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영웅 황대헌
황대헌은 ‘영웅’으로 기억되고 싶다. 4년 전 첫 올림픽 출전이었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남자 500m)을 목에 걸었던 그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남자 1,500m)과 은메달(남자 5,000m 계주)을 얻었다.
그러나 그에게 이번 올림픽은 순탄치 않았다. 첫 종목이었던 혼성 계주에서는 주자 간 터치가 이뤄지지 않은 중국이 실격 대신 금메달을 거머쥐었고, 남자 1,000m에서는 준결승 1조 1위, 2조 2위로 레이스를 마친 황대헌, 이준서가 ‘늦은 추월로 인한 접촉 유발’이라는 석연찮은 판정으로 페널티를 받아 결승 진출이 무산됐다. 황대헌은 인스타그램에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명언을 올리며 남은 경기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장애물을 만나도 이겨내겠다”던 그는 남자 1,500m 경기에서 실력을 한껏 발휘했다. 8바퀴를 남겨둔 상황에서 1위로 올라가 끝까지 선두를 지켜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첫 종목인 1,000m에서 페널티를 받아 실격했을 땐 힘들었어요. 그래서인지 1,500m에서 첫 금메달을 땄을 때 더 의미 있게 느껴졌어요. 좋은 동료들과 팀이 있었기에 좋은 결과로 다 같이 단단해질 수 있었어요. 우리가 흐름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됐고요.”
황대헌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을 겪는 국민들에게 올림픽을 통해 에너지를 복돋워주고 싶었다. 아무리 단단한 벽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며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실패해도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용기 있게 도전하면 꿈과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열정을 쏟았어요. 저를 보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10대, 20대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서 꿈과 목표를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다음에 또 실패해도 두려워 말고 결과가 어떻든 용기 있게 도전하는 것이죠.”
그는 올림픽을 스페셜한 무대로 설명했다. 4년간 준비해 나오기 때문에 무엇보다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것.
“운동선수들에게 올림픽은 꿈의 무대예요. 평창올림픽에 출전했을 땐 은메달이란 성적이 나왔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게 많았어요. 그런데 되돌아보면 그것들이 저를 더 성장시키는 게기가 됐어요. 은메달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고 저를 성장할 수 있게 해줬죠. 당시에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을 갖고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목표로 준비해왔어요. 그래서인지 올림픽은 제게 특별하고 소중한 대회예요. 지금도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행복해요.”
이어 그는 국민들의 관심과 응원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덧붙였다. 동생으로부터 자신의 경기에 밴드 러브홀릭의 ‘버터플라이’가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영상을 전달받고 울컥했었다는 황대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쇼트트랙 대표팀을 두고 ‘최약체’라는 냉혹한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의 경쟁력은 엄청나요. 대표 선발전에 가면 왼쪽에는 월드컵 금메달리스트가 있고, 오른쪽에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가 있어요. 이런 선수들과 경쟁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어떤 선수가 나와도 경쟁력 있죠. 또 대표팀의 맏형인 곽윤기 형이 가끔은 친구처럼, 가끔은 선배처럼 잘 챙겨줬어요. 윤기 형이 주장으로서 밸런스 조절을 잘해줘 팀 분위기가 좋았죠.”
