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는 김혜수다. 오랜만에 지상파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그는 저력과 내공을 과시하며 극을 이끌어가고 있다. “김혜수가 다 살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혜수가 출연하는 tvN 토일 드라마 <슈룹>(극본 박바라, 연출 김형식)은 조선시대 왕실의 치열했던 교육열 이야기다. 김혜수는 극 중 다섯 왕자를 자식으로 둔 조선의 국모 ‘임화령’ 역을 맡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시끄러운 일을 만드는 왕자들을 챙기느라 기품도 버린 화령은 궁에서 가장 발이 빠른 사람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연출을 맡은 김형식 감독은 기획 의도에 대해 왕실 교육 이야기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슈룹’을 대부분 영어 단어로 생각하는데, ‘우산’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우산이 그렇듯 자식들에게 닥쳐오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엄마의 사랑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내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의미에서 슈룹은 사랑의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혜수 외에도 태평성대를 이룬 성군 ‘이호’ 역은 최원영이 맡았고, 옥자연은 간택 후궁의 수장 ‘황귀인’으로 변신했다. 무엇보다 김해숙과 김혜수의 만남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해숙은 서자였던 이호를 임금으로 만든 능력의 소유자 대비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김형식 감독은 김해숙×김혜수 조합에 대해 “이 어려운 걸 해냈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는 “화령이란 인물은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소화 가능한 역할이라 누가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제작진 모두가 배우 김혜수를 꼽았고, 작품을 선택해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대비 역할은 기획 단계부터 김해숙 선배님이 해야 한다는 걸 작가와 얘기했다. 이번 작품도 기대했던 것 이상을 보여줘 현장에서 많이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 <장희빈> 이후 20년 만에, 또 영화 <관상> 이후 9년 만에 사극에 도전하는 김혜수를 만났다.
오랜만에 사극에 출연한다. 출연한 계기는 뭔가?
아주 어릴 때 데뷔했는데 첫 연속극이 사극이었다. 그리고 중간 지점쯤에 <장희빈>을 했고, 영화로는 <관상>을 했다. 이번에 만난 <슈룹>은 모든 게 신선했다. 조선시대지만 가상의 인물들로 구성했고, 퓨전 사극이 아니라 정통에 가깝지만 공기까지 새로울 정도로 신선했다. 캐릭터들도 현대적이고 생동력이 있었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 재미있어 기대하며 촬영했다. 출연 안 할 이유가 없었고, 여러분이 안 볼 이유가 없다.
캐릭터에 대해 설명해달라.
화령은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뭐든 해내는 아주 바쁜 인물이다(김 PD는 “화령은 역동적이고 위트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라고 부연했다). 그동안 사극 속 중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무겁지만 유쾌하고, 급하지만 신중하다. 다양한 매력이 있다. 사실 배우가 한 역할을 통해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건 도전 욕망이 끓어오르는 일이다. 이 작품을 하면서 많이 배웠다. 엄마는 힘이 세다는 것을 느꼈다.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는 비단 화령의 일만이 아니다. 특히 연기하면서 면밀히 신경 쓴 건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아이들을 대할 때, 남편이자 한 나라의 국왕을 대할 때, 위협하는 존재이자 시어머니인 대비를 대할 때, 내명부 동료이자 늘 도전받는 빈들을 대할 때, 어찌 보면 아랫사람이자 분신 같은 내명부 상궁들을 대할 때. 그 모든 태도가 화령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많이 바쁜 인물이다.
중전 자신은 비에 젖으면서도 어린 왕자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드라마 포스터도 화제가 됐다.
그 포스터 한 장으로 작품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포스터는 기능적으로 촬영하기 마련인데 <슈룹>의 포스터는 제목의 의미, 작품이 나아가야 할 길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미학적으로도 좋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어깨가 젖어도 아이를 위해 우산을 기울이는 엄마이자 큰 궁 안에 있는 한 여자, 그리고 아이가 엄마를 바라보는데 우산 속에서 아이와 엄마가 따로 또 같이 성장한다는 게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최근 작업한 포스터 중 정말 절묘한 콘셉트였다고 생각한다.
영화 <도둑들>에서 일명 ‘씹던껌’(김해숙 분)과 ‘팹시’(김혜수 분)로 호흡을 맞췄던 김해숙과 재회했다.
선배님 함께 출연한다고 했을 때 열광했다. 선배님은 매우 특별하고 어마어마한 배우다. 잠도 주무시지 않을 만큼 열정적으로 준비하신다. 온몸의 세포들이 살아나는 것 같은 자극을 주는 분이다.
이와 관련해 김해숙은 “감독님이 중전 역할을 혜수 씨가 맡는다고 슬쩍 귀띔했을 때 좋아서 박수를 쳤다. 연기도 좋지만 인품도 훌륭한 배우”라면서 “서로 에너지가 없으면 좋은 장면이 나올 수 없는데, 혜수 씨와의 촬영이 끝나면 항상 온몸에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연기하면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구나’ 하고 오랜만에 생각했다”고 화답했다.
드라마 <시그널>로 많은 사람에게 인생 드라마를 남겼다. 이번 <슈룹>은 어떤가?
내가 그런 걸 맞히는 감은 없지만, <슈룹>은 매우 특별하고 인상적인 드라마로 남을 수 있는 근거가 충분히 있다.(웃음) <슈룹>은 우리 아기들(세자와 대군들)이 매일매일 성장하는 게 느껴지는 드라마다.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한 땀 한 땀 공들여 촬영하고 있다. 1시간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슈룹>을 표현할 수 있는 해시태그는 뭐라고 생각하나?
‘#당신의슈룹이돼드릴게요’ <슈룹>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으로 지켜내는 이야기다. 언제나 그렇지만 요즘은 특히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나. 나의 사랑을 지키는 것만큼 누군가에게 사랑을 내주어야 하는 때다. <슈룹>은 왕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청소년들이 보기에도 자신을 대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캐릭터가 나온다. 이를 통해 부모의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반대로 엄마들은 내 아이를 사랑하고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한 번쯤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슈룹>은 종국엔 ‘내가 해낼 수 있는 사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킨다는 것이기 때문에 <슈룹>은 여러분의 우산이 돼드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