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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의리

On September 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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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가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정우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데뷔작에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출연한다는 건 어느 감독이든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정재에겐 더욱 그렇다. 정우성이 한배를 탔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실제로 정우성은 주연배우이지만 동반자의 느낌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우성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신중함이 묻어났다.

그의 말마따나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두 스타가 23년 만에 다시 한 작품에 출연한 만큼 연예계의 시선은 각별했다. 기대도 컸지만 냉철하게 평가하는 시각도 있었다. 정우성이 영화 <헌트> 출연을 세 차례 거절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우성은 1997년 영화 <비트>를 통해 ‘한국의 제임스 딘’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청춘의 아이콘이 됐다. 그는 “청춘의 아이콘? 그 수식어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나이 먹고 더 가야 할 길이 많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우성은 인터뷰 내내 ‘이정재 감독’이라고 호칭했다. ‘인생의 오랜 벗’이라고 말했다. 존중과 애정이 묻어났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됐다.

출연을 세 번 거절한 이유?

친구가 연출한 영화이자 본인의 주연작이다. 영화를 본 소감이 궁금하다.
재미를 떠나 의미가 큰 영화다. 이정재 감독과 함께하는 작품인 만큼 우리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가 관건이다. 그 최선을 잘 담지 않았나 싶다. 영화에 임하는 자세가 진지해야 했고, 더 치열해지려고 노력했다. 만족한다. VIP 시사회가 끝나고 많은 동료가 자극제가 됐다며 고맙다고 말해줬다.

연기에 대한 평가도 좋다. 스스로는 어떤가?
감사하다. 사실은 내 연기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정재 감독과 함께 연기하지 않았나. 두 캐릭터의 성질들, 그러니까 그 역할을 정우성과 이정재가 하고 있기 때문에 외적인 평가가 분명히 있을 테고,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구조였다. 그래서 더 치열하게 인물을 표현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봤을 때 괜찮은 모습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정우성 씨도 연출을 꽤 오래 준비했다. 어쩌다 보니 이정재 씨가 ‘등 떠밀리다시피’ 연출을 맡고 영화도 먼저 공개했는데 어떤가?
주변에서 “연출을 직접 해보는 건 어때”라고 이정재 감독에게 말했을 때 스스로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라는 것도 잘 안다. 등 떠밀려서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헌트>라는 작품은 제작부터 개봉까지 빠른 흐름을 탄 영화다. 그게 이 영화의 운명이다.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해도 안 되는 작품도 많다. 좋은 타이밍을 타고난 작품이다. 물론 그게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시간적 여유가 덜하기도 하니까. 그 모든 것을 옆에서 봤다. 시기나 질투를 할 필요도 없다. 줄곧 이정재 감독에게 “우리끼리 즐기는 작품이거나 우리끼리 의미 부여하는 작품으로 끝나선 안 된다”고 말해왔다. 세상에 나왔을 때 “자기네들끼리 놀았네” 하는 가벼운 평가를 받으면 안 되지 않나. 말하진 않았지만 서로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덕분에 기분 좋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참석하게 됐다.

축하한다. 더 의미 있는 것은 나란히 ‘감독’으로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참석한다는 거다.
이정재 감독의 <헌트>는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 내가 연출한 <보호자>는 스폐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다른 섹션에서 다른 시사를 치르게 됐는데 그것도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두 영화인에게 가장 큰 행사 자리를 내준 것이다. 의미 있다.

개봉 시기와는 별개로 이정재 감독보다 사실 연출 경험은 빨랐다. 조언해주진 않았나?
그저 옆에서 보면서 ‘지치지 말아야 하는데’, ‘현장에서 귀를 닫으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다행히 여러 의견을 잘 수렴하더라. 감독이라는 자리가 고독하다. 옆에서 손 닿으면 살짝 기댈 수 있는 거리 정도에 내가 있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절친이라고 해도 그 친구의 고민을 100% 이해할 수는 없다. 바라봐주고 또 촬영 현장에서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내 임무라고 생각했다.

