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웨이가 오랜만에 한국 영화에 출연해 멜로 캐릭터의 계보를 잇는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고 의심과 동시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제75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기도 하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열한 번째 장편영화로 전작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새로운 작품이다. 박 감독은 이 영화로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동안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제57회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박쥐>(제62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아가씨> (제6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로 칸을 찾은 바 있어 이번이 네 번째 칸 방문이다.
탕웨이는 그동안 복잡하고 농밀한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하며 세계적 배우로 입지를 다졌다. 이안 감독의 영화 <색, 계> (2007)와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2010), 2014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폐막작 <황금시대> 등이 대표적인 예다.
<색, 계>에서는 상대를 암살하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고 접근하는 ‘왕치아즈’ 역을 맡아 캐릭터의 복잡하고 농밀한 감정을 탁월하게 연기해 단 한 편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신인답지 않은 섬세한 연기로 상대 배우 양조위와 극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바 있다. 또한 김태용 감독의 <만추>에서는 7년째 수감 중 3일간의 짧은 휴가를 허락받은 ‘애나’ 역으로 열연했다. 예기치 못했던 감정과 맞닥뜨린 ‘애나’를 절제된 감정과 세밀한 연기로 표현해내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만추> 이후 11년 만에 한국 영화에 출연한 탕웨이는 <헤어질 결심>에서 박해일과 호흡을 맞춘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쉽사리 동요하지 않는 사망자의 아내 서래는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 해준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을 알면서도 망설임 없이 그를 대하는 모습으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특히 상대를 당황케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태연함을 잃지 않는 서래는 무엇이 진실이고 진심인지,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단 한순간도 정답을 내릴 수 없게 만드는 변화무쌍한 매력으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박찬욱 감독은 “언제나 탕웨이와 영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탕웨이를 통해 당당한 서래 캐릭터에 설득력이 생길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하며 신뢰감을 드러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박 감독과 정서경 작가는 아이디어 회의 때부터 탕웨이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았지만, 탕웨이를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출연을 제안했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은 “탕웨이와 박해일의 연기가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다. 말없이 주고받는 표정도 중요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아름다운 화면과 음악은 뒷전이고 두 배우의 연기에 포커스가 가는 영화다”라고 자부했다. 이어 두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박해일은 영화 <살인의 추억> 이래로 여럿이 어울리는 자리에서 자주 만났다. 그때 내가 받은 인상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투명한 유리 같은 그런 것만이 아니라 머릿속의 생각이 누구와도 다른,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탕웨이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색, 계>를 언급하며 “정서경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정확하게 표현했듯이 탕웨이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 때 내면에 귀중하고도 은밀한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것 같다. 그게 뭘까 하는 호기심이 들게 하는 얼굴을 가졌다”고 말했다.
<헤어질 결심>은 지난 5월 23일(현지 시간) 칸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당시 8분간의 기립 박수와 함께 국내외 언론의 극찬이 이어졌다. 영국 영화 잡지 <스크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매체 평론가들이 <헤어질 결심>에 준 종합 평점은 3.2로 현재까지 공개된 경쟁 부문 영화 중 최고 점수다. 미국 유력 연예 매체 <더 할리우드 리포터>는 “정점에 오른 세계적 거장, 그리고 두 배우의 뜨거운 케미스트리”라고 호평했고, 영국 일간신문 <가디언>은 최고 별점 5개를 부여하며 “박찬욱 감독이 훌륭한 로맨스와 함께 칸에 돌아왔다. 텐션, 감정적 대치, 최신 모바일 기술의 천재적 활용, 교묘한 줄거리의 비틂 등 너무나도 히치콕스러웠다. 탕웨이의 연기가 인상적”이라고 평했다. <스매시 컷 리뷰>는 “탕웨이는 인생 연기를 펼쳤다”라는 호평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탕웨이는 지난 5월 24일(현지 시간) 칸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영화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같은 날 오후(현지 시간)엔 칸의 마제스틱 호텔에서 한국 매체들과 만나 얘기를 나눴다. 최근엔 네이버 나우(NOW.)에 출연해 무비 토크를 진행했다. 그 내용을 함께 정리했다.
