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이하 ‘김’) 사실 경제나 교육이나 가장 두려운 게 예측 불가능성입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의 예측과 평가이니 양해해주시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정부의 교육정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만들었다기보다 몇몇 사건 때문에 급하게 만들어진 느낌도 적지 않아요.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중심의 정시를 강화하는 교육정책은 대학이나 고교에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한 정책이죠. 그런데 급하게 밀어붙이다 보니 교육 일선의 불안감이 가중됐고 결국은 이렇다 할 결론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어요. 예측은 쉽지 않습니다만, 큰 틀은 기존의 입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백재훈(이하 ‘백’) 사실 자사고가 폐지되느냐, 그냥 남아 있느냐의 문제가 법원 판결에 따라 결정되고, 학부모와 학생들이 그 결과를 기다리는 불안한 상황은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기간의 토론과 논의를 통해 우리 사회에 자사고와 같은 수월성 교육기관이 필요한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후 그에 따라 점진적인 정책이 이뤄져야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학교가 없어지는 상황은 문제가 있죠. 그런 돌발적인 문제가 사라진다는 점은 저희로서는 일단 긍정적입니다.
사교육?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유정임(이하 ‘유’) 자사고·특목고(특수목적 고등학교) 폐지에 대한 돌발적 논의가 사라지고 자사고·특목고가 살아나면 사교육도 덩달아 활발해지겠네요?
김 자사고와 특목고를 가려고 노력하는 학생들의 이유가 뭘까요? 결국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가장 유리한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대학 입시에 대한 과열을 없애지 않는 이상 사교육을 멈추도록 정리한다는 건 결코 불가능한 얘깁니다. 농담 삼아 학원가에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공정한 방식을 찾기 위해 가위바위보로 입시를 결정해도 대치동에는 가위바위보 특강반이 열리고,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위바위보를 잘하는 청소년이 될 거라는 말입니다. 참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말 그대로 웃픈 얘기입니다. 우리 사회는 서울대 1년을 중퇴해도 동문으로 인정하는 좀 특이한 문화가 있어요. 좋은 대학의 옷을 입으면 너무 많은 사회적 자원을 부여하는 이런 현행의 교육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어떤 입시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사교육은 줄어들지 않을 겁니다.
백 이렇게도 볼까요? 자사고와 특목고가 강화되면 입시 연령이 지금보다 낮아진다는 점은 충분히 우려됩니다. 고등학교에 몰려 있는 대입 경쟁이 중학교나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낮아지면서 어려서부터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하는 경쟁 체제에 들어가겠죠. 그러면 다양한 경험을 할 시간이 더욱 줄어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김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동안 자사고 제도를 시행해왔는데 우리 생각보다 자사고에 대한 선호도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전국 단위 자사고인 4~5개 학교를 제외하고는 학생들이 뚜렷이 선호하는 학교가 없었어요. 지역 단위 자사고들은 오히려 지원자가 적어 일반고로 이미 전환된 경우도 있죠. 특목고 중에서도 외고(외국어 고등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별도로 입시를 준비할 정도로 선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내신 성적을 확보하기 쉬운 일반고에 비해 자사고와 외고가 그다지 유리한 점이 없다고 평가한 거죠.
백 그래서 자사고의 존치가 확정된다고 해도 학생들의 쏠림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다만 현재의 선행 학습 시장과 고등학교 입시 관련 사교육 시장을 선도하는 건 과학고와 영재교(영재학교) 입시입니다. 과학고와 영재교에 입학할 경우 대입에서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실히 퍼져 있어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입시 사교육 시장은 과학고, 영재교 입시 대비를 위한 프로그램만 살아 있다고 보면 됩니다. 자사고와 외고가 사교육의 원인인 것처럼 보는 시각은 거의 10년 전 사교육 시장에 기반한 분석이죠.
