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1980~2000년대생)의 유년기를 채웠던 만화 가운데 <명탐정 코난>(1996)은 손꼽히는 명작이다. 지난 1994년 일본 만화책을 원작으로 한 <명탐정 코난>은 검은 조직에 의해 어린아이가 된 쿠도 신이치(남도일)가 에도가와 코난(코난)이라는 가명으로 탐정 사무소에 의뢰된 사건을 해결해가는 내용이다. 매회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높은 몰입도를 선사한다. <명탐정 코난>의 인기는 상당했다. 에디터의 어린 시절만 해도 친구들과 놀이터에 모여 코난을 따라 했고, 만화를 보고 탐정이 되고 싶다던 친구도 여럿이었다. 특히 “내 이름은 코난, 탐정이죠”라는 상징적인 멘트를 누가 가장 똑같이 따라 하느냐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큰 관심거리였다. 어린 시절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명탐정 코난>의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월 출간된 100번째 단행본(서울미디어코믹스)이 베스트셀러 5위에 오르면서 화제성을 입증했다. 여전한 인기 속 코난의 동반자인 성우 김선혜(50세)를 만났다. 코난과 함께한 지 올해로 18년째,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김혜선에게 코난의 의미를 물었다.
<명탐정 코난> 단행본 100권이 출간됐어요.
꿈만 같아요. 사실 작가가 100권을 끝으로 연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해 작별의 시간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앞으로도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이어질 거 같아요.(웃음) 애니메이션은 1,000화를 돌파했는데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거겠죠? 최근에 100권 출간 기념으로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어요. 100권을 기점으로 또 다른 시작이 될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코난의 이야기와 함께 성우 김선혜의 새로운 활동도 이어질 거라는 희망이 보였어요.
코난과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독자들이 어느덧 20~30대로 성장했습니다.
맞아요. 코난은 항상 어린이지만, 우리 친구들은 아니죠. 언제까지나 어린이일 것 같았던 친구들이 대학생, 직장인이 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만감이 교차해요. 성인이 된 팬들과 소통하다 보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코난을 시청하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해요. 당시의 공기, 집안 분위기, 텔레비전 옆 풍경이 선명하대요. 누군가의 추억 한편에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에요. 특히 어린 시절 <명탐정 코난>을 보면서 경찰이 되고 싶다거나 정의를 좇는 어른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할 때면 놀라워요. 코난이 친구들에게 좋은 생각을 심어준 거니까요.
마니아 팬을 보유하고 있는데, 팬들의 응원 중 기억에 남는 말을 꼽으면요?
극장판 시사회에 참석했을 때 시각장애인 팬을 만났어요. 힘들고 지쳤던 일상에서 코난의 목소리를 듣고 큰 위로를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하는 일의 가치를 깨달았어요. 제가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요. 그 덕분에 더 열심히,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어요.
유튜브를 통해 <코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는데, 어떤 콘텐츠인지 궁금합니다.
코난 성우가 부르는 <명탐정 코난> OST 연재 콘텐츠예요. 애니메이션 속 코난은 음치인데 그 세계관을 지키는 선에서 성우인 김선혜가 노래를 부르는 거죠. 그렇다고 제가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에요.(웃음) 프로젝트를 통해 저를 알리고 싶었어요.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많은 분이 좋아해주셔서 1년이 넘게 이어오고 있어요.
김선혜에게 코난은 어떤 존재인가요?
삶의 동반자. 코난을 만난 건 복권 1등에 당첨된 것이나 다름없어요. 성우로 활동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그중 18년을 코난과 함께했어요. 코난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싶어요. 저를 많이 웃게 해줬고, 지금도 저를 행복하게 하는 동반자예요.
한 팬이 힘들었던 시기에 코난의 목소리를 듣고 큰 위로를 얻었다고 했어요.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투니버스 4기로 데뷔한 김선혜는 어느덧 22년 차 베테랑 성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만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친숙한 인물이다. <명탐정 코난> <나루토> <다다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 <드래곤볼 극장판> <따끈따끈 베이커리> 등 큰 사랑을 받은 애니메이션에 참여하면서 성우로서 입지를 단단하게 다졌다. 성우뿐만 아니라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MBC <행복을 주는 사람>(2016), SBS <펜트하우스3>(2021) 등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성우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성우가 꿈이었어요. 미국 ABC 드라마 <케빈은 12살>을 보면서 외국 배우의 목소리를 더빙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더라고요. 즐겨 봤던 애니메이션 <캔디>도 마찬가지고요. 목소리만을 드러내면서 연기하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죠. 또 한 사람이 캐릭터에 따라 전혀 다른 목소리를 구사하는 게 신기했어요.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던 건 웅변학원을 다니면서였어요. 웅변대회를 나갔는데 목소리가 좋다는 칭찬을 들었거든요. 자연스럽게 관련 직업에 종사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고 운명적으로 성우에 눈뜨게 됐죠.
성우만의 매력은 뭔가요?
성별과 나이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요. 여성이라고 해서 여성 캐릭터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세계관을 오갈 수 있죠. 캐릭터를 전환하는 속도도 굉장히 빨라요. 예를 들어 남자 어린이의 목소리를 내다가 순식간에 성인 여성, 노인의 목소리로 변조할 수 있죠.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동심의 세계에 머무를 수 있다는 점이에요. 물리적으로는 해마다 나이가 들지만 마음 한편에는 어릴 적 순수했던 모습이 남아 있죠. 애니메이션 더빙을 하다 보니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하게 되는 거 같아요.
22년간 성우로 활동하면서 슬럼프는 없었나요?
굉장히 많죠. 초기에는 남자 아역의 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래서 코난 역을 맡게 됐을 때 감사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압박감이 컸어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무엇인지 체감하게 됐죠. 녹음실에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였어요.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해요.
피나는 노력이요.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발성 연습과 성대 치료를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갈고닦았어요. 또 주변의 시선에 위축되는 마음을 버리고자 했어요. <명탐정 코난>의 2기로 합류하면서 코난답지 않다는 지적을 받게 되니 스스로 작아지더라고요. 시청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인데 부담으로 받아들이고 위축됐죠. 그런데 한 선배가 “선혜야, 이제 네가 코난이야.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큰 힘이 됐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코난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해요. 어떤 목소리를 내도 코난 같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웃음)
배우로도 활약 중인데, 애니메이션 연기를 할 때와 다른 부분이 있을 거 같아요.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어요. 성우는 목소리로만 감정을 전달해야 하니까 발음, 소리가 중요해요. 이 때문에 드라마에 접목했을 때 튀는 소리로 들리기 쉽죠. 그래서 촬영에 앞서 발음이나 목소리를 유연하게 만드는 연습을 거듭해야 돼요. 또 드라마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표정이나 눈빛, 리액션까지 신경 써야 하죠. 앞으로 제가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우선 지금보다 더 코난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싶어요. 그리고 다른 역을 맡았을 때 “저 사람이 코난 성우라고?”라는 인상을 줄 수 있도록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드라마에서도 좋은 역할로 만나길 바라고요.
끝으로 <명탐정 코난>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한마디 전해주세요.
팬들이 코난을 사랑하는 만큼 저도 애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릴 적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한 저로서는 코난을 만난 게 운명처럼 느껴져요. 팬들과 만났을 때 코난을 보면서 경찰이나 프로파일러의 꿈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곤 해요. 제가 추리소설의 광팬으로 살다가 코난을 만난 것처럼 여러분도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면, 운명처럼 연결되지 않을까요? 희망을 품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