으로 돌아볼 기회를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모 문화센터에서 부모들과 의견을 모아 중학생 8명을 한 팀으로 학생들의 진로와 비전에 대한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각자 관심을 가진 영역을 정하고 다른 학생들 앞에서 그 영역의 연구 상황, 쟁점, 미래 전망 등을 발표하면 나머지 학생들이 면접관처럼 질문하는 형식이었죠. 한 예로 로봇공학에 관심을 가진 학생은 로봇 기술의 발달 상황을 찾아보고 로봇이 인간처럼 행동하기 위해 필요한 쟁점을 정리해 발표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MIT 연구소의 연구 내용 등을 조사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학생들이 고교 진학 후에 동아리 활동과 진로 탐구 활동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더라고요. 구체적인 탐색 기회가 학생들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돼 계속적인 활동으로 이어진 거죠. 이런 동기부여의 기회를 중학교 때 가지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초등학생, 문해력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정임 매우 소중한 경험입니다만, 학교에서 그런 경험을 하기는 조금 힘든 현실인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초등학생이 1년 학습 로드맵을 만들기 위해 명심할 게 있다면요?
동영 운동을 처음 배울 때 달리기와 줄넘기 같은 기초운동을 제일 먼저 하죠. 기초 체력이 부족하면 흥미도 잃기 때문입니다. 학습에서 기초 체력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해력입니다. 학습은 언어와 문자의 형태로 진행되죠. 수학도 결국은 수식으로 이루어진 문장입니다. 언어와 수식으로 상대가 표현하는 문장을 이해하고,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게 학문의 기본이죠. 초등학교 때 해외에서 살다가 한국에 돌아오면 가장 힘든 과목이 사회 과목인데요, 사용하는 용어가 모두 개념어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쓰는 일상어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한자어에 기반한 개념어들이 사용된다는 겁니다. 국어와 과학 역시 고학년으로 갈수록 개념어 사용이 늘어납니다. 그러면 결국 학년이 높아질수록 교과서 내용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개념어로 가득 차면서 혼자 공부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죠.
정임 실제로 초등학생의 문해력이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뉴스를 보셨을 텐데요. ‘사흘’이 3일이냐 4일이냐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다지요. 이런 어휘 문제는 일상 언어를 넘어 학습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문해력은 결국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학습 능력의 격차로 나타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책 읽기를 통해 모르는 어휘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이 시기는 부모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그게 또한 가장 확실한 초등교육이죠.
재훈 어른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초등학생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은 어른들이 ‘권장 도서’를 강요할 때죠.(웃음) 재미있는 책은 여전히 아이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마법천자문> <수학도둑> <먼나라 이웃나라> <쿠키런 어드벤처> <Why?> 시리즈 등은 여전히 대부분의 아이가 좋아하고 스스로 잘 읽는 베스트셀러입니다. 그 외에도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책은 차고 넘칩니다. 다만 어른들이 말하는 권장 도서가 재미없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어떤 책이든 다양한 분야를 접하면서 문자로 구성된 정보를 습득하는 데 익숙하도록 만들어주는 어른들의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정임 선진국을 보면 전문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악기 연주나 운동을 기본적으로 중요시하지 않습니까? 선진국의 많은 대학이 선호하는 학생도 그런 모습에 가깝다고 하죠. 다양한 경험을 누릴 수 있는 풍요로운 초등학교 시절을 만들어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