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흐드러지게 핀 봄꽃이 지고 나뭇잎이 초록빛으로 짙어지면, 나는 대청소를 시작하며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 옷장 정리, 이불 교체 따위는 당연히 누구나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집 안 곳곳의 먼지 제거, 하수구 청소 등 구석구석을 살피며 부지런을 떤다. 고백하자면 청소에 영 소질이 없는 나에게는 매우 큰 행사인 셈인데, 평소와 다르게 유독 여름을 앞두고 청소에 열을 올리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나는 사계절 중 여름이 가장 무섭다. 추위보다 더위를 더 많이 타기 때문이고, 벌레를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니, 무서워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더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오기 전부터 미리 에어컨 필터와 선풍기를 꺼내 묵은 먼지를 닦아내야 한다. 미리 준비해두면 더웠다가 추워지기도 하는 환절기에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갑작스레 찾아오는 더위와 습한 공기도 두렵지 않다. 이런 버릇은 몇 년 전, 역대 최악의 더위가 찾아왔던 해에 에어컨 청소를 미뤘다가 이열치열을 경험한 이후로 생긴 것이다. 작디작은 집에 건조기도 없는 자취생 신세라 최소한의 가전으로 최대의 활용도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눅눅한 장마철에 빨래를 보송하게 말리기 위해서도 에어컨과 선풍기 청소는 필수다.
또 온갖 해충이 집 안까지 침범하는 불상사를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해 특히 여름철에는 청소에 더욱 신경을 쓴다. 엉망진창으로 쌓여 있던 짐을 걷어내고 정리한 후 집 안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고, 베란다와 욕실 하수구에 수시로 락스를 붓는다. 이렇게 해도 운이 나쁘면 방 안에서 한 번씩 벌레가 발견되기도 한다. 지은 지 오래된 낡은 집에서 살 때는 한 번도 벌레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신축 집에서 살면서는 여름마다 벌레와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이렇듯 사실 벌레가 출몰하는 조건은 딱히 없다. 하지만 벌레는 더러운 곳에서만 출몰한다는 나름의 고정관념 때문에, 그리고 벌레가 세상 그 무엇보다 싫기 때문에 여름에 부지런히 집을 쓸고 닦으며 나만의 의식을 치른다.
정수리가 타들어가듯 미칠 것같이 덥다가 또 몇 주 동안은 비가 내리퍼붓기도 하는 여름.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에는 땀 때문에 끈적거리고, 장마철에는 습한 공기 탓에 찜찜한 여름. 온갖 해충이 창궐하는 여름. 불쾌한 조건을 다 갖춘 계절이지만 그래도 여름을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이유도 있다. 바로 여름날 밤에만 느낄 수 있는 선선하고 싱그러운 공기다. 밤공기를 느끼며 산책해도 좋고, 수박이나 참외를 먹어도 좋고, 노상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 들이켜면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개운하다. 여름밤 낭만을 기다리며 이번 주말도 열심히 방과 욕실 청소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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