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를 장식한 원톱 가수, 1세대 댄싱 퀸, 한국의 마돈나, 댄싱 디바. 무수한 수식어의 주인공은 단 한 명, 김완선이다. 그녀가 지난 2020년 이후 약 2년 만에 싱글 앨범 <Feeling>으로 돌아왔다. 레트로풍의 사운드와 중독성 강한 노랫말이 돋보이는 댄스곡이다. 김완선만의 화려한 무대와 댄스가 그리웠던 이들에게 이보다 반가운 소식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컴백 무대는 전례 없는 댄스로 가요계를 평정했던 1990년대 김완선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여기에 요즘 시대의 감각까지 더했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을 사는 사람, 김완선을 만났다.
2년 만에 싱글 앨범 <Feeling>으로 컴백했어요.
오랜 시간 고민하고 공들인 앨범이에요. 누구나 따라 하기 쉬운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지난 앨범에 이어 프로듀싱 작업에 참여했는데, 수백 번을 듣고 부르면서 가장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자 했죠. 앨범을 만드는 과정까지 빛났기에 더 애착이 가요. 안무 순서를 외우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나이 때문인지 힘들더라고요.(웃음) 그동안 즐겨 추던 장르의 춤이 아니라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했어요. 오랜만에 안무를 맞추고 춤춰서 좋았습니다.
뮤직비디오를 본 이들 사이에서 외모 칭찬이 끊이지 않더라고요.
그런가요?(웃음) 몸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 습관 덕분인 거 같아요. 쉴 때는 확실하게 쉬어야 한다는 주의예요. 피로가 누적되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니까요. 그리고 포만감이 주는 불편함이 싫어 과식하지 않아요. 먹고 싶은 음식을 적당히 섭취하고 있죠. 야식도 먹지 않아요. 야식만 참아도 피붓결이 달라져요.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노력만으로도 외모의 컨디션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얼굴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위를 꼽으면요?
눈과 얼굴형이요. 메이크업에 따라 여러 가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눈매라고 생각해요. 다양성을 가진다는 건 아티스트에게는 큰 축복이에요.
몸매 관리 비법도 궁금해요.
습관적으로 스트레칭을 해요.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집 근처에 있는 산을 오르는데, 몸이 확연하게 좋아졌어요. 등산을 즐기면서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어떤 일이든 꾸준함은 결과를 성공으로 이끄는 거 같아요. 특히 운동에서의 꾸준함은 몸으로 나타나요.
뛰어난 패션 센스로도 유명한데 시그너처 아이템은 뭔가요?
트레이닝복이요. 내추럴한 아이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활용도가 높아요. 저는 트레이닝복을 구매할 때 핏을 꼼꼼히 살펴요. 사이즈에 따라 핏이 달라지고 입었을 때 풍기는 분위기가 다르니까요. 그리고 신발과 아우터를 믹스매치하면서 변형을 줘요. 트레이닝복에 하이힐을 매치하면 운동화를 신었을 때와 느낌이 달라요. 한마디로 편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함을 선보일 수 있는 아이템이에요.
또래 여성들에게 패션 팁을 전수하면요?
유행을 따라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좋아하는 옷,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물론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패션에 반영했으면 좋겠어요. 느낌이나 성격, 나만의 색채를 드러내는 게 가장 멋스럽거든요.
“지난날을 돌아보지 않는다”
지난 1986년 ‘오늘밤’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김완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아이돌 댄스 가수로 등장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장무도회’는 1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이 외에도 다수의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다. 비음이 매력적인 보이스, 몽환적인 이목구비, 화려한 패션은 시대의 화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뷔 37년 차. 여전히 자신의 색채를 담은 음악으로 대중과 만나는 아티스트 김완선과 그녀가 밟아온 길을 돌아봤다.
데뷔 직후부터 톱스타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런가요?(웃음) 이제는 모든 면에서 의연해진 거 같아요. 제가 신곡을 발표해도 모르고 지나가는 이들이 많아요. 하지만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을 선택한 이상 일거수일투족에 연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대중의 사랑으로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반면 자신을 믿고 나아가야 할 때가 있어요. 인기라는 건 영원하지 않고, 당장 누군가가 나의 음악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희망을 놓아버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론적으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하고 싶은일을 마음껏 해보자는 마음이에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는 거죠.
스스로 가장 빛났던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나요?
연습생 시절이요. 무대에 오를 날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어요. 잠까지 포기하면서 연습에 매진했죠. 꿈이 있었던 그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빛난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미래가 막막하게 느껴지던 때이기도 하지만 설렘이 있었어요. 열정이 최고치에 달했죠.
오랜 기간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음악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다른 일을 찾았던 때가 있는데 결국은 무대로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또 음악만큼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도 없고요.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잖아요?
지칠 때도 있었을 거 같아요.
