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2019년 12월이었어요. 의사가 “암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누군가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두 아이가 눈에 어른거리고, 열심히만 달려온 제 인생의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지더라고요.
가족에게 알렸을 때 반응은 어땠나요?
친정어머니와 남편이 병원에 함께 갔는데 모두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방암에 걸린 것이 현실이 되니 친정어머니는 일단 마음을 다잡으셨어요. 지방에서 하시던 일도 모두 접고 제 곁으로 오셔서 진단-항암-수술-방사선치료-회복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지금도 제가 식단이나 운동을 소홀히 하지 않을까 잔소리도 많이 하시죠. 남편은 “치료받으면 다 나을 거야”라고 말하며 의연한 모습을 보여줬어요. 처음에는 저를 위해 펑펑 울어주지 않아 섭섭했는데, 후에 남편에게 그 마음을 털어놨더니 “나까지 울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면 우리 가정은 어떻게 되겠어? 아이들은 또 얼마나 불안해하겠어? 솔직히 몰래 숨어서 눈물 많이 흘렸어”라고 하더라고요. 남편의 그 말을 듣고 꼬였던 마음이 풀렸네요.
현재는 어떤 상태인가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고, 항암-수술-방사선치료를 마치고 항암 후 2년 검진까지 무사히 마쳤어요. 12월 말 또 검진이 있습니다. 6개월마다 검진을 하고 있는데요, 검사 가기 전에는 여전히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전날엔 잠도 잘 못 잡니다. 그러다 의사가 “깨끗합니다”라고 말하면 제 주변에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죠. 유방암 약을 매일 먹고, 한 달에 한 번 여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주사를 맞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부작용이 있지만, 대체로 잘 적응해가고 있어요. 지금 살아 숨 쉬고 또 걸을 수 있는 현재를 감사하며 지내고 있지요.
수술실에 들어가던 순간, 수술 후 처음 눈을 떴을 때의 심정은 어땠나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계속 주기도문을 외웠습니다. 수술장으로 가는 길이 왜 그렇게 멀게 느껴지던지요. 긴장을 풀기 위해 복식호흡을 하며 의료진을 기다렸고, 저는 의료진이 실수하지 않고 수술을 잘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수술 후 처음 눈떴을 때 “아! 살았다”라는 환호성을 속으로 질렀어요. 한숨 푹 자고 일어난 느낌이었어요. 전날 금식을 한 데다 수술 순번이 뒤쪽이어서 수술이 늦게 끝나 물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유방암 선고 전과 치료 후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삶과 죽음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삶은 정말 예측 불가능하고, ‘삶과 죽음은 가까운 곳에 늘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진짜 중요한 것이 뭔지 분별할 수 있게 됐고, 제게 주어진 시간을 더 소중하게 다루게 됐습니다. 또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생각해 더는 미루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암 진단 이전에는 열심히만 살아왔다면, 암 진단 후에는 삶의 기쁨을 느끼며, 또 충만한 느낌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항암치료를 하면서 심리적으로 가장 크게 도움을 받았던 건 뭔가요?
주변의 따뜻한 지지와 응원, 기도였어요. 가족과 친구들, 회사 동료들과 지인들, 교회에서 만난 분들, 블로그나 SNS를 통해 알게 된 분들까지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잘 이겨내기를 기도해주셨어요. 사람들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참 다양하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유방암 극복한 이를 찾아 연결해주고, 어떤 사람은 병원에 함께 가주고요. 어떤 사람은 책이나 먹을 것을 보내주고, 어떤 사람은 논문을 찾아 보내주고, 어떤 사람은 재밌는 이야기나 유머로 절 웃게 만들었어요. 많은 사람이 손에 손을 잡고 제가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극복 과정에서 나를 무너뜨렸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낙관적인 사람이라 수술 전 항암치료를 받으면 제 암 덩어리는 싹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전절제가 아닌 부분절제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힘든 항암치료를 여덟 번 했지만 전절제 결정이 나고 방사선치료까지 받아야 한다고 했을 때 마음이 많이 무너졌지요. 제 마음에 바람이 휘몰아치고 거센 파도가 덮쳤는데, 그때는 누구의 말도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많이 힘들었지만, 그 시기 역시 지나더라고요.
가장 힘이 됐던 말은 무엇인가요?
“암은 위험한 기회다”라고 말한 의료 사회학자 아서 프랭크의 말이 암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꿔주었어요. 위험이 아니라 기회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어 항상 그 말을 가슴속에 품고 삽니다.
건강을 자신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해주세요.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암 진단 후에야 알게 됐어요. 항암치료를 할 때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때 자지 못하고, 제대로 배설을 못 하니 정말 사는 일이 지옥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 평범한 일상이 어쩌면 기적이었구나, 이미 나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덧붙이자면, 나이 먹어가면서 몸이 고장 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또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내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은 영향을 계속해서 줍니다. 일단 건강에 좋지 않은 일만이라도 줄이거나 안 하면 좋습니다. 술과 담배를 안 하거나 줄이기, 가공식품이나 탄 음식 먹지 않기,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 줄이기, 야근이나 불규칙한 생활 줄이기, 부정적인 생각이나 스트레스 줄이기 같은 것들이요. 건강을 지키는 법, 의외로 어렵지 않더라고요. 암은 교통사고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내가 나서서 암 유발 인자를 늘릴 필요는 없겠지요. <우먼센스> 독자 여러분도 오늘부터라도 내 건강을 위해 앞에서 말한 것들을 실천해보세요.
양선화 씨는 ‘암’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길을 찾아 나서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