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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없는 청춘, 류준열

그가 말했다. “나는 게으른 배우이자, 겁 없는 배우예요.” 류준열의 2022년 겨울은 뜨겁기만 하다.

On December 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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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이후 언제나 열일 중인 배우 류준열이 웰메이드 사극 <올빼미>로 호평을 받고 있다.

영화 <올빼미>는 밤에만 앞이 보이는 맹인 침술사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하룻밤의 사투를 그린 내용이다. <왕의 남자>(2005)의 조감독 출신인 안태진 감독의 첫 상업 영화다.

류준열과 함께 유해진도 출연한다. 유해진은 그동안 주로 보여오던 친근한 이미지가 아닌 연기 인생 최초로 왕 역할을 선보인다. 류준열은 뛰어난 침술 실력을 인정받은 맹인 침술사 ‘경수’로 분한다. 두 사람은 영화 <택시운전사>(2017), <봉오동 전투>(2019)에 이어 세 번째 합이다. 유해진과 안태진 감독은 <왕의 남자> 이후 17년 만에 재회했다. 그뿐 아니라 <올빼미> 스태프들과 류준열은 서너 편 이상의 작품을 함께한 동료 그 이상으로 알려져 있어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실제로 류준열은 “개인적으로 같이 놀러 다닐 정도로 편한 사이다 보니 작품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따졌다”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류준열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통해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이후 영화 <더 킹> <택시운전사> <독전> <돈> <봉오동 전투> 등 다채로운 작품에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나는 게으른 배우… 이번엔 저질렀다

먼저 본인 영화의 감상평이 궁금하다.
내 연기에 대해서 말하기는 쑥스럽다.(웃음) 내가 내 영화를 재미있게 보지 못하는 편이다. 다만 영화 만듦새가 박진감 넘쳐 재미있게 봤다.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유해진 배우의 칭찬에 갑자기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됐다(류준열은 “굵은 기둥이 돼가는 느낌”이라는 유해진의 칭찬에 눈시울을 붉혀 이목을 끌었다).
오해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흘렸다.(웃음) 주변 사람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 나는 평소 눈물을 흘리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 당시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웃고 떠드는 현장이기보다는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 내내 촬영을 했고, 그 현장에서 깨치고 배우게 된 것들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해진 선배는 내가 배우 생활을 하면서 2~3년에 한 번씩 만나 작업을 함께 했다. 뭐랄까, 작품으로 중간중간 만나면서 해주셨던 좋은 이야기들이 겹치면서 눈물이 났다. 쑥스럽다.(웃음)

주맹증(밝은 곳에서의 시력이 어두운 곳에서보다 떨어지는 증상)에 걸린 침술사 역할이다. 핸디캡이 있는 역할은 처음인 것 같다. 도전에 대해 두려움이 있나?
아니다. 내가 좀 게으른 편이다. 사실은 너무 겁이 없기도 하다.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역할만 했다. 오디션을 볼 때도 무난한 역할만 고집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경쟁이 치열한 주인공 역할엔 별로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경쟁자가 많지 않아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다. 핸디캡 있는 역할이나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역할에는 대본 자체에 손을 많이 안 댄 것도 사실이다. 이번 <올빼미>는 딱 봐도 쉽지 않겠다 싶었는데, 그럼에도 대본이 주는 힘이 엄청났다. 그래서 저질렀다. 작품을 선택할 때는 당시의 내 컨디션, 감정 등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편인 것 같다.

주맹증을 표현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맹인들을 만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누구든 그렇지 않나. 첫날부터 가슴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굉장히 유쾌하셨다. 맹인이라고는 하지만 아예 볼 수 없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어느 정도 보이거나 또 뛰어다니는 분도 있었다. 어릴 때는 잘 보이다가 점점 안 보여 맹인 판정을 받은 분도 있다. 극 속에서 경수가 어두운 궁궐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장면에 대해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실제로 나의 편견으로는 뛰어다니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한데 맹인 학교에도 ‘뛰지 마시오’란 팻말이 있다고 해서 놀랐다. 맹인은 익숙한 공간에선 굉장히 능숙하게 생활한다. 맹인 학교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처럼 똑같이 뛰어다닌다고 한다. 실제로 만나보니 식사할 때도 능숙하게 하셨다.

