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서 금방 빠져나가 처벌 어려워”
보통 마약은 짧으면 1~2개월, 길면 6개월 이상도 체내에 남아 있다. 머리카락에서 장기간 투약 확인이 가능한데, GHB는 24시간이면 체내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GHB가 섞인 술이나 음료를 먹은 기점을 고려할 때 성범죄를 당한 당일 오전에 검사해야만 입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수사 구조나 현황을 고려할 때 불가능에 가깝다.
남자친구로부터 GHB가 섞인 술을 먹고, 불법 촬영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20대 여성 장 아무개 씨 사건을 보면 GHB의 무서움을 잘 알 수 있다. 장 씨는 2020년 7월 호프집 화장실에서 1시간 동안 경찰을 기다렸다. 남자친구의 휴대전화를 우연히 봤다가 몰래 자신의 몸을 촬영한 사진을 발견한 것. 이때까지만 해도 ‘몰카’가 범죄의 주요 사건이었다.
하지만 경찰 출동 후 사건은 커졌다. 남자친구의 휴대전화 안에는 성관계를 하면서 촬영한 영상도 있었는데 이는 장 씨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남자친구는 “술을 먹고 난 뒤에 해서 그렇다”고 경찰에 해명했고 경찰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평소 주량을 감안할 때 와인 1~2잔에 취할 리 없다는 게 장 씨의 주장. 장 씨는 GHB를 의심하고 있다. 장 씨의 아버지는 “동영상은 경찰서에서 본 적이 있는데 영상 속에서 딸의 눈동자가 돌아가 있었다”며 “GHB라고 불리는 물뽕에 당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건 직후, GHB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장 씨의 몸에서 마약을 찾는 조치도 하지 못했다. 경찰은 결국 남자친구를 무혐의 처리했다. 영상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등 의식이 없다고 보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관세청이 적발한 GHB는 2020년에 비해 61배 급증했다. 적발되지 못한 GHB도 60배 이상 늘어났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하지만 수사는 미진하다. 아니,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 GHB가 등장한 이후 24년 동안 성범죄 사건에서 GHB가 증거물로 검출된 것은 단 1건에 불과하다. GHB, 물뽕이 강남 클럽을 일대로 기승부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 씨 사건을 잘 아는 검사 출신 변호사는 “장 씨 사건처럼 아예 성관계를 하는 동영상이 있어도 거꾸로 피해자에게 더 불리하게끔 만드는 게 GHB”라며 “마약이 진화하는 것에 비해 수사기관이 이를 입증하는 능력이나 구조는 뒤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