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 계획은 없다”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특별 군사작전이 공습의 명분이었다. 러시아는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습격했다. 개전 20여 일 만에 우크라이나군 1,3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경제 피해 규모는 1,000억 달러(약 123조원)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대부분의 기업이 문을 닫았으며 일부 지역은 폐허가 된 상태다. 당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군사시설에 대해서만 공격한다고 공언했지만 곳곳에서 민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러시아가 유치원과 아파트 등 민간 시설에 폭격을 이어가면서다. 또 사전에 합의된 피란 행렬을 공습해 민간인들이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막대한 피해가 이어지는 상황에도 러시아군은 서부 지역으로 공격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니아 서부 이바노-프란키우스크 국제공항을 급습했다.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국경에 인접한 지역이다. 확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은 지난해 10월에 격화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을 배치하면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하 나토) 확장이 원인이었다. 나토는 1949년 구소련 포함, 동구권의 군사적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안보 기구다. 출범 당시 미국, 캐나다, 유럽 10개국 등 12개국이 가입했으며 현재 30개국이 나토 회원이다. 당초 나토는 1990년 구소련 붕괴 이후 동구권(러시아 접경 지역)에 병력을 배치하지 않기로 러시아와 협의했다. 하지만 폴란드, 체코 등 동쪽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러시아와의 갈등이 깊어졌다. 여기에 우크라이나까지 나토 가입을 추진하면서 러시아의 위기감이 커졌다. 러시아는 나토의 확장에 우크라이나를 레드라인(포용 정책을 봉쇄 정책으로 바꾸는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가입이 성사될 경우 나토군이 우크라이나에 주둔하게 되며, 러시아와 직접적으로 대치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석유·가스 대유럽 수출 경유국으로 러시아 무역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러시아는 무력으로 맞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나토 확장과 우크라이나 영토 활용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전면전을 강행할 것으로 보이자 협상을 이루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지난해 12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관련 담론을 언급했다. 당시 러시아는 나토의 영역 확장 중단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나토의 개방정책을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올해 1월 12일에는 러시아와 나토의 협상 자리가 마련됐다. 나토는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은 유럽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일이라고 경고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만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첨예한 의견 대립 끝에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No war” 국제사회의 러시아 보이콧
러시아가 침공했을 당시 우크라이나는 무방비 상태였다. 나토 가입에 대한 언급이 오갔을 뿐 회원국이 아니기에 군사적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군사력 강대국인 러시아에 대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피해는 삽시간에 번졌다. 수도 키이우를 비롯해 주변 지역이 초토화됐고 주민들은 피란길에 올랐다. 언론 보도에는 참전을 위해 도시에 남는 남성과 피란길에 오르는 가족들이 생이별하는 모습이 전해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세계 각국에서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포츠 스타들이 국제 무대에서 러시아 보이콧을 선언하는가 하면, 기부금으로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다.
세계적 기업들은 ‘손절’로 러시아의 행보를 규탄하고 있다. 애플은 러시아를 상대로 자사 제품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또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위해 애플 지도에서 우크라이나 실시간 교통 상황 및 사고 소식을 보이지 않도록 했다. 러시아 내 스마트폰 점유율 1위인 삼성도 러시아에 전자 제품 수출을 잠정 중단했고 우크라이나에는 600만 달러(약 73억원)을 기부했다. OTT 플랫폼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도 러시아 손절에 동참했다. 넷플릭스는 러시아 정부가 요구한 국영방송 콘텐츠 탑재를 거절했다. 러시아 법상 이용자 10만 명이 넘는 OTT 서비스는 러시아 국영방송 콘텐츠를 탑재해야 한다. 넷플릭스가 러시아의 요구를 거절한 것은 우크라이나 침공과 연관이 있다. 러시아가 자사 플랫폼을 통해 우크라이나 공습을 정당화하거나 옹호하는 방송을 전파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디즈니플러스는 러시아에 한해 자사의 모든 서비스 제공을 멈췄다. 맥도날드는 러시아 전역에 운영하고 있는 850여 개의 매장 운영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각국 정상도 러시아에 휴전을 촉구하고 나섰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휴전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독일 정부는 공식 입장에서 “75분간의 통화에서 즉각적 휴전과 외교적 해법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과 90분간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정부는 “어려운 대화를 나눴지만 푸틴은 전쟁을 끝내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유럽 국가는 러시아에 제재를 가할 것을 예고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국제사회에서 배제하는 것이 제재의 요지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와 자금 등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 용도로 2억 달러(약 2,4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은 군수물자와 군사훈련 등에 사용될 전망이다. 살상 무기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독일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기로 했다. 지원 품목은 독일산 대전차와 미국산 미사일 등이다.
“필요한 건 피신이 아니라 실탄”
이어지는 전쟁 속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현재 폭격이 이어지는 수도 키이우를 지키고 있다. 당초 러시아의 한 언론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키이우를 빠져나갔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젤렌스키는 SNS에 키이우에서 촬영한 셀프 카메라 영상을 올리며 “나는 여기에 있다. 무기를 내려놓지 않고 조국을 지키겠다. 이곳이 우리의 땅, 우리의 조국”이라고 말했다.
올해 44살인 젤렌스키는 희극인 출신이다. 선거 유세 현장에서 딱딱한 연설이 아닌 춤과 노래를 선보여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젤렌스키의 출신과 정치 경력을 비판하고 조롱했다. 당선 이후에도 젤렌스키는 자신을 불신하는 세력과 맞서야 했다. 강대국인 러시아에 대적할 만한 정치적 수가 없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여론이 뒤집혔다. 국가의 수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젤렌스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상황. 그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간 연설을 이어가면서 국제사회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24일 유럽연합(EU)에서 5분간 연설을 통해 “오늘이 내가 살아 있는 모습을 보는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며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에 유럽연합과 미국이 반응하고 있다. 즉각 러시아에 대한 각종 제재에 돌입했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한 푸틴 대통령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영부인 올레나 젤렌스카도 반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 공식 홈페이지에 업로드돼 화제가 됐던 ‘나는 증언한다’는 제목의 편지도 젤렌스카 여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편지에는 “러시아 측 매체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작전’이라고 하지만 우크라이나 시민에 대한 학살”이라고 지적하는 내용이 담겼다. 더불어 SNS를 통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게시물을 업로드하며 국민의 안전과 전쟁의 잔혹함을 폭로한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의 공습 직후 SNS에 “사랑하는 우크라이나인으로 살고 있어 자랑스럽다”며 “두려워하거나 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