너무 많죠.(웃음) 오랜 기간 정체됐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어요. 더 활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 스스로 확신할 수 없던 때였죠. 그런데 살다 보니 다 지나가더라고요. 하나의 일을 오래 이어가는 과정에서 권태기는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거 같아요. 그래도 오늘처럼 웃으면서 이야기할 날이 와요. 힘든 것도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댄스 가수는 세월이 흐를수록 활동에 여러 가지 제약이 생기죠. 설 무대가 줄어든다든지.
그렇죠.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매번 잘될 순 없어요. 그리고 기대하는 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 때도 많고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남는 건 음악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시간이 흐른 뒤에 제가 세상에서 사라져도 저의 음악과 뮤직비디오는 영원히 남아요. 그리고 꾸준히 작업하다 보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고요.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가 인기를 끌면서 춤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1세대 댄싱 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굉장히 반가워요. 춤은 일상에서 얻을 수 없는 긍정적 에너지를 느끼게 해요. 근사한 춤을 구사할 필요 없이 몸을 움직이는 행위만으로 일종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어요. 춤은 자유의 창구이기도 해요. 털어내지 못했던 감정,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을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죠.
음악뿐만 아니라 연기에도 욕심이 있다고 들었어요.
올해 안에 연기로 인사드릴 예정이에요. 지난 2016년 영화 <킬링 디바>로 연기에 입문했어요. 연기는 내 안에 있는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음악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가사로 전달하느냐, 대사로 전달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무엇보다 줄곧 음악만 하다가 연기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나서 설레었어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또 도전해보고 싶었죠.
김완선을 보면 영혼이 맑고 더없이 자유로운 사람 같아요.
최고의 칭찬이에요.(웃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자유예요. 자유가 없으면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죠. 세상이 정한 틀뿐만 아니라 스스로 정한 틀에서도 벗어나고 싶어요. 막힘없이 살아가는 게 인생의 목표예요.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하다”
김완선은 현재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때가 되면 결혼해야 한다는 틀에 스스로를 가두고 싶지 않았다는 그녀다.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자유’를 만끽하고자 비혼을 택했다. 오롯이 나를 위해 살겠다는 마음으로 단단하고 덤덤하게 인생을 그려가고 있다.
싱글 라이프는 어떤가요?
너무 좋아요.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굉장히 소중해요. 매번 다른 환경에 노출되고 많은 사람과 함께 일하다 보니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이 필요해지더라고요. 저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거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고 제가 하는 일, 했던 일에 대해 정리해요. 그렇게 재충전하고 나면 사람들을 만날 때 더 반갑고 소중하게 대할 수 있게 되죠.
비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한 적은 없어요. 보통 결혼을 많이 하는 시기인 30대 초반에는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40대 초반에 가치관이 확고해졌어요.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겠더라고요. 또 잘 맞는 사람이 아니면 굳이 결혼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요.
그래도 사람인지라 쓸쓸할 때가 있을 거 같아요.
(웃음)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언제나 좋은 감정만 가지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자주 느끼진 않는데 종종 외로움이나 쓸쓸함에 사로잡힐 땐 제 마음을 더 들여다보려고 해요. 애써 잊으려고 하기보다 마음을 정리하고 쓸쓸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편이죠.
김완선에게 사랑이란?
사랑….(한참 고민하던 김완선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저에게 있어 사랑은 물음표예요.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사랑했던 거 같은데 무엇이라고 명쾌하게 정의 내리기는 어렵네요.
미술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고 들었어요.
저를 표현하는 도구 중 하나예요. 생각과 감정이 그림에 고스란히 드러나니까요. 대학 전공이 미술인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2년 정도 됐어요. 미술의 가장 큰 매력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거예요. 일상에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생각, 흩어진 감정을 모아주는 역할을 하죠.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면요?
10년 전에 유럽에서 박물관 투어를 다닌 적이 있어요. 그때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았던 작품들을 만났는데, 특히 프랑스 화가인 외젠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앞에선 압도됐어요.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죠. 그림이 선사하는 힘이 굉장히 크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영화 감상도 빼놓을 수 없는 취미인데 인생 영화는 뭔가요?
<쇼생크탈출>이요. 140분짜리인데 앉은자리에서 다섯 번을 연달아 봤어요. 영화에서 말하는 자유, 제가 삶에서 원하는 자유가 일치하는 느낌이었죠. 영화를 통해 해방감을 느꼈어요.
김완선의 최종 꿈은?
지금처럼만 살고 싶어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거든요.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거 같아요. 앞으로의 삶은 모르겠어요. 50대에 접어들면 세상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배워가는 여정인 거 같아요.(웃음) 앞으로도 새로운 것들을 만나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살겠죠? 기대돼요.
인터뷰 내내 이어졌던 김완선의 맑은 웃음. 그녀가 그토록 바라는 자유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게 아닐까? 김완선의 웃음 소리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