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너도나도 꽃놀이를 가자며 툭툭 ‘갬성’을 건든다. 40대에 접어들면서 같이 늙어가는 처지의 주변인들이 꽃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꽃을 좋아한다. 하지만 꽃놀이를 좋아하진 않는다. 성가시다. 꽃은 찬찬히, 조용히 봐야 스며들듯 더 예쁘다.
굳이 꼽자면 나의 꽃놀이 스폿은 서울 여의도다. 언젠가부터 이맘때쯤 계 모임을 하게 되면 선배들이, 후배들이, 친구들이 “꽃놀이나 가자!”라며 플러스알파와 같은 일정을 갖다 붙였다. 나는 또 곧잘 잘 따라가곤 했다. 그렇게 나의 봄 꽃놀이는 수동적으로 몇 해째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의도에 다다를 즈음엔 붐비는 사람을 보곤 한마디 거든다. 올 곳이 아니라는 둥 어린애들 데이트 코스라는 둥 이게 전부냐는 둥. 그러곤 “차에서 내리지 말고 여기서 보자”며 운을 뗀다. 내 지인들은 또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어서 오히려 한마디씩 거들며 차에서 내리지 않기를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그래,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 그러면서도 “결국 (뉴스에서 연일 보던 벚꽃 행렬에) 우리도 하고 마네” 하며 깔깔 웃는다.
질질 끌려가듯 보았던 봄날의 벚꽃은 그럼에도 늘 아름다웠다. 사람이 너무 많다며 툴툴대지만 “우아, 그림이다!”, “여의도, 여의도 하는 이유가 있구먼”, “진짜 팝콘 같다!”라며 상상 그 이상의 자태에 해마다 감탄했던 것 같다. 극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곧 앙상하게 남게 될 꽃잎을 보며 괜히 인생사에 비유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것도 우리의 단골 메뉴였다. 그때쯤 누구 하나가 “사진은 찍고 가야지!” 하면 못 이기는 척 차에서 내려 그 누구보다 빠르고 간결하게, 그러나 열정적으로 추억을 남기곤 재빨리 다시 차에 올라타곤 했다. 그러곤 사진을 나눠 보며 까르르 웃으며 벚꽃 축제를 만끽했다.
그렇게 나이를 먹나 보다. 핫 플레이스에서 브런치나 우아한 프렌치 요리를 즐기던 나의 계 모임은 어느덧 칼국수나 중식, 때로는 호텔의 정식 메뉴 혹은 누군가의 집에서 정성 어린 음식을 먹는 루틴으로 바뀌고 있다. 나의 지인들도 백화점을 돌기보다는 꽃을 보고 강을 보는 것에 더욱 행복해한다. 연예인 얘기보다는 주식이나 부동산 얘기를 하며 노후 대비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올해도 봄이 왔다. 질질 끌려가듯 꽃놀이를 또 갈 것이다. 또 그 아름다움에 넋이 나갈 것이다. 그렇게 봄날은 오고,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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