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가을이다. 문화적이고도 예술적인 나날을 보내고 싶은 계절이다. 사실 각박해지는 세상 속에서 계절과 상관없이 더욱 예술에 집착하게 된다. 빌어먹을 세상.(웃음)
요즘 내 힐링 타임은 출퇴근길 차 안에서 듣는 클래식 음악이다. 클래식 문외한이었던 나를 클래식으로 입문하게 해준 건 피아니스트 조성진이다. 수년 전 그의 연주를 듣고 밀려오는 감동에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하고 댓글도 달았다는 민망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후 나는 클래식 라디오 채널을 고정해두고 출퇴근길에 호사를 누리고 있다. 왜 바흐이고 모차르트인지, 왜 베토벤이고 슈베르트인지를 온몸으로 알게 해주는 우아한 시간이다.
물론 나는 잘 만든 대중음악과 드라마도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산울림과 비틀스가 그 예다. 나는 산울림의 음악을 처음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와, 이 아저씨들이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비틀스 저리 가라인데….’ 산울림의 음악을 듣고 한글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김창완 아저씨가 배우 못지않게 연기를 잘하는 이유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 단번에 이해가 된다. 그는 예술가거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이토록 훌륭한 음악을 하는 밴드는 없었다고.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비틀스 음악 역시 내가 애정하는 불변의 플레이리스트다. 주로 모닝 송이나 청소 송으로 산울림의 음악과 번갈아가며 애용한다. 당대 일본의 대표 작가이자 음악 애호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비틀스의 음악은 ‘뭔가’ 달랐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너무나 동감하는 바,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비틀스의 음악은 ‘뭔가’ 달랐다. 지금도 나는 그 다름에 빠져 있다.
‘그림’은 또 어떤가. 한 20년 전인가, 홀로 파리를 여행한 적이 있다. 지적 허영심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갤러리 투어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던 여행이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그림이 내게 크나큰 영감과 휴식을 준다는 걸 명확히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여행을 떠나면 무조건 그림 쇼핑을 한다. 나름의 여행 루틴이다.
나는 마감을 하다 말고도 갤러리에 가곤 한다. 이 지겹고 고단한 마감을 버티게 해주는 게 그림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 뚝딱 예술과 마주하면 다시금 마음의 공간이 생긴다. 마감할 수 있는 여력도 생긴다. 예술의 힘은 이토록 엄청나다.
얼마 전에 길을 걷다가 우연히 ‘가나아트센터 보광’에 들렀다. 콧대 높은 메인 갤러리들이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생각에 괜히 심쿵했다. 갤러리는 시장통 한가운데에 자리한 아파트 1층 상가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문 하나 사이로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느낌, 갤러리 안에서 보는 바깥세상의 일상적인 모습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마치 그것을 유도한 듯 구석구석 창과 유리 천장을 설치해둔 위트를 보면서 괜스레 또 한 번 심쿵했다. 예술이 별건가. 내가 좋으면 예술이다. 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