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행복도 영원한 불행도 없어요”
20대를 미국 뉴욕에서 보냈어요.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며 열정적인 교수님과 학우들과 원 없이 탐구하고 연마하며 감성을 키웠죠. 그때 충전된 기본기와 감성으로 지금껏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에요. 서울을 떠난 지 10년 만에 돌아와 1999년 1월 앤디앤뎁을 론칭하고 같은 해 7월에 첫아이를 낳았어요. 꿈에 한 걸음 다가간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가족은 모두 뉴욕으로 이주한 상태였기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지난한 시간이기도 했죠. 닥치는 대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지냈어요. 몸을 바쁘게 움직여 고민에 빠질 틈을 없애는 게 오히려 약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정신없이 살다 보니 오늘을 맞이했어요. 되돌아보면 꽤 괜찮았던 인생 같아요. 영원히 행복하지도 또 영원히 불행하지도 않은 게 인생인가 봐요. 패션 디자이너 윤원정(앤디앤뎁 상무)
-
“출산 후 달라진 일상의 태도”
첫아이를 출산하면서 생명의 고귀함을 깨달았어요. 아이의 살결과 검고 큰 눈동자를 보면서 ‘모든 사람은 이렇게 태어나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생각을 했죠. 육아휴직 3개월 동안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봤어요. 인생에서 일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정도로 일에 매진했었죠.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목표를 이루는 데 급급했어요. 직원들에게 쓴소리했던 날들도 불현듯 머리를 스쳤어요. 따뜻한 방식으로 성공을 도모할 수 있었는데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복직 후에는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아티스트들과 소통했어요.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를 시도했고, 지금은 자연스레 비즈니스 외에 일상적인 고민까지 나누고 있어요. 새로운 인재를 영입할 때도 그 사람의 가능성보다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과 꿈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세상에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까요. 에스팀 대표 현수진
-
“무너진 나를 일으키는 아버지와의 추억”
중학교 1학년 때 시험 성적이 잘 나와서 보상을 받았어요. 부모님께서 평소 제가 읽고 싶었던 책을 사주기로 하셨죠. 아버지와 인천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어요. 서울에 도착했을 때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졌죠. 아버지와 저는 비를 맞으며 서점에 갔고, 갖고 싶었던 소설책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샀어요. 그날의 기쁨이 잊히질 않아요. 당시 집안 형편이 굉장히 어려웠음에도 부모님께선 공부를 열심히 한 딸에게 보상의 기쁨을 알려주려고 하셨어요. 읽고 싶은 책을 샀다는 기쁨도 있지만, 아버지와 함께 서점으로 향하면서 느꼈던 설렘이 아직도 선명해요. 그날 아버지가 “비를 맞는 건 살아 있음을 느끼는 방법 중 하나야”라고 하셨거든요. 그러곤 같이 빗속으로 뛰어들었죠. 언제 떠올려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기억이에요. 방송작가 주기쁨(MBN 예능 <고딩엄빠>)
-
“다음 선물을 기대하며 살아요”
유튜브로 첫 수익을 얻었을 때예요. 휴일도 없이 날마다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해 업로드하느라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었죠.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에는 인생이 버겁게 느껴졌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튜브 성장에 전력을 다했어요. 그리고 채널을 개설한 뒤에는 잘 이끌어나가기 위해 힘썼죠. 힘든 일을 마주하면 고되다는 생각이 들지만, 훗날 좋은 날을 맞이하기 위한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삶이란 인생의 길에 끊임없이 놓인 아직 열어보지 않은 선물 상자라고 생각해요. 포장지를 풀었을 때 어떤 선물이 들어 있을지 설레고, 열어본 선물 상자 안에 원하지 않은 선물이 들어 있으면 다음 선물을 기대하면서 살아요. 유튜버 정보람(유튜브 <보라미TV>, K-QUEEN 9기)
-
“자신으로 돌아가세요”
저의 분신 ‘코코샤넬’이 탄생한 지 어느덧 20년이 됐어요. 저도 늙고 코코샤넬도 늙었지요.(웃음) 그래서 지난해 ‘버블코코’를 탄생시켰어요. 저의 2차적인 분신으로, 코코샤넬을 아트 안에 영생시키고 싶어서 탄생시킨 팝아트 고양이예요. 언젠가 우리는 죽지만 작품은 영원히 남잖아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 버블코코가 등장하는 작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동심으로 돌아가게끔 무장해제시켜요. ‘이유가 없는 행복’을 주는 존재랄까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개인적인 일로 계속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극복 중이에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아트에 대한 재능을 주셨고, 더불어 긍정적인 천성도 주셨어요. 여자로서 삶은 비참하지만 아티스트로서는 자양분이 된 건 분명해요. 아트는 제 전부예요. 20대 때부터 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항상 “자신으로 돌아가세요. 꿈을 향해 나아가세요”라는 말을 해왔어요. 저는 지금 저 자신에게 더욱 집중하며, 꿈을 향해 어느 때보다 전진 중입니다. 덕분에 한결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팝아티스트 낸시랭
