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26살짜리 직원과 함께 일한다. 내가 처음으로 채용한 우리 사무실의 유일한 직원인 그도 여기가 첫 직장이라고 했다. 우리는 작은 사무실에서 하루 8시간 늘 붙어 있는다. 가까이 앉아 함께 일하고 같이 밥도 먹으면서. 회사에 다닐 때도 나이 어린 팀원과 많이 일해봤지만 이렇게 중간에 다른 팀원 없이, 20살 차이 나는 직원과 직접적으로 부딪치며 일하고 생활하는 건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선배나 상사 역할은 많이 했지만, 고용주의 입장은 처음이니 여러모로 새로운 관계를 경험하는 중이다.
직원이 생기니 먼저 사무실 환경부터 바꿔나가야 했다. 평소처럼 대충 책상만 두고 일할 수는 없었다. 가구를 깨끗하게 리폼하고, 컴퓨터와 각종 집기는 물론이고 커피포트, 냉장고, 심지어 화장실의 비누까지 하나하나 새로 장만해야 했다. 나름 목돈 들여 고가의 냉난방기를 사무실에 들이던 날, 직원은 말했다. “이제 가습기를 사야겠네요”라고. 회사 다니던 시절, 내가 직원 대표로 회사 측에 가습기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전달했던 게 떠올랐다. 당시 경영지원팀은 내게 말했다. “정말 그게 꼭 필요한가요?” 나도 같은 말이 튀어나오려 했지만 참았다. 난방기를 틀면 건조해지니 가습기가 필요할 거라는, 그저 순수한 반응이었을 텐데 내 부담감이 앞서 직원을 무안하게 할 뻔했다. 실수를 할 뻔한 순간은 많다. 함께 식사하고 난 그릇을 직원이 먼저 치우지 않을 때, 식사를 마친 직원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날 때, 업무 시간에 꾸벅꾸벅 졸 때, 업무로 바쁜데 메신저로 개인적인 대화를 할 때, 간혹 대답을 생략할 때,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도 퇴근 시간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날 때 아직 화낼 기운이 남아 있는 내 안의 꼰대가 스멀스멀 깨어나려 했다.
막내는 엉덩이가 가벼워야 한다, 나는 10년 넘게 회사 생활하며 정시 퇴근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지금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배들에게 능력 없는 선배가 되는 거다 등등. 내가 어디까지 직원에게 요구할 수 있고, 어디까지 가르쳐야 하는 부분인지 애매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땐 내가 만났던 좋은 어른들을 떠올렸다. 그 선배라면, 그 상사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존경하는 어른들은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주었던 분들이다. 합리적이고 솔직한 분들이다. 그분들을 떠올리니 어린 직원에게 실수를 덜 하게 되는 것 같다. 그 덕분인지 다행히 우리 직원은 이제 함께 식사한 그릇도 잘 치우고 맡은 바 업무는 묵묵하게 빠른 속도로 잘해내고 있다. 말이 없는 친구인데 가끔은 감동도 준다. 사실 요즘 너무 고맙고 예쁘다. 가끔 꾸벅꾸벅 조는 모습까지도.
새해가 밝았다. 나이가 드는 건 그리 두렵지 않은데, 어른답지 못한 사람이 되는 건 두렵다. 중년의 나이인데도 나는 여전히 10대 시절의 나와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순수함을 간직하고 젊게 사는 건 멋진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랑받고 싶고, 보호받고 싶어 하는 아이의 모습이 남아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어른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품을 수 있는 존재다. 나는 이제 연로한 부모님과 우리 작은 회사의 직원까지 품을 수 있는 어른이어야 한다. 적어도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다닐 수 있게 직접 운전할 줄 아는 딸, 가습기는 물론이고 꼭 필요한 건 망설임 없이 사줄 수 있는 고용주가 되는 게 새해 다짐이라면 다짐이다. 직원 한 사람을 챙기느라 어느 새 우리 사무실이 아늑한 공간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것처럼 새해에는 나라는 사람도 한층 성숙하고 풍성해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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