김 입시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정책 연구 기관이나 정당에서 교육 관련 선거공약 내용을 검토해달라고 부탁이 올 때가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 양측 모두 사교육의 원인으로 외고를 지적하는 내용을 보고 사교육권에서 일하는 저희는 솔직히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대치동 중학생 모두 통틀어 외고 입시반에 있는 학생은 1%도 되지 않아요. 외고 입시반이 있는 학원도 거의 없습니다. 요즘 사교육은 공대와 의대를 향해 움직입니다. 문과 중심인 외고에 관심이 없어요. 문제가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지적해야 한다고 봅니다.
유 현행의 교육 방향으로는 무엇도 사교육을 말릴 수 없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내신의 좋은 점수라는 게 사교육 없이는 불가능한 걸까요? 사교육은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이든 수능이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꼭 받아야 하는 건가요?
사교육이 내신 수업에 집중돼 있는 이유
김 여기도 오해가 많습니다. 자녀를 학원에 보내본 학부모라면 피아노 학원부터 고3 수능 학원까지 사교육비를 한번 떠올려보세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과목당 사교육 단가는 올라갈 수 있지만 지불한 총액을 생각해보면 좀 다른 결과를 깨닫게 됩니다. 대부분의 학원은 85% 이상의 매출을 내신 강좌에서 올려요. 보통 초등학교 입학 전에 영어 유치원이나 예체능 학원부터 사교육을 시작하잖아요. 물론 그때는 사교육이 ‘교육’의 기능보다는 ‘보육’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다 초등학생이 되면 저학년 때는 대개 태권도 학원을 다니죠.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수학, 과학 학원을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중학교에 올라가면 정식 교과목 학원을 다니기 시작해요. 그때 듣는 강좌는 대부분 내신 강좌입니다. 그때부터 고2까지는 모두 내신 강좌에 집중하는 거죠. 아무리 상위권 학교에 다녀도 고2 1학기까지는 대개 내신 과목을 학원에서 수강합니다. 솔직히 내신은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충분히 만들 수 있는데 1등은 1명만 되는 거잖아요. 스스로 우수한 내신을 만들 수는 있어도 다른 학생들보다 경쟁적으로 더 높은 성적을 올리고 싶으니까 사교육을 받는 거고, 그런 경쟁에서 최고를 차지하기란 혼자 힘으로는 부담스럽죠.
유 솔직히 부모로선 어떤 확고한 가치관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요. 혼자 할 수 있다고 해도 말씀하신 것처럼 경쟁적인 순위를 생각하면 뒤처질까 봐 불안할 수밖에 없거든요.
백 TV 드라마나 언론에 보면 고액 컨설턴트와 연봉 100억대의 수능 강사들이 화제가 되잖아요. 하지만 고액 컨설팅은 정말 소수의 이야기고, 고액 연봉의 수능 강사들은 인강(인터넷 강의)이 활성화되면서 과목당 1명의 강사가 수능 사교육 시장을 독식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에요. 대부분의 사교육은 중고생의 내신 강좌라고 보면 됩니다. 심지어 지방의 영재교나 최상위 자사고 학생들도 주말 저녁이면 기숙사에서 외출해 서울에서 내려온 강사들의 강의를 들으러 학교 앞 학원에 모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무슨 수업을 들을까요? 그게 다 내신 수업입니다.
김 영재교 1학년은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준비를 위해 학원에 다니고, 자사고 학생들도 외출을 나와 내신 준비 수업을 듣습니다. 학교 교사가 준 프린트를 학원 강사에게 주면 학원 강사가 심층 해설을 해주죠. 학생들은 학원에서 해당 교과목 교사의 기출문제를 분석해 출제 경향에 맞는 예상 문제를 뽑아주는 수업을 들어요. 비슷한 학생들이 모여 있는 자사고, 영재교의 경우 이렇게 빈틈없이 사교육의 도움을 받은 학생과 안 그런 학생의 작은 차이들이 석차를 엄청나게 변화시키기도 하니 더 민감해지는 거죠.