대회 일정을 모두 마친 황대헌은 한국에 돌아가면 BBQ 치킨을 먹고 싶다고 밝혔다. 앞서 올림픽 선수단장을 맡고 있는 윤홍근 BBQ 회장과 만나 “베이징에 오기 전에 BBQ를 먹고 왔다. 황금올리브 닭다리를 좋아한다. 회장님에게 농담으로 ‘회장실 의자 하나는 제가 해드린 거예요’라고 말한 적 있다”고 밝혔고, 이에 윤 회장이 그에게 치킨 쿠폰을 선물하기로 했다고 알려져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한국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치킨연금이 확실히 들어왔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요.(웃음) 4년 동안 어떻게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는지, 어떻게 운동했고 나는 어떤 운동선수였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그리고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해야죠. 저는 별처럼 잠깐 반짝하다 사라지는 ‘스타’가 아니라 영웅이 되고 싶어요. 쇼트트랙이라는 종목을 이야기했을 때 떠오르는 선수요. 쇼트트랙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쇼트트랙
노력형 천재 최민정
최민정에게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순탄치 않았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코치진 등 주요 인력이 중국으로 이탈했고, 올림픽을 몇 달 앞두고 심석희 선수의 고의 충돌 의혹 등 온갖 논란이 불거졌다. 올림픽을 앞두고 진행된 쇼트트랙 월드컵에서의 성적도 좋지 못했다.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최민정은 “한국은 역시 쇼트트랙이라는 말을 듣도록 하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최민정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은메달을 거머쥔 뒤 펑펑 울었다. 그 후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마침내 환하게 웃었다. 대회 전 느꼈던 심적 고통과 부상의 부담감을 모두 덜어낸 듯한 모습이었다.
“외국에서 애국가를 들으니까 실감이 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어요. 좋은 결과가 나와서 뿌듯해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했을 땐 처음이어서 힘든 점이 있었는데, 베이징에 오기 전엔 ‘경험이 쌓였으니 전보다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역시나 올림픽은 올림픽이었어요.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지만 마무리가 좋아서 다행이에요. 많이 울었고 많이 웃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많이 배운 올림픽이었어요.”
최민정에게 여자 1,000m는 아픈 종목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이 종목 결승에서 금메달을 노렸던 최민정은 레이스 막판 같은 대표팀 선수이자 1년 선배인 심석희와 충돌해 4위에 머물렀다. 그런데 지난해 심석희가 A코치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공개되면서 고의 충돌 의혹이 제기됐다. 최민정은 심리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1,000m 경기가 끝나고 많이 울었는데 후련했어요. 울면서 마음에 있던 것을 털어내서인지 1,500m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아요. 이번 대회의 금메달은 제가 지금까지 딴 메달 중 가장 값진 메달이에요. 사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에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한계를 어떻게 이겨내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 생각을 하며 준비하다 보니 마지막까지 잘할 수 있었어요.”
최민정은 1,500m 준결승 경기에서 올림픽 기록(2분 16초 831)을 경신했다. 2016년 자신이 세운 세계신기록(2분 14초 354)까지 보유한 명실상부 여자 1,500m 최강자가 됐다.
“이름을 남겨서 좋아요. 그런데 사실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어떤 기록을 세웠다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요.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부 전 종목에서 올림픽 기록이 바뀌었어요. 그만큼 선수들의 스피드가 빨라졌다는 거죠. 저도 파워를 키우는 훈련을 더 많이 하고 부상 관리를 잘하면서 전체적인 훈련량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뷰 후 숙소로 돌아가 맛있는 것을 실컷 먹고 쉬고싶다는 최민정은 한 가지 숙제가 남아 있다고 밝혔다. 바로 각종 문자메시지에 답변하는 것.
“중요한 경기를 할 땐 지인과 연락을 안 하는 편이에요. 500m에서 넘어졌을 때부터 안부를 묻는 문자메시지가 왔고, 1,000m 경기 후에 은메달을 딴 것을 축하한다는 연락이 많이 왔어요. 오늘부터 열심히 답장해야 해요. 김연경 선수와 김연아 선수에게도 메시지가 왔는데 같은 운동선수로서 위로가 많이 됐고 힘이 났어요.”
그녀는 대회 초반에 여러 가지 이유로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국민들이 함께 분노하고 슬퍼해주고 위로해주셔서 함께 하는 올림픽이 됐다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 또 함께 한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쇼트트랙 대표팀의 주전 선수들이 빠져서 주위의 우려가 컸지만 선수들의 의지가 강했어요. 주변에서 어려울 것이라고 할수록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계주의 마지막 주자였던 저는 더 큰 책임감을 느꼈어요. 선배님들이 여자 계주에서 금메달을 많이 따오셨는데 이번엔 은메달이어서 성적을 유지하지 못해 아쉽고 속상하지만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대표팀이 더욱 단단하게 뭉치고 강한 의지를 갖고 올림픽을 마쳐서 대한민국 대표선수로서 자부심을 더 갖게 됐어요.”
