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은 남편과 동반으로, 다정하게 받는 편이다.
거의 매년 남편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는다. 검진 병원을 고르고, 검진 항목을 선택하고, 남편과 일정을 조율해 예약일을 잡고, 택배로 온 건강검진 안내문과 문진표, 검진 준비물을 챙기는 일련의 과정은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여행이나 나들이를 준비하듯 내심 즐겁기도 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건강검진이 나는 왜 들뜨고 좋았던 걸까?
엄밀히 말하면 건강검진은 전날부터 시작된다. 전날 저녁부터 물도 음식도 먹지 못하기 때문에 남편도 나도 그날만큼은 일찍 집으로 들어온다. 저녁 식사가 없는 저녁은 낯설다. 늘 분주하게 밥을 차리고 먹고 치우고 나면 후딱 지나가는 게 저녁인데, 금식을 하니 온 우주가 조용한 것 같다. 평소보다 고요하고 길게 느껴지는 그날 저녁에 우리는 공복인 상태로 나란히 앉아 문진표를 작성하곤 한다. 질환과 가족력에서 시작해 운동과 음주 횟수 등 생활 습관 체크부터 우울증과 스트레스 지수를 체크하는 항목까지. 내 몸과 마음을 차분히 돌아보는 명상의 시간이나 다름없다. 남편은 단숨에 체크하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며 자리를 금방 벗어나지만 말이다.
다음 날엔 검진을 받기 위해 우리는 새벽부터 일어나 지하철을 탄다. 검진 당일엔 운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차를 집에 두고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결혼 전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같이 데이트하던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 함께 출근하는 것 같은 기분도 좋다. 검진 센터에 도착하면 남편과 나는 검사 순서에 따라 따로 움직이지만 동선은 자주 겹친다. 남편과 간간이 얘기를 나누고 남편이 검사를 잘 받고 있는지 신경 쓰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우리는 대망의 수면마취 위내시경을 끝으로 다소 몽롱하면서도 개운한 상태로 만난다. 그리고 고대하던 순간을 맞는다. 센터에서 준 식권을 행복하게 받아 들고 서둘러 밥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죽이나 북엇국 정도의 소박한 선택지도 행복한, 우리는 공복이니까. 점심을 먹은 뒤에는 근처 카페에서 차와 디저트를 먹곤 한다. 지난 건강검진은 여의도에서 받았는데 우연히 들른 ‘폴앤폴리나’에서 구입한 버터 브레첼, 허브빵이 너무 맛있어서 우리는 나이도 잊은 채 길에 선 채로 다 먹어버렸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남편은 늘 그렇듯 꾸벅꾸벅 졸았고, 나는 그런 남편을 자게 두었다. 오전에는 놀았으니 오후에는 일할 거라며 집을 나서고야 말 사람이니까.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건강검진일의 풍경이지만 돌이켜보면 나에게 건강검진은 특별한 쉼이다. 건강을 챙기면서 당당하게 쉴 수 있는, 쉬어야 하는, 나의 반려자와 함께 몸과 마음의 휴식을 누리는 그런 날. 일주일쯤 뒤에는 한 발짝 더 다가온 노화와 질병, 이별, 죽음의 시간을 엄중하게 예고하는 건강검진 결과지가 경고장처럼 날아들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너무 겁내지 않기로 한다. 남편과 손잡고 함께 건강검진을 받고 맛있는 밥과 디저트를 즐기는 내년을 즐거운 마음으로 또 기다릴 뿐. 두려움이나 걱정보다는 감사함으로 인식을 전환해본다. 그게 건강에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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