백 특히 과학고와 영재교 학생들은 대부분 수시로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에 내신 성적에 제일 민감하죠. 강남의 전설적인 국어 학원 원장은 부근 고등학교 국어 교사들의 파일을 만들어놓고 그 교사가 어느 고등학교 몇 학년 내신 시험 문제를 어떻게 냈는지 10년 이상 추적해 출제 경향을 꿰뚫고 있습니다. 그 교사가 다른 학교나 다른 학년으로 이동하더라도 출제 경향은 거의 바뀌지 않기 때문에 내신 경향을 맞출 수 있는 거죠. 이렇게 족집게 내신 학원으로 알려지면, 부근의 고등학생들은 그 원장의 내신 수업을 안 들을 수가 없어요.
김 학종을 대비하는 사교육 프로그램은 학원 입장에서는 수익을 올린다기보다 정말 고객 서비스 상품으로 갖춰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자기 학원을 다닌 학생이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홍보에 유리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전문 컨설턴트의 컨설팅을 제공하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건 사교육권에서 매출 규모로 따지면 너무나 미미합니다. 수능 강좌는 한 강의실에 100명 정도 들어가고 내신 강좌는 30명이 들어간다면, 컨설팅은 무조건 일대일입니다. 강사 1명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매출이 내신 강좌에 비해 30분의 1이라는 거죠. 수강료를 고액으로 만들면 낫겠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수천만원을 지불하고 컨설팅을 받았다는 소문을 들었다면 대부분 과장된 것이고 사실이라면 사기당한 겁니다. 저도 우리나라 최상위 컨설턴트로 분류되는데 학생 1명에게 수천만 원의 컨설팅은 하지 않습니다.
유 입시 현장의 현실을 솔직히 말씀해주셨는데 왜 들을수록 마음이 무거운 걸까요? 사교육의 본질적인 역할이나 목적은 무엇이라고 정리하시는지요?
김 어떤 서비스 앞에 ‘사’ 자가 붙으면 대단히 부정적인 느낌을 주죠. 금융은 공정한 시스템이라고 여기는데, ‘사금융’은 뭔가 불법의 냄새를 풍깁니다. 하지만 대학 병원을 의료 기관이라고 부르면서 개인 병원을 ‘사의료’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하는 일이 같다고 보는 거죠. 그런 점에서 학원의 교육을 ‘사교육’으로 분류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백 학교 교사는 학생들의 인성과 자질을 계발하기 위해 수업하고, 학원 강사는 성적을 잘 받는 꼼수를 가르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강의실에서 분필을 들고 학생들을 마주하면 그곳이 학교인지 학원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교육이든 공교육이든 성의 있는 교육자와 무성의한 교육자가 있을 뿐이죠. 다만 사교육이라 불리는 학원 시스템은 학교에 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조밀하게 개설돼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구성도 훨씬 유연하죠.
김 예를 들어 고2 학생이 미적분을 공부하고 있는데, 고1 수학 과정의 기초가 부실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학교 커리큘럼에서는 변화가 어렵지만, 학원에서는 단기 특강을 병행해 기초를 함께 다지면서 미적분의 진도를 나갈 수 있겠지요.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맞춤 강의를 유연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사교육 시스템의 장점입니다. 또 어떤 학생은 대형 강의에서 고난도 문제 풀이에 필요한 팁만 알려주면 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수 있고, 어떤 학생은 소수 수업에서 자신의 질문을 충분히 해결해주는 식의 수업이 필요하기도 하죠. 상위권 학생들이 듣는 수업을 따라 듣지 말고, 자신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맞춤식으로 찾아 듣는 것이 사교육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세한 교육들이 공교육권에서 이뤄질 수 있다면 사교육은 설 자리가 없어지겠죠.
김동영
㈜다선교육 대표
더학원 입시연구소 대표
전 ㈜타임교육 학원사업본부장
전 <시사저널> 교육 주간
백재훈
㈜다선교육 입시연구소장
전 ㈜유레카 논술 총괄 본부장
전 ㈜타임교육 미래탐구 입시연구소장
유정임
㈜뉴스1 부산경남 대표
<아이가 공부에 빠져드는 순간> 저자
전 부산경남 대표방송 ㈜KNN PD
전 (재)부산영어방송 제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