쇼트트랙
소통왕 곽윤기
핑크빛 헤어스타일의 쇼트트랙 남자 대표팀 맏형 곽윤기는 남자 5,000m 계주 은메달의 기쁨을 나누며 그룹 BTS의 댄스 세리머니를 보여줬다. 그는 개인 종목에 출전하지 못하고 단체전에만 출전했지만 후배들과 함께 하며 자신의 동계올림픽 통산 두 번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2010년 밴쿠버 대회 계주 은메달에 이어 12년 만에 추가한 은메달이었다.
“금메달만 보고 여기까지 준비했는데 도달하지 못해 아쉬워요. 원래는 오늘이 은퇴를 앞둔 마지막 경기라고 마음먹었는데 결과가 아쉬워서 한 번 더 올림픽에 도전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는 밤이 될 것 같아요.(웃음) 훌륭한 후배들과 한 시즌을 함께 보내서 행복하고 기쁜 올림픽이었어요.”
곽윤기는 5,000m 계주 전 자신의 유튜브 채널 <꽉잡아윤기>를 통해 은퇴 전 마지막 경기를 앞둔 심경을 전했다. 그에겐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꿈의 무대였다.
“올림픽은 제게 꿈이란 걸 처음 꾸게 한 대회예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도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 됐어요. 5,000m 계주는 저의 스케이트 인생 마지막 페이지의 마침표예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출전이 꿈으로 다가왔고 꿈의 무대에서 가치를 높이고 싶어서 많은 준비를 했어요. 27년 동안 함께 한 스케이트 경기의 라스트 댄스가 멋있도록 열심히 달려볼게요.”
곽윤기는 후배 황대헌, 이준서, 박장혁, 김동욱과 마지막 질주를 함께하며 책임은 자신이 짊어질 테니 부담 갖지 말고 올림픽을 즐기란 조언을 건넸다. 대중에게는 앞으로 새로운 역사를 쓸 후배 선수들에게 열렬한 응원을 부탁한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남겼다. 경기 후엔 자신의 실수로 더 좋은 성적을 못 냈다고 아쉬워했다.
“선두에서 달리고 있다가 제가 실수하는 바람에 두 번째로 밀리면서 레이스가 꼬였어요. 죄책감이 크고 후배들한테 부끄러워요. 레이스가 9바퀴 남았을 때 추월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지막에 승부를 보자는 생각으로 참은 것도 후회돼요. 후배들에게 ‘나만 믿고 따라와’라고 큰소리쳤는데 그 결과가 은메달이라 입만 산 선배가 됐어요. 중간에 위기가 있었음에도 끝까지 달려준 후배들이 자랑스럽고 뿌듯해요. 제가 경험한 대표팀 중 가장 가족 같은 분위기였어요. 올림픽을 준비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팀원과 경쟁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번엔 서로 더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이런 후배들을 만난 것이 제 복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시상대에 올라 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를 췄던 그는 이번엔 BTS의 ‘다이너마이트’ 춤을 선보였다. BTS의 RM은 곽윤기의 시상식 세리머니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윤기 님 ‘다이너마이트’ 잘 봤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세리머니를 준비한 건 아니고 BTS의 팬이에요. 올림픽 초반에 편파 판정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RM이 황대헌 선수의 경기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을 보고 위로를 받았어요. 그에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춤을 춘 것이었는데, RM이 제 춤을 봤다니 대박이에요.”
그는 100만 유튜버가 됐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에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외국 선수들과 오징어 게임, 딱지치기를 하는 모습과 경기장을 찾아 동료 선수를 응원하는 모습 등을 콘텐츠로 제작해 팬들과 소통한 결과다.
“올림픽 기간 동안 팬이 없는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함께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26년 밀라노 동계올림픽에 선수로는 가지 못해도 유튜버로라도 가서 쇼트트랙을 재미있게 전파하기 위해 힘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