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벌 사는 것이 마트에서 과자 사는 것보다 쉬운 세상이다. 클릭 한 번에 새벽 시간에 배송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가격이 과자보다 싼 옷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유행을 빠르게 반영해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하는 패스트패션 덕분에 누구나 쉽게 멋을 낼 수 있게 됐지만 지구는 병들고 있다. 옷을 만들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기후변화를 일으킨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10%가 패션 산업에서 발생한다. 수질오염은 또 어떤가? 우리가 친환경이라 생각했던 면을 생산하기 위해 목화를 재배할 때, 전 세계 농약 사용량의 무려 20% 정도에 해당하는 살충제가 투입된다. 천을 염색하는 약품에는 약 8,000가지 화학물질이 들어가 있다. 전 세계 폐수의 약 20%가 패션 산업에서 발생한다. 현재 미국 뉴욕에서는 ‘패션업계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위한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올 상반기에 법안이 통과되면 업체는 생산 중 온실가스 배출량, 화학물질 관리 현황 등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생산 과정과 관련 정보를 온라인에 모두 공개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시대적 요구는 더 거세질 전망이다. 기후 위기가 생각보다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순배출량 제로를 향한 전 세계적인 목표는 현장의 관행부터 산업 전반의 철학까지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본다.
리사이클 폴리에스터와 나일론이 대세
아름다운 산과 바다에 한 번 쓰고 버린 플라스틱이 썩지도 않고 몇백 년 동안 유령처럼 돌아다닌다. 생수 담는 페트병을 비롯해 요구르트병 같은 음료병, 세제, 배달 음식 용기 등 편리함을 위해 한 번 쓰고 버린 것들이다. 이를 수거해 세척하는 과정을 거쳐 섬유로 만들어낸 리사이클 폴리에스터가 친환경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알렉산더 맥퀸의 디렉터인 사라 버튼은 ‘폴리 파유(Poly Faille)’로 알려진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소재로 드레스를 만들고 있다. 리사이클 폴리에스터는 나이키, 아디다스, 노스페이스, 파타고니아 등 스포츠 브랜드에서도 상당히 많이 사용하며 종종 환경 캠페인과 연계하기도 한다.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낚시 그물은 나일론 소재인데 이를 수거, 재활용해 만든 에코닐(Econyl) 소재도 인기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프라다. 프라다는 현재 에코닐 소재를 컬렉션 전반에 사용하고 있으며, 조만간 일반 공급 체인을 통한 나일론 수급은 아예 중단할 계획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신소재?
재배와 제조 과정에서 화학물질 사용을 제한한 유기농 면 소재가 하나의 대안은 될 수 있다. 하지만 목화는 재배할 때 너무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천연 모피와 가죽 소재는 이산화탄소 발생과 동물 복지 문제 때문에 업계에서 퇴출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들은 어떤 소재를 사용할 수 있을까? 스텔라 매카트니는 ‘버섯이 패션의 미래’라는 주제로 2022 S/S 컬렉션을 선보였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친환경 섬유 개발 기업 볼트 스레드(Bolt Threads)가 개발한 ‘마일로(Mylo)’ 소재로 핸드백을 만들어 선보였는데, 마일로는 균사체(Mycelium)를 배양해 만든 일종의 인조가죽으로 수년 동안 키워야 하는 가축과 달리 단 며칠이면 완성할 수 있고, 자연으로 돌아갔을 때 생분해되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 에르메스 역시 바이테크 기업 마이코웍스(MycoWorks)와 함께 개발한 ‘실바니아(Sylvania)’라는 소재로 한정판 ‘빅토리아(Victoria)’ 핸드백을 선보였다. 발렌시아가는 바로 얼마 전에 열린 2022 F/W 파리 패션 위크에서 독점으로 개발한 균사체 기반 최첨단 소재 ‘EPHEA™’를 사용한 오버사이즈 코트를 선보이기도. 이 밖에도 옥수수, 선인장, 해조류, 과일 껍질, 와인 부산물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든 친환경 소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판가이아라는 패션 브랜드는 아예 기업 내에 신소재 연구 부서를 두고 패션업계의 소비와 생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석유화학 기반의 합성 물질을 근절시키는 것’이 브랜드의 목표라고. 이에 퍼렐 윌리엄스, 저스틴 비버, 해리 스타일스, 카다시안 자매 등 많은 셀렙이 판가이아의 후드 티셔츠를 즐겨 입고 있다.
별걸 다 업사이클한다!
트럭을 덮는 방수포를 업사이클링 작업을 거쳐 만든 프라이탁 가방은 가격이 꽤 비싸도 인기가 많다. 이후 다양한 업사이클링 시도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코르크 마개를 엮어 만든 ‘어스’ 톱 핸들 백을 선보이고, 루이 비통은 자투리 실크 원단을 활용해 주얼리로 재탄생시켰다. 끌로에는 2021 F/W 시즌에서 2022 S/S 시즌으로 넘어오며 환경에 영향을 덜 미치는 소재를 사용하는 정도를 40%에서 58%로 늘렸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케냐 해변에서 발견된 쓰레기 슬리퍼를 업사이클링하는 사회적 기업 오션 솔(Ocean Sole)과 협업해 새로운 풋웨어 라인 루(Lou)를 론칭했다. 2021년 4월에는 프랑스의 럭셔리 그룹 LVMH가 그룹 산하에 있는 패션 하우스로부터 수거한 재고 소재를 판매할 첫 번째 온라인 리세일 플랫폼 노나 소스(Nona Source)를 론칭했다. 리사이클링이나 업사이클링이나 현재 패션 신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임에는 분명하다.
결국 중고품과 수선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적게 사고 잘 골라서 오래 쓰라”고 말한 바 있다. 파타고니아의 전 CEO 로즈 마카리오는 “망가진 옷을 고쳐 입는 것은 자연을 지키기 위한 급진적인 환경 운동이다. 우리가 지구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지고 있는 물건을 더 오래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파페치의 보고에 따르면 중고 제품을 구매할 경우 새 제품 구매에 비해 쓰레기 1kg, 물 3,040L, 이산화탄소 22kg을 절약하거나 줄일 수 있다. 이미 2013년에 파타고니아는 ‘원웨어(Worn Wear) 캠페인’을 통해 고객들에게 옷을 수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중고 제품을 고객들에게서 구입해 온라인에서 보상 판매하고 있다. 리바이스는 신사동 가로수길 매장 지하에 테일러 숍을 오픈하고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며, 코스는 청담 매장에 인하우스 수선 서비스를 론칭해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브랜드의 발 빠른 움직임의 배경에는 누구보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중고품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Z세대가 있다. 이들은 기존 세대보다 중고품에 대해 훨씬 마음이 열려 있다. 상품 가치가 없는 재고나 중고품을 수거해 이를 분해하고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컬렉션을 선보이는 마린 세르(Marine Serre), 보드(Bode), 캐피탈(Kapital) 같은 브랜드가 Z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환경운동가로 활약하며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된 그레타 툰베리는 “새 옷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3년 전에 산 중고 의류가 그녀의 마지막 쇼핑이었다고. 지구에서 더 오래 살아야 하는 다음 세대가 환경문제를 이토록 걱정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두가 환경운동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신중함과 약간의 불편을 감수할 준비를 한다면 생각보다 꽤 많은 미래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