이정재 감독 못지않게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보여준다기보다는 실제로 잘해내야 하는 게 우선이었다. 물론 이정재 감독에게 든든한 큰 기운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같이 연기할 때 긴장을 놓지 않는 상대로 존재하고 싶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오히려 집중하고 과묵했던 것 같다.

이정재 감독은 “다시는 감독을 안 하겠다”고 하더라.(웃음)
그도 그럴 것이 연출 겸 배우를 동시에 하지 않았나. 축구로 따지면 공격과 수비를 다 하는 느낌이다. 내가 골을 쏘고 내가 막아야 하는 상황이랄까? 정신적 피로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상상을 해봐라. 현장에서 캐릭터의 의상을 입고 감독 역할을 해야 한다. 일단 몸의 무게부터 다르다. 표정도 다르고 난이도로 다르다. 내 출연 분량이 없는 날엔 그야말로 날아갈 듯 가볍다.

수없이 많은 촬영을 해왔는데 ‘이정재 감독의 현장’은 무엇이 달랐나?
모든 감독이 다 다르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는 작품을 같이 한다는 부담감이 제일 컸다. 그래서 즐기질 못했다. 여유로움이 아닌 치열함이 필요했다. 치열함을 즐길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다. 이정재 감독 역시 본인이 어떤 감독인지 개봉 후 한참 뒤에 스스로 되새김하는 시간이 올 것이다.

이정재 감독이 시나리오를 수정할 때마다 출연 부탁을 했는데 수차례 고사한 것으로 안다.

그 덕분에 이정재 감독이 <오징어 게임>에 출연할 수 있었다. 그 전에 내가 승낙했다면 <오징어 게임>은 없었다. 시기상으로 그렇다.(웃음) 사실 애초부터 ‘열어놓고’ 대화를 많이 했다. 시나리오와 캐릭터에 대한 의견을 많이 주고받았다. 단순히 시나리오가 좋다, 나쁘다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지 않나.

배우 황정민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카메오라는 게 어찌 보면 전체적 흐름을 깰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쉽지 않은 선택인데 해주셔서 든든했다. 역시나 철두철미하게 준비해주셨다.

액션 영화다 보니 체력 관리도 필요했을 것 같다.
체력이 거의 바닥이었다. <보호자>를 끝내고,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정우성 제작)의 후반 작업을 보러 서울을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었다. 이정재 감독은 감독대로 체력이 바닥나고, 나는 나대로 그랬다. 바닥에 붙어 있는 힘까지 끌어올렸다. 앉았다 일어만 나도 소리가 나는 나이이지 않나.(웃음)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이정재 감독과 함께 영화에 출연했다. 적기였다는 생각이 드나?
그런 것 같다. 기다린 시간을 얼마나 가치 있게 만드느냐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 도전만큼은 둘 다 성실하게 해내지 않았나 싶다.

정우성에게 이정재란?(웃음)
긴 시간을 함께했다. 되돌아보면 서로에게 늘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받았던 동료이자 벗이었다. 서로를 존중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영화인으로서 둘 다 이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도 크다. 현재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았고, 안주하려고 하지 않았다. 서로의 도전에 늘 자극이 되고 또 의지했던 친구가 이정재 감독이다.

‘청담 부부’라는 애칭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팬의 댓글로 시작된 애칭이다. 귀엽다.(웃음) 그 애칭에 대해 많은 분이 장난스러운 리액션을 해주는 것도 재미있다.

도전하고 싶은 게 있나?
꾸준히 해나가는 것 자체가 도전이다.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어렵다. 나는 연출을 계속하고 싶은데 관객이 원치 않으면 꾸준히 할 수 없지 않나.(웃음) 꾸준히 영화를 하고 싶다. 그게 전부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2022년 09월호
2022년 09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