-
“오랜 꿈이었던 기자가 됐습니다”
<우먼센스> 기자로 매체의 힘에 기대어 많은 사람과 대화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엄청난 에너지를 얻는 건 단연 인터뷰 촬영 현장이에요. 기사 상단엔 에디터의 이름이 기재되지만, 많은 사람의 땀과 노력이 모인 결과물이에요. 포토그래퍼, 스타일리스트,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소속사 직원들까지. 하나의 그림을 근사하게 그리기 위해 각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죠. 지칠 때면 스태프의 노고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세를 올바르게 고쳐 앉아요. 찬란하고 아름답게 기억되는 시간을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우먼센스> 취재팀 김연주
-
“불행과 행복 사이”
어렸을 때는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요.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죠. 내가 태어나 사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고민했는데, 결국 객관적인 시선으로 내 인생을 바라보면 나름의 즐거운 순간도 꽤 있더라고요. 아버지 사업이 힘들어져 어렵게 살다가 다시 재기해 번듯한 아파트로 이사 가던 어린 시절의 기억, 대학에 합격하고, 매거진 에디터로 입사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그리고 현재까지 무탈하고 평범하게 살고 있는 것 자체가 모두 꽃과 같이 아름다운 기억이에요. 패션 칼럼니스트 명수진
-
“처음부터 잘할 순 없잖아요”
‘이 길이 과연 나의 길이 맞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때가 있어요. 하지만 매번 다시 용기 내어 마음을 다잡았죠. 신기하게도 <우먼센스>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던 때예요. 에스닉 스타일이라는 인테리어 화보 콘셉트를 받았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역시나 우려 속에 시작해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 스스로에게 부끄러웠어요. 한데 한 달 뒤에 기자가 다시 작업을 의뢰하는 거예요. “칼럼이 별로였을 텐데 왜 다시 같이 하자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솔직하게 물으니 “처음부터 잘할 순 없잖아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한마디가 엄청난 힘이 됐어요. 덕분에 지금의 순간을 맞이한 게 아닐까 싶어요. 인테리어 디자이너 권순복(마젠타 대표)
-
“우여곡절 끝에 찾은 삶의 밸런스”
많은 사람이 모델, 가수,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20~30대가 저의 전성기라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심적으로 편안한 지금이 훨씬 행복해요. 평생의 짝을 만나 결혼하고 반려견 오월이를 새 식구로 맞이하면서 삶의 안정을 얻었어요. 꿈꿔왔던 뷰티 브랜드를 론칭해 일의 만족도도 높고요. 비로소 일과 일상의 행복 밸런스를 찾았다고 해야 할까요? 지난 23년간 활동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졌던 시기에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버텨준 저 자신에게 고마워요. 생각해보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고 소중하게 대했어요. 어느 때보다 스스로에게 인색한 시대인 거 같아요. 오늘 하루도 잘 버티고, 살아낸 자신을 칭찬해주면 어떨까요? 방송인 한영
-
“깨달음이 없었다면 행동하지 못했을 거예요”
젊은 날에는 일에만 매진하며 살았어요. 그러다가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달라졌어요. 당시에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거든요. 아버지는 영어영문학과 교수였어요. 가족들과 함께 여가 시간을 보낸 기억이 손에 꼽힐 정도로 일만 하던 분이었죠. 때때로 그런 아버지와 제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을 이어갔어요. 결론은, ‘내게 집중하는 삶’이었어요. 어린 시절 저는 음악을 사랑했는데, 음대에 진학하고 싶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을 정도죠. 최근에 첼로를 배우고 있어요. 깨달음이 없었다면 행동하지 못했을 일이죠. 한의사 정지행
-
“위로를 청할 수 있는 용기”
회사 운영을 시작할 무렵에는 공간 정리 전문가의 시장이 크지 않았어요. 청소 도우미라는 인식도 강했죠. 인테리어 디자인의 한 분야로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 했어요. 그 와중에 남편 건강이 안 좋아져 제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죠. 그때 이 일을 포기하려 했지만 지나고 나면 잘한 선택이 될 거라 믿으며 버텼어요. 되돌아보면 저를 버티게 해준 건 ‘사람’이었어요. 옆을 돌아보면 내가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 내가 위로해줘야 할 사람들이 보일 거예요. 곁에 있는 이들에게 위로를 청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로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마음이면 족합니다. 공간 정리 전문가 윤주희(공간치유 대표)
