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미니멀리즘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지닌 만큼 심플하고 시크한 실루엣과 사랑스러운 디테일을 조화롭게 풀어내는 의류 브랜드 앤디앤뎁. 단연 앤디앤뎁을 처음 설립한 윤원정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취향과 꼭 닮아 있다. 1990년대 초,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실무를 하다 귀국해 1999년 김석원 대표와 손잡고 두 사람의 디자인 성향을 결합한 앤디앤뎁을 론칭했다. 2008년부터는 뉴욕에서 컬렉션을 발표했고, 2011년 세컨드 브랜드 뎁(DEBB), 2017년 콜라보토리(COLLABOTORY)를 차례로 론칭하며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요리에 진심이라는 윤원정 디렉터는 최근 개인 SNS에 직접 만든 요리 사진이나 레시피를 자주 포스팅하는 데 이어 #데비스큐레이션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테이블웨어를 선보이는 프로젝트까지 진행하고 있다고. 패션뿐만 아니라 리빙까지 박학다식한 면모를 지닌 윤 디렉터의 라이프스타일 스토리를 공개한다.
얼마 전 앤디앤뎁에서 6·25 참전 용사 제복 제작 프로젝트 <제복의 영웅들>을 진행하며 화제를 일으켰죠.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요.
국가보훈처에서 문의가 왔었는데, 참전 용사들이 공식 행사 때마다 변변한 제복 없이 조끼만 입고 있다는 얘기에 디자이너로서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 참여하게 됐어요. 남성복이라 자연스럽게 김석원 대표가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했죠. 저는 자문을 구할 때만 의견을 냈어요. 디자인이 채택되고 참전 용사 대표 10명의 제복을 몸에 맞게 제작하는 과정에서 직접 사이즈를 재러 가고, 내부 샘플실에서 직접 다 제작할 만큼 정성을 쏟았죠. 영상 촬영을 위해 모였을 때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옷매무새며 훈장 다는 위치 등을 스타일링했어요. 이 모든 작업을 김 대표가 진행했고 저는 옆에서 조용히 응원하는 게 다였기에 국가보훈처에서 제작한 홍보 영상의 인터뷰를 보고 굉장히 뭉클했죠. 모든 진행 과정을 알고 있던 저조차 큰 감동을 느꼈으니 많은 분이 공감하고 지지해주신 것 같아요. 너무나 뜨거운 반응에 저희도 놀랄 정도였어요.
<제복의 영웅들> 외에도 앤디앤뎁에서 수많은 유니폼 제작 작업에 참여했잖아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유니폼 제작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파라다이스, 안다즈 등 호텔과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 그리고 제가 수원대 교수 재직 시절 제자들과 함께 진행했던 맥도날드, 뉴욕컬렉션 후원으로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온 아모레퍼시픽, 영훈국제중학교와 신일고등학교 같은 학교까지 수많은 유니폼 작업 과정이 떠오릅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업종별로 동일한 유니폼이 아니라 전 직원이 그날그날 새롭게 스타일링할 수 있도록 하나의 컬렉션을 큐레이션하듯이 진행한 ‘안다즈 서울 강남’ 유니폼이에요. 새로운 접근으로 기억에 남아요. 또 캐디복 유니폼 디자인을 위해 캐디 직원들을 인터뷰하면서 고객을 위한 서비스는 기본, 악천후에 대비하고 게다가 단정하기까지 해야 하는, 생각지도 못한 그들의 고충을 너무나 잘 알게 됐어요. 캐디 유니폼 디자인과 제작 경험을 토대로 플레이 뎁(PLAY DEBB)이라는 골프웨어 라인을 만드는 데 도움이 돼 보람을 느끼기도 했고요.
평소 추구하는 패션 스타일이 궁금해요.
심플한 실루엣에 고급스러운 디테일로 포인트를 주는 걸 좋아해요. 그 디테일이 컬러 대비가 될 수도 있고, 액세서리를 활용할 수도 있어요. 올 블랙에 아이보리로 포인트를 주는 저의 스타일은 앤디앤뎁과 뎁에 잘 녹아 있습니다.
요즘 가장 즐겨 입는 패션 아이템을 하나 꼽아주세요.
1920년대풍 밀라노 조직의 니트 드레스를 정말 자주 입어요. 톡톡하게 두께는 있지만 시원한 질감이고, H라인 실루엣이 허리를 압박하지 않으면서도 날씬해 보이게 해줍니다. 아이보리 컬러와 포인트로 들어간 3개의 스트라이프가 스포티브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죠. 여기에 편한 자리에 갈 때는 진주 귀고리만, 조금 포멀한 자리에 갈 때는 목걸이를 매치합니다. 또 얼마 전 프라다의 화이트 라피아 버킷 해트를 구입했는데, 주말에 외출할 때나 골프를 치러 갈 때 등 여러모로 유용해요.
그릇 컬렉션이 상당해요. 그중 가장 애용하는 브랜드는 무엇인가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리차드 지노리, 태국의 야나칸, 프랑스의 아스티에 드 빌라트를 좋아하지만 풀 세트로 구비하기보다는 믹스매치를 즐기는 편이에요. 이혜미·양유완·이정미 작가의 작품도 즐겨 쓰고 있어요.
