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막의 리움이 고품격이었다면 2막의 리움은 세련미다. 무기한 휴관을 선언했던 삼성의 사립미술관 ‘리움’이 1년 7개월 만에 재개관 소식을 전했다. 돌아온 리움의 양손에는 내부 전시관 정비와 4년 만에 준비된 기획전이라는 쏠쏠한 선물이 들려있었다. 지난 2004년 설립 이후 홍라희 관장 체제로 운영되던 리움은 고 이건희 삼성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리움 운영위원장을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전시장과 미술관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버렸다는 것.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사로잡는 대형 미디어월은 5,000만 화소 이상의 해상도를 지원한다. 이는 현존하는 디스플레이 중 가장 우수한 화질이다. 안내 데스크에서도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숯 240개를 쌓아 세워둔 이배의 ‘불로부터’는 로비의 중심을 잡는 검은 기둥과 대조를 이룬다. 눈으로만 관람해야 했던 전시품의 룰을 깨고 손으로 만져보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로비의 중심에도 작품이 숨어 있다. 바로 김수자의 ‘호흡’이다. 하늘에서 빛이 내리면 옥상과 연결된 통로를 통해 로비 한가운데에 찬란한 빛깔의 색채가 내리쬔다. 시선과 발길이 닿는 모든 곳에 작품을 전시한 리움. 이곳에서의 모든 시간을 감상으로 채우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리움의 재개관 소식이 알려지면서 가장 주목받은 부분은 이서현 운영위원장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기획전이다.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이 그 주인공. 이번 전시는 21세기의 급변하는 환경과 유례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인간으로 존재하는 데 대한 의미를 고찰하고 미래의 세계관을 각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론 뮤익, 이불, 앤디 워홀, 피에르위그, 김옥선, 백남준, 이건용, 니키리 등 국내외 51명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그림·영상·설치미술 등 13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는 일곱 개의 질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총 7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의 큰 호응을 얻은 작품은 ‘론 뮤익’의 ‘마스크Ⅱ’(2002)다. 기획전 첫 섹션인 ‘섹션 1-거울 보기’에 마련된 이 작품은 압도적인 크기로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인상을 안긴다. ‘마스크Ⅱ’는 편안하게 잠든 남자의 얼굴이 극사실적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1m의 크기를 자랑한다. 그룹 ‘블랙핑크’ 로제와 ‘방탄소년단’ 뷔가 자신의 SNS에 리움 방문 게시물을 게재하면서 인증 사진에 포함한 작품으로도 알려졌다. 두 번째로 인기를 끈 작품은 섹션 6에 전시된 설치미술가 이불의 ‘사이보그 W1, W2, W4, W6’다. 유리 박스 안에 사이보그 형태의 모형이 절개된 채 전시된 이 작품은 휴먼과 포스트휴먼, 살과 금속 사이의 경계가 붕괴되는 세계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돌아온 리움은 인간의 존재와 우리를 둘러싼 관계, 당연해서 잊고 지냈던 인간적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무너뜨려 미래를 맞이할 준비가 됐는지 고민하게 한다. 한편 리움에서는 <인간, 일곱 개의 질문> 외에도 국보품과 보물이 포함된 고미술 상설전과 현대미술 상설전을 만날 수 있다.
<인간, 일곱 개의 질문>
기간 ~2022년 1월 2일
장소 리움미술관 그라운드갤러리
예약 리움미술관
홈페이지 사전 예약
문의 02-2014-6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