박찬욱 감독은 내 삶을 완전하게 만들어주신 분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는데 마음속이 꽉 찬 느낌이었다.
배우로서 살아온 생애가 있어 느끼는 감정 같다.
“박찬욱 감독은 내 삶을 완전하게 만들어준 사람”
영화 <헤어질 결심>에 출연한 계기는 무엇인가?
출연 제안을 받고 박찬욱 감독과 처음 미팅을 하는 자리였다. 정서경 작가와 함께 스토리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단번에 그 이야기에 매료됐다. 무엇보다도 박찬욱 감독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감독님이 영화 속에서 ‘안개’라는 노래가 어떤 장면에 사용될 것이라고 얘기해주셨다. 그때 감독님의 눈빛이 특별히 반짝거렸다. 감독님 스스로도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자연스럽게 감독님의 눈빛을 보다가 캐스팅 제의를 수락했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하게 됐다.
칸에서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를 가진 소감이 궁금하다.
영화를 본 횟수는 총 세 번이지만,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감독님이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보기 전까진 그 어떤 말도 하지 말고 나중에 평가하라고 하셨는데 왜인지 알겠더라. 음향, 효과 등 모든 게 좋았다. 덧붙이자면 유럽 사람들의 웃음 포인트가 한국 사람들과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재미있었던 건 관객들은 안 웃었지만 우리(박찬욱 감독, 박해일) 셋만 웃음을 참는 지점이 있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내용과 상관없이 우리만의 추억이 떠올라 웃기도 했다.
상영 후 세간의 반응이 뜨겁다.
사실 평가나 반응을 많이 살펴보지 못했다. 아직 영화가 정식 개봉(6월 29일)을 안 했으니 나중에 천천히 살펴볼 생각이다.
박찬욱 감독과의 호흡을 어땠나?
‘내 삶을 완전하게 만들어주신 분.’ 이 문장 하나로 박 감독님과 함께 일한 소감을 요약할 수 있겠다. 나는 박 감독님을 너무 사랑한다. 모든 면에서 굉장한 일을 하고 있다. 항상 놀라운 발상과 캐릭터들을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의 서래도 마찬가지다. 어제 월드 프리미어가 끝나고 감독님에게 제 인생의 일부분을 완성시켜주셔서 감사하다고 다시 한번 인사를 드렸다.
“박찬욱 감독이 내 삶을 완전하게 만들어줬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갑자기 든 느낌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는데 마음속에 꽉 찬 느낌이랄까. 순간적으로 떠오른 느낌이라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배우로서 살아온 생애가 있어 느끼는 감정 같다. 10년 후쯤이면 이 감정을 설명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현장에서 소통은 어떻게 했나?
즐거운 촬영이었지만 언어 때문에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특히 촬영 첫날에는 나, 박 감독님, 박해일 씨 모두 번역기를 준비해 왔다. 중반부터 점차 나아졌다. 특히 감독님에게 감사한 건, 현장에서 인내심이 필요한 때가 있었을 텐데 이를 용인해주셨다. 단 한 번도 불편한 기색 없이 웃고 차근차근 알려주셨다. 감독님이 캐릭터에 심혈을 기울이는 게 느껴져 감격적이었다. 감독님이 격려를 많이 해줬다. 배우와 스태프를 보호해주는 사람이다.
애초에 언어 때문에 부담은 없었나?
콘티가 너무 좋아 평소 좋아하던 만화책을 보는 느낌이었다. 작은 움직임까지 정확히 들어 있어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감독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걸 내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은 어떤 국가, 어떤 사람과 작업해도 문제 되지 않을 사람이다.