시선 처리가 힘들진 않았나?
명확한 뭔가를 보고 있다는 걸 인지 못 하게 하는 게 관건이었다. 나는 패션쇼를 보는 걸 좋아한다. 모델분들의 눈빛을 보면 명확하게 어떤 걸 본다기보다는 꿈꾸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먼 친척 중에 시각장애인이 계셨다. 그분에 대한 기억도 떠올려봤다. 당시엔 그분들의 눈이 ‘꿈을 꾸고 있는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이번 역할을 하면서 그걸 표현하려고 애썼다. 한데 부작용도 있었다. 촬영이 끝난 지금까지도 아침에 일어나면 눈의 초점을 잡는 데 시간이 걸린다. 병원에 가서 여쭤보니 의식적으로 눈의 초점을 잡으려 애를 써야 한다고 하더라.

연기에 들어가기 전 캐릭터를 분석하는 방법은 뭔가?
사실 나는 작품을 준비할 때 내가 맡은 역할과 관련된 많은 분을 인터뷰하긴 하지만 게을러서인지 같이 생활한다거나 심층 인터뷰를 하는 타입은 아니다. 관객이 원하는 건 ‘이 캐릭터가 말이 되나 안 되나’인 것 같다. 요즘 관객들은 워낙 영리하고 내가 보는 것 이상으로 보신다. 어느 정도 캐릭터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만 납득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심층 인터뷰를 해서 아주 깊은 곳까지 소통하진 않는다. 일주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다 알고 표현하는 게 과연 맞나 싶은 생각도 든다. 실제로 그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내가 오히려 질문을 더 많이 받을 때도 있다. “연예인 누구는 어때요?”, “그 작품, 너무 잘 봤어요” 하며 질문을 하신다.(웃음) 나는 그저 직접 만나서 느낀 힌트 몇 가지를 캐릭터에 녹이는 편이다.

유해진 씨가 연기 인생 처음으로 왕 역할에 캐스팅됐다는 얘길 듣고 어땠나?
주변에서 ‘유해진이 왕을 한다고?’라며 의아해하는 분도 있을 테지만 난 그렇지 않다. 그래서 놀랍지 않았다. 그동안 해진 선배와 작품을 많이 하지 않았나. 그는 완성된 배우다. 오히려 영화에 큰 도움이 됐다. 덧붙이면, 이번 작품을 하면서 처음 호흡을 맞추는 느낌이 있다.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었다. 작품을 하면서 몇 번의 놀라운 순간이 있다면 그 작품은 이미 내게 성공한 작품인데, 해진 선배와 연기하면서 그런 순간이 있었다. 왜 대중이, 영화인들이 유해진이라는 배우를 사랑하는지 알게 됐다. 나름 영업 비밀이 있더라.

그 영업 비밀이 뭔가?(웃음)
노코멘트다. 말 그대로 영업 비밀 아닌가. 혹시 다른 배우들이 알게 되면 조마조마하시지 않을까?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면 오랜 시간 많은 분에게 사랑받고 있는 배우이지 않나. 그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대중이 느끼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느낌과 가장 겹쳐 있는 배우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밖에도 최무성, 조성하, 김성철 등 좋은 배우가 많이 출연했다.
특히 성철 씨는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해 놀랐다. 촬영이 끝난 뒤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좋은 얘기를 많이 나눴다. 멋진 배우들과 작업하는 게 행복한 일이구나, 다시금 느꼈다. 다들 고민을 많이 가지고 현장에 왔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 긴장감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모두 집중해 연기를 했다. 즐겁고 감사한 경험이었다.

침술사 역할이다. 연습은 어떻게 했나?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훈련을 받았다. 두루마리 휴지가 사람 피부와 비슷하다고 해서 빼곡하게 침을 꽂으며 연습했다. 얼마 전 침 맞을 일이 있어 한의원에 갔는데, 한의사 선생님이 혈 자리를 몇 개 알려줄 테니 직접 놓아보라고 농담을 하시더라.(웃음) 영화 속에서는 대역도 있었지만 내가 꽤 많이 놨다.

그동안 출연한 작품 중에 사극이 없다가 올해 개봉한 두 영화가 사극이었다.
수염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처음에는 수염을 안 붙이려고 했다. 첫 촬영 때 이준익 감독이 슬라이트를 쳐주러 오셨는데, 제 모습을 보고는 “수염이 왜 없어?” 하시는 거다. 사실 감독님도 나도 수염 때문에 고민 중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수염을 붙이고 첫 촬영을 시작했다.