최근 윤 디렉터가 진행하는 #데비스큐레이션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제가 워낙 먹는 것에 진심이라 요리 사진이나 레시피를 자주 올리다 보니 테이블웨어에 대한 문의를 많이 받았어요. 저의 취향에 공감해주는 이들이 많아 참 감사하죠. 하나하나 답변을 달다가 직접 엄선해 구입을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앤디앤뎁의 온라인 몰에서 앤디앤뎁이 제작하는 옷과 백, 액세서리가 아닌 패션 디자이너인 제가 사랑하는 그리고 앤디앤뎁 의상의 결과 함께하는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프로젝트를 하게 됐죠. 지금까지 아틀리에 퀸스라는 테이블 매트 브랜드와 태국의 아티스트가 만드는 도자 브랜드 야나칸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뜨거웠어요. 두세 달에 한 번씩 진행할 예정인데 다음 큐레이션은 어떤 것을 할지 늘 행복한 고민 중입니다.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걸로 유명해요. 최근 만든 요리 중 가장 맛있었던 메뉴는 무엇인가요?
최근 여러 레시피를 종합해 저만의 세비체를 만들었는데 너무 성공적이었어요. 세비체는 페루 등 중남미 지역에서 해산물을 라임즙이나 레몬즙에 절여 먹는 음식이에요.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니 이런 상큼한 음식이 당기더라고요. 유튜브에서 검색해보면 재료와 레시피가 다양하게 나오는데, 제 취향대로 만들어봤어요. 먼저 광어회를 그릇에 펴고 소금과 흰 후춧가루를 뿌린 다음 랩으로 덮어 냉장실에 넣어둬요. 잘게 다진 샬롯은 화이트와인 비네거에 잠길 정도로 부어 매운맛을 빼줍니다. 그다음 다진 고수 한 줌, 샬롯, 라임 제스트와 즙, 소금 간을 기호에 맞게 추가해 소스를 만들어 광어회 위에 부어주면 끝이에요. 그 위에 이탤리언 파슬리와 고수, 올리브오일을 믹서에 갈아 만든 허브오일을 더하면 맛은 물론이고 색감도 예뻐 보는 맛까지 끌어올린답니다. 동일한 레시피로 메인 재료인 광어회 대신에 데친 새우나 오징어, 신선한 관자, 연어 등 다양하게 응용이 가능해요.
메이크업 루틴을 알고 싶어요.
토너는 생략하고 아이크림-에센스-크림 순으로 보습 케어를 한 뒤 선크림과 비비크림을 발라 베이스 메이크업을 마칩니다. 색조는 아이브로 펜슬로 눈썹을 살짝 메운 다음 뷰러로 속눈썹을 올리고, 바비 브라운의 롱웨어 젤 아이라이너로 눈매를 또렷하게 연출해요. 그리고 마스카라와 립스틱을 바릅니다. 주로 아이라인 그리는 데 공들이는 편이죠.
뷰티 아이템 중 재구매할 정도로 만족하며 사용한 제품이 있나요?
라프레리의 캐비아 아이 크림이요. 라프레리는 워낙 제품력이 좋기로 유명하잖아요. 저 역시 라프레리의 오랜 팬이랍니다. 특히 이 아이 크림은 떨어질 만하면 다시 구매해 꾸준히 쓰는데 피부가 탱탱해진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어요. 최근에는 페이스 스톤과 크림이 함께 들어 있는 라프레리 제품을 사용하는데, 크림을 바른 뒤 페이스 스톤으로 턱선 부위를 마사지하면 얼굴선이 살아나서 애용하죠.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일과가 늘 쫓기듯 바쁘다 보니 기본적으로 잘 먹고 잘 자려고 노력해요. 최근 건강기능식품을 다양하게 구입했는데 끝까지 챙겨 먹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비타민 C는 빼먹지 않죠.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비법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아이들과 ‘객관적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소한 문제에 하나하나 집착하거나 고민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여유 있게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일과 아이들을 다 잘 챙기고 싶은데 현실적으론 시간이 부족하니 약간씩 ‘포기하며 절충하기’가 습관이 됐어요. 심지어 아이의 생일 파티를 기획했다가 업무 상황 때문에 하루 전날 취소한 적도 있었죠. 당시에는 아쉬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돌이켜보니 이런 마인드 덕분에 지치지 않고 가정을 잘 꾸려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엄마가 바쁜데도 아이들이 착하게 자라줘 고마울 뿐입니다.
디자인 작업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디자인의 영감은 어디에서든 옵니다. 요리하다가도, 색감이나 질감을 보다가도, 영화나 음악, 작가의 페인팅을 감상하다가도 영감을 얻을 수 있어요. 마음을 열고 좋은 자극을 많이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쉬는 날에는 주로 미술관에 가거나 쇼핑을 하는데 가장 즐거운 시간은 먹어보고 싶었던 요리를 할 때예요.
요즘 가장 몰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일적으로는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생활환경을 눈여겨보며 업무 루틴과 조직을 새롭게 전환시키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또 그동안 앤디앤뎁은 판매 채널을 백화점으로만 제한했었는데, 최근 본사에서 예약으로만 진행하는 오트 쿠튀르 서비스에 대한 반응이 좋더라고요. 이와 관련해 앤디앤뎁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기획해볼까 해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잘 구현해보는 것이 목표예요. 개인적으로는 제 개인 유튜브 채널의 콘텐츠 아이디어를 늘 고심하고 있어요.
여름휴가 계획을 살짝 공개해주세요.
방콕으로 휴가를 떠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업무 일정이 많아 확정을 못 하고 있어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서울 근교의 조용한 공간을 찾아 온전한 휴식을 누리는 것도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