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를 쓰기 위해 고쳐 앉았다. 신년 계획이라….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매년 새해가 밝으면 의식이라도 치르듯 무언가를 간절히 빌었다. 뒤돌아서면 기억하지 못할 모래성 같은 다짐이었는데도 그랬다.
2022년도 마감의 굴레 속에서 살았다. 오늘이 며칠, 무슨 요일인지 몰라도 마감 디데이는 잊어본 적이 없다. 잡지인의 숙명이다. 새해를 맞아 다짐했던 문장을 잊은 채 한 달, 두 달을 보내고 어느새 달력 마지막 장을 바라보고 있다. 2021년 이맘때 썼던 2022년 신년 계획을 펼쳐봤다. “나를 위해 살겠다.” 결의에 가까운 다짐에 웃음이 났다.
1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2021년의 나는 연이은 만남으로 과부하에 시달렸다. 그래서 2022년에는 의식적으로 만남을 줄이자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돌아보니 반은 성공, 반은 실패다. 야근과 피곤함을 핑계로 약속을 파투 내는 장본인이었고, 클라이밍이라는 영혼의 단짝을 만나 지인 모두가 신기해할 정도로 운동에만 빠져 살았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약속이 이어졌다. 코로나19로 결혼을 미뤄왔던 지인들이 줄줄이 결혼식을 올렸고, 집들이와 생일 파티에서 오랜 시간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따져보면 약속에 파묻혀 살았던 2021년보다 많은 시간을 타인에게 쏟았다. 그럼에도 내겐 아무런 타격감이 없다. 남들에게 내줬던 마음을 거둬들여 내게 쏟은 덕분이다. 이 모든 건 ‘러브 마이셀프’라는 거창한 다짐 없이 이뤄진 일이다. 사회에서 습득한 다양한 스킬로 불편한 상황에 대처했고,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편한 사람들과 함께했다. 적당히 할 만큼 하면서 살았다는 얘기다. 직장에서의 나와 진짜 나의 모습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도 덜어냈다. 온(ON)과 오프(OFF)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지나친 감정 소모를 스스로 막아 세웠다.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엄청난 것을 손에 넣지 않아도 꽤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언하기엔 이르지만 평화에 이르렀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더 바라는 것도 더 갖고 싶은 것도 없다.
그래, 계획이 없는 게 2023년 계획이다. 인생에 찾아온 불행의 8할은 계획에서 비롯됐다. 내가 세운 계획이 그대로 이행되지 않을까 봐 늘 괴롭고 불안했다. 벌어지지 않은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감정을 쏟았다. 설령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어도, 웃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어도 지나보니 별게 아닌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매번 엄청난 크기의 절망에 휩싸였다. 그렇다. 내겐 지금 계획으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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