이준익 감독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20년 이상 충무로에 있는 이준익 감독님과 같은 빌딩에서 근무하셨다. <왕의 남자> 1,000만 관객 돌파 후 아버지 사무실에 갔다가 이준익 감독님과 정진영 선배님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올라가면서 아버지가 “우리 아들도 연기를 한다”고 말했고, 이 감독님이 “몇 살이냐”고 물으셨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스무 살쯤이었다. 그랬더니 “서른 먹고 와” 하고 쿨하게 말씀하시더라. 실제로 나는 딱 서른에 영화 <소셜포비아>(2015)로 데뷔를 했다. 시상식에 왔다 갔다 하다가 감독님을 우연히 만나 인사드렸더니 “내가 (네 작품 중에) 볼 게 있을까?” 하고 물으시더라. <소셜포비아>라는 영화가 있다고 말씀드렸고, 그때 연락처를 주고받아 지금까지 쭉 연을 이어오고 있다.

학교 다닐 때부터 하고 싶은 역할만 했다.
오디션을 볼 때도 무난한 역할만 고집했다. 경쟁이 치열한 주인공 역할엔 별로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경쟁이 많지 않아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었다.
내가 좀 게으른 편이다. 핸디캡 있는 역할이나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역할에는 대본에 손이 안 가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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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하게 따져 물었다

이번 작품이 류준열이라는 배우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유독 스태프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사실 이번 촬영팀은 영화 <뺑반> <외계+인 1부> <독전> 등 작품 절반 이상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 같이 놀러 다닐 정도로 편한 사이다 보니 집요하게 작품에 대해 묻고 따졌다. 영화는 공동의 작업이다. 자기 몫을 잘하면 현장은 굴러가지만 배우가 연기만 하는 것 이외의 부분도 필요하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묻고 따지는 일이 많아졌다. 그 과정에서 스태프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도 배웠다. 스태프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게 영화 완성도를 높이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됐다.

영화 제작에도 관심이 있나?
당연히 로망이 있다. 또래 동료 중 입봉하지 못한 감독이 많다. 많은 대본을 받아보는 내 입장에서는 트렌드에 밝은 편이다 보니 신인 감독들과 이야기를 자주 나누기도 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제작자의 관점에서 임했다.
그간 해온 캐릭터를 보면, 평범한 듯하다가도 나중에 보니 어떤 탁월한 능력이 있는, 반전 캐릭터를 많이 한 것 같다. 의도된 바인가? 기본적으로 변화가 있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 변화하는 과정을 잘 표현해야 좋은 연기라고 어릴 때부터 선생님들에게 배웠다. 그 영향이 분명 있는 것 같다.

나름의 배우 로드맵이 있을 것 같다.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
들어오는 순서대로 매력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선택한다. 캐릭터보다는 영화 자체를 먼저 본다. 영화가 재미있으면 전작과 캐릭터의 톤이 비슷하다고 해서 지양하지는 않는다. 다행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섭외가 오는 편이다. 아직은 고정된 이미지가 없는 것 같다. 다만 살집이 있는 역할이나 살을 찌워야하는 역할은 안 들어오는 것 같다.

안태진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안 감독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다. 대체로 “난 다 좋아” 하고 말하시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하나하나 자세히 말해주신다. 무엇보다 안 감독님의 힘은 글이다. 압도적이다. 나는 잘 모르는 감독님과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안 감독님과 작업한 이후에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안 감독님의 글을 읽어보면 확신이 생긴다. 그냥 그 글대로 촬영을 하면 수월하게 다 풀리는 부분이 있더라. 그게 저력이다. 실제로 만나 뵙고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 안 감독과 같이 작업하면서 다른 신인 감독과도 해봐야겠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고, 또 많은 깨달음도 얻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감독님을 보고 느끼는 게 많다. ‘남들이 안 된다고 했을 때도 끈을 놓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면 결국 되는구나’ 싶었다. 오죽했으면 “감독님, 다음 작품은 어떤 거예요?”하고 물었겠나. 사실 나는 출연했던 모든 작품의 감독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현재 사진전을 열고 있는데, 함께했던 감독님 전부 다 오셔서 작품을 보고 축하해주셨다.

그러고 보면 올해도 열일했다.
영화 <외계+인 1부> <올빼미>를 비롯해 현재 드라마 <머니게임> 촬영이 막바지다. 거창하고 뚜렷한 목표를 향해 간다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다만 생각 이상의 결과가 보이는 순간이 많아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상상하지 않은 게 현실이 된 느낌이다.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일이 매일 생기고 있고 내일도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현재 극장가의 상황이 좋지 않다. 대부분의 작품이 스코어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미덕을 갖고 보면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싶다. 스코어만으로 다 설명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취재
곽희원(프리랜서)
사진
NEW 제공
2022년 12월호
2022년 12월호
에디터
하은정
취재
곽희원(프리랜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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