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안티워크
미국에서 대퇴사 시대라는 단어가 화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어느 정도 진정세에 접어들면서 노동자들이 가슴에 품고 있던 사표를 던지고 있는 것.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노동통계국은 지난 8월에 전체 노동력의 2.9%인 430만 명의 미국인이 직장을 그만뒀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왜 직장을 떠났을까?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노동의 가치, 출퇴근과 직장 문화의 무용성, 개인적 평안의 중요성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사람과 만나는 활동 자체가 건강을 위협하는 행동이 되자 대면업종 노동자가 일을 그만두기 시작했고, 다른 업종 노동자들도 일과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는 것.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 가치로 대두됐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열악한 근로 환경을 참고 견디는 것보다 소비 여력이 줄어드는 게 더 낫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번아웃도 이유로 제기된다. 초과근무에 시달리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는 풍조에 퇴사를 결심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퇴사 물결의 원인으로 MZ세대의 안티 워크(anti-work)를 꼽고 있다. MZ세대는 위 세대와 다르게 직장과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고 일을 하더라도 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노동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아무리 노력해도 부자가 되거나 성공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커지면서 부를 향해 달려가는 대신 생계를 잇기 위해 업무 강도가 낮은 아르바이트에 몰두하기를 선택했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조기 은퇴 역시 대퇴사 열풍에 힘을 실었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연령별 노동 참가율에 따르면 55세 이상 장년층의 노동 참가율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20년 1월 40.3%였는데, 2021년 12월 38.5%로 감소했다. 총 1.8%p가 감소했는데 이는 동기간 25~54세 청년층 노동 참가율 하락세(83%에서 81.9%로, 1.1%p 감소)보다 더 큰 차이를 보였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퇴사 물결은 전 세계로 퍼져나갈 조짐이다. 영국에서는 2020년 3분기 40만 명에 달하는 근로자가 퇴사했고, 캐나다에서는 지난해 6월 업무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일을 그만둔 사람이 1만 6,700명에 달했다. 캐나다 기업 3곳 중 2곳이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고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탕핑(눕기, lay flat) 운동’이 유행이다. 직장에서의 경력을 포기하는 대신 단순하고 편하게 살자는 취지다. 중국도 주택을 비롯한 자산 가격이 폭등해 일을 해도 경제적인 풍요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파이어족(경제적 자립을 통해 조기 은퇴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대퇴사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노동환경 변화의 시발점이 될까?
전문가들은 대퇴사의 물결이 노동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 전망한다. 직장인들의 퇴사 열풍으로 몸살을 앓는 미국 기업들은 1년에 수차례 임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직원들을 붙잡고 있다. 분기마다 연봉 협상을 시행하고 이전보다 상여금을 자주 지급하거나 휴가 일수를 늘리면서 구인난 극복에 안간힘을 쓰는 것. 주로 여름 시즌에 맞춰 연 1회 직원들의 급여를 인상했던 딜로이트는 지난해 말 갑작스럽게 직원들의 급여를 인상했다. 딜로이트의 조 우쿠조글루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깜짝 인상은 임금이 빠르게 오르고 있는 노동시장에서 딜로이트의 임금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들의 비정기적인 임금 인상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기업들이 분기별로 목표를 설정해 직원들에게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직원들에게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명확히 설명해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율성을 기반으로 목표를 달성하게 해야 한다는 것. 근무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지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재택근무나 주 4일 근무제, 탄력적 근무 방식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영국 최초의 인터넷전문은행인 아톰은행은 임금 삭감 없이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들의 주중 근무시간은 주 37.5시간에서 34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스페인은 정부 차원에서 주 4일 근무제를 실험적으로 도입한다. 예산 5,000만 유로(약 665억원)를 배정하고 희망 업체 200곳을 선정해 3년 동안 주 4일제를 시험하고 손해액을 정부가 부분적으로 보상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주 4일제의 한계를 지적한다. 현실적으로 모든 직종에 적용 가능하지 않다는 것. 주 4일제 시행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부담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