한국어 대사는 어떻게 공부했나(탕웨이는 극 중 한국에서 생활하는 중국인 여성으로 등장한다. 이를 위해 촬영이 끝날 때까지 매일 한국어 교사들과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사실 한국어 실력이 백지에 가깝다.(웃음) 감독님이 모든 대사를 녹음해 보내주셨고, 그걸 휴대전화에 저장해 듣고 다니며 연습했다. 녹음 파일 속에 감독님의 억양과 호흡, 리듬이 그대로 있어 감독님 말투를 따라 했다. 덧붙이자면 대본 속 글자 하나라도 내가 모르고 넘어가는 것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새로운 언어로 극 중 캐릭터를 연기하기에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힘들어도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원래 그대로의 감정을 연기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베이징에 살고 있는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시다.
내가 외동딸이라 시간이 될 때마다 베이징에 가서 부모님과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한다.
그 시간이 내게 소중하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많은 도움을 준다.
박찬욱 감독은 “탕웨이가 한국어를 정말 열심히 했다. 처절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만큼 노력했다”며 칭찬했다. 이어 “탕웨이가 하는 한국어는 우리가 하는 한국어의 억양이나 발음과 조금 다르다. 오히려 그것이 훨씬 매력적이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한국어가 이런 면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촬영을 했다. 느낌이 어땠나?
한국에서 로케이션으로 찍은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감독님을 따라 한국을 여행하는 느낌으로 곳곳을 다녔다. 감독님이 한국 외에 다른 여행지도 데려가주셨다. 칸이었다.(웃음) 칸에는 여러 번 갔지만 진짜로는 처음 간 느낌이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 대한 감정이 깊어 그런 것 같다.
박 감독과의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나?
작품을 크랭크인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주 52시간 근무가 적용돼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감독님이 아무 동요 없이 평상시처럼 다 받아들이고 감당하셨다. 그런 감독님의 모습이 연기하는 배우에게 큰 안도감과 믿음을 준다.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감독님과 함께 각본을 맡았던 정서경 작가가 한 말이 있다. “칸 오기 전에는 이번 영화로 뭐든 상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수상 여부가 의미 없어졌다”는 말이다. 작가님의 이 말로 내 답변을 대신하겠다. 덧붙이자면 이번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 후보에 오른 신인 감독들이 관람할 수 있는 경쟁작으로 <헤어질 결심>이 선정됐다고 한다. 그것만으로 작품이 충분히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 배우 박해일의 첫인상은 어땠나?
처음 박해일의 사진을 봤을 때 정말 해준 같았다. 감독님이 선택을 정말 잘하셨다고 느꼈다. 한 장의 사진에서 귀족 같은 기질, 강한 눈빛, 감성적인 면, 깨끗함을 봤다. 이러면 해준이다 생각했다.
호흡은 어땠나?
처음엔 둘이 대화가 잘 안 통해 번역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사람은 분명 나에게 뭔가를 전달해주는 배우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함께 일하는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우호적이다. 일하는 과정에서 맞춰가는 게 있었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언어를 통하지 않고도 잘 통하는구나 생각했다. 언어를 넘어 마음으로 통하는 무언가를 느꼈다.
촬영 초반 박해일은 탕웨이에게 특별히 산책을 제안했다고 했다. 탕웨이와 해운대달맞이길 등을 함께 걸으며 교감했다는 것. 박해일은 “당시 탕웨이와 많은 대화보다는 그저 걸었다. 한 방향으로 걷는 기운이 배우로서 한 방향으로 걸어야 하는 기분이랑 비슷해 탕웨이와 문제없이 잘 갈 수 있겠다고 예감했다”고 회상하기도.
개인적인 근황이 궁금하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서 지내고 있다. 나는 외동딸이다. 베이징에 살고 있는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시다. 시간이 될 때마다 베이징에 가서 부모님과의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한다. 중국인으로서 부모님과 시간은 너무 중요하다. 내가 베이징에서 친정 부모님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많은 도움을 준다(탕웨이는 2014년 김태용 감독과 결혼해 슬하에 딸을 두고 있다).
한편 박찬욱 감독과 탕웨이·박해일의 첫 만남 그리고 수사극과 멜로극이 결합한 독창적 드라마에 감각적인 미장센이 더해진 영화 <헤어질 결심>은 6월 29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