-
“지금이 가장 좋은 나이”
64살, 전혀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일상을 살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의 하루하루가 인생의 화양연화라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겐 과거가 없어요. 완성된 옷만 만나는 사람들은 저희를 천재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천 하나를 앞에 두고 밤새 백 번도 더한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에요. 디자이너로 살아오면서 고민을 거듭했던 모든 순간이 소중해요. 나이가 들면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짐에 감사하고, 코로나19 덕분에(?) 피난 가듯 산속에서 살고 있는데 이제는 만족합니다. 정원에 보라색 꽃과 토끼풀을 심어 키우고 있는데 내년 봄엔 앞뜰은 하얀색, 뒤뜰은 보라색이 가득해질 기대감에 신나고 즐겁습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돌아갈 괴산 속리산국립공원 첫 집이 있어 행복하고요. 앞으로 66살의 하루하루는 또 얼마나 다양할까, 77살은 또 얼마나 눈이 부실까 기대됩니다.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
-
“그동안 잘했고, 앞으로도 잘하자”
러시아어 법정 통역인 인증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출산 시기를 맞았어요. 지나고 보면 버거운 두 상황을 함께 겪음으로써 그 시절이 더 찬란하게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시간이 없었다면 오히려 인생을 살아간다는 느낌이 덜하고 무미건조했을 거예요. 무엇보다 그 시기를 거치며 단단해졌어요. 스스로에게 “그동안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하자”는 격려와 응원의 말을 하고 싶어요. 작가 박정은(K-QUEEN 8기)
-
“우리는 위대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
15년 전쯤 방송에 우연히 데뷔했고, 하루하루가 낯설지만 재미있었어요. 누군가에게 내 존재감을 알려야 한다는 것에 부담감도 있었지만 반면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어려웠고, 힘들었고, 때때로 포기하고 싶었던 과거를 돌이켜보니 ‘인생은 모르는 일’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위대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사랑해주세요. 자신감과 자존감이 쑥쑥 올라갈 겁니다. 인플루언서 주아민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
8년 전, 저를 보는 남편의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온 순간을 잊지 못해요. 그래서 지금의 우리 아이가 있는 거니까요. 여보~ 나를 알아봐줘서 고마워요~(웃음) 물론 육아하면서 종종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8년 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눈 녹듯 풀어져요. 아직 소녀 같은가요?(웃음) 방송인 박슬기
-
“나는 나다워야 한다”
제 인생은 출산 전과 후로 나뉘어요. 저밖에 모르고 앞만 보며 달리던 커리어 우먼에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함께 공감하며 사는 사람으로 변했으니까요. 대단하지는 않지만 저는 지금 제 삶에 만족해요.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삶이 저는 좋거든요. 물론 저도 때때로 인생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왜 내 삶이 힘들고 버거운지 근본적인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요. 내 욕심이나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태도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남에게 괜히 돋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힘든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죠. 저도 한때는 그런 것들로 힘들었던 적이 있는데 ‘나는 나다워야 한다’는 마음을 가진 후로 한결 마음이 편해졌어요. 아나운서 김보민
-
“출산과 함께 시작된 진정한 인생”
원래 음악을 전공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하지만 출산과 육아 과정을 거치며 좋아하는 요리로 돈 버는 삶을 살게 됐죠. 한마디로 ‘덕업일치’를 이룬 겁니다.(웃음) 저희 주방 스태프는 모두 요리를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홈쇼핑 MD, 자동차공학도 등 다른 일을 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았죠. 음악을 전공했지만 요리를 사랑하는 저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 거예요. 체력을 잘 관리해 80살이 넘어서까지 현역으로 주방에서 일하는 게 가장 큰 바람입니다. 요리 연구가 홍신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