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푸는 운동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스포츠로 떠오른 ‘클라이밍’.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는 수식어가 인기를 증명한다. 마니아들이 사랑하는 스포츠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운동으로 자리 잡은 클라이밍. 모르는 사람들은 정상을 향해 “올라선다”고 말하지만, ‘문제를 푼다’는 의미로 통한다. 왜 많은 이들이 빠졌을까?
MZ세대를 사로잡다
클라이밍은 실내외 인공 벽면에 부착된 손잡이인 홀드를 잡고 등반하는 스포츠로 전신을 이용한다. 같은 색상의 홀드를 잡아 가장 높은 지점까지 문제를 풀어나가면 된다. 신체를 부분적으로 ‘벌크업’하는 여느 운동과는 달리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의 효과를 한 번에 얻을 수 있다. 클라이밍의 가장 큰 특징은 몸과 머리를 동시에 쓰는 운동이라는 데 있다. 가장 높은 곳까지 가기에 앞서 자신의 신체 조건을 고려한 루트를 직접 설정하기 때문. 즉, 내가 가야 하는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운동이다. 클라이밍의 핵심은 삼지점이다. 암벽에서 이동할 때 손을 모아 매달리고 발을 양쪽으로 벌려 몸 전체를 삼각형을 유지하는 게 클라이밍의 기본동작이다. 몸이 흔들리거나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자세다.
스포츠클라이밍은 2020 도쿄 올림픽부터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세계 유수의 대회에서 성과를 드러내면서 클라이밍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작은 체구로 한계를 뛰어넘는 코스에 도전하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김자인부터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이름을 알린 ‘암벽 신동’ 서채현 선수 등이 대표적이다.
클라이밍에 중독되는 가장 큰 이유는 ‘성취감’이다. 클라이밍에 입덕한 이들은 해내지 못했던 고난이도 코스를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룹 ‘AOA’ 설현, 배우 조정석도 클라이밍에 빠진 이유를 묻자 “엄청난 성취감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클라이밍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오롯이 자신과의 싸움으로 문제를 풀어냈다는 데 있다. 난이도가 구분된 코스에서 자신의 성장 수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클라이밍의 매력이다. 잠시 잊고 있었던 도전 의식을 일깨워준다.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클라이밍은 안전상 많은 사람이 동시에 암벽에 오를 수 없다. 다른 사람과 루트가 엉켜 충돌할 위험이 있고, 낙하하는 지점에서 부딪칠 시 큰 부상이 따르기 때문. 실내 암장에 가면 많은 이들이 암벽 앞에 둘러앉아 자신의 루트를 짜면서 다른 이용자의 코스를 관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처음 만난 사람일지라도 목표 지점에 다다르거나 쉽게 닿지 못하던 다음 홀드를 잡는 데 성공하면 아낌없이 박수를 쳐준다. 이 과정에서 집단 소속감이 생기고, 나아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실외 암벽으로 원정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클라이밍이 대중성 있는 운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데는 MZ세대의 힘이 크다. 일일 스포츠로 입문해 헬스장, 필라테스처럼 정기권을 끊고 실내 암장을 찾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인스타그램 기준 클라이밍 해시태그가 포함된 게시물은 약 70만 개다. 클라이밍 성장기를 피드에 기록해 성취감을 느끼고, 인증 사진을 통해 클라이밍에 빠진 이들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스포츠의 재미를 배가한다. 100만원 상당의 고가 운동인 헬스장 PT(개인 트레이닝)나 필라테스 등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다. 강습을 포함한 일일 체험은 평균 2만~3만원 수준이며, 개인 레슨 비용은 횟수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 기준 30만원 안팎이다. 현장에서 암벽화 대여도 가능하다.
알고 보면 다른 클라이밍 종목
스포츠클라이밍 종목은 볼더링, 리드 클라이밍, 스피드 클라이밍까지 총 3가지다. 홀드를 잡고 문제를 푸는 원리는 비슷하지만 그 과정과 방법은 각기 다르다
볼더링
6~7m 높이의 암벽을 등반하는 종목이다. 어떠한 장비 없이 맨몸으로 시작 홀드부터 종료 홀드까지 오르는 것을 규칙으로 한다. 취미로 클라이밍에 입문한 사람이 실내 암장을 찾았을 때 처음으로 배우는 게 볼더링이다.
리드 클라이밍
허리에 벨트와 줄을 매달고 높은 암벽을 등반하는 종목이다. 등반의 루트가 높은 만큼 안전을 필요로 한다. 김자인 선수의 주 종목으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으며,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으로 승패가 갈린다.
스피드 클라이밍
15m 높이의 수직 암벽에 설치된 같은 홀드를 빠른 속도로 오르는 종목이다. 선수마다 설치된 홀드가 같고 루트가 하나이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종료 홀드까지 등반하는 게 관건이다.
에디터가 직접 해봤다!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김자인 선수가 123층, 555m 높이의 잠실 롯데타워를 맨손으로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스포츠클라이밍을 알게 됐다. 언제부터인지 SNS에 클라이밍에 빠졌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난이도를 높여 성공하는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클라이밍에 빠져든 친구가 “한번 가보면 너도 빠지게 될 것”이라고 일종의 영업을 했지만, 약간의 고민도 없이 “무서워서 싫다”며 거절을 반복했다. 하지만 나만 안 해본 스포츠로 남기기에는 멋져 보였다. 그렇게 1일 체험을 위해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소재 클라이밍짐 ‘더 플라스틱’에 다녀왔다.
손과 발의 밸런스
1일 클래스는 클라이밍 강사의 설명과 실습까지 총 40분으로 구성된다. 당일 운동복은 스스로 챙겨 가야 하고, 암벽화는 현장에서 대여할 수 있다. 무지개색 테이프로 난이도가 구분되며, 입문자의 경우 빨간색으로 시작해 노란색까지 성공하면 스스로 뿌듯함을 느껴도 된단다. 난이도 구분은 암장에 따라 다르다. ‘홀드’는 인공 암벽의 손잡이다. 시작 지점의 홀드를 양손으로 잡고 두 발을 떼면 시작이다. 같은 색의 홀드를 따라 한 칸씩 올라가 가장 위에 위치한 톱 홀드를 양손으로 3초간 잡고 유지한 뒤 다시 내려오면 그 단계를 풀었다고 말한다. 시작 전 간단한 스트레칭을 했다. 손과 발을 충분히 풀어준 뒤 암벽화를 신었다. 일반 신발과 다르게 발가락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게 올바른 착용법이란다. 강사의 시범을 보고 첫 번째 주자로 빨간색 테이프가 붙은 가장 낮은 난이도의 문제에 도전했다. 웬걸, 생각보다 홀드가 손에 잘 잡혔다. 뒤에선 박수 소리가 들렸다. 클라이밍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을 때 강사가 말했다. “방금 푼 문제는 초등학생도 가뿐하게 푼다”고 말이다.
오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낙법
낙법도 배웠다. 떨어지면서 팔과 무릎, 허리는 물론 튀어나온 홀드에 얼굴을 다치는 경우가 빈번하단다. 따라서 낙하할 땐 잡고 있던 홀드나 벽을 밀어 최대한 멀리 떨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무게중심은 뒤에 두고, 발은 11자로 유지, 두 손은 양쪽 가슴에 교차해 대고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낙하하는 게 안전하다. 등반 경로인 ‘루트’도 짜봤다. 어떤 방식으로 올라가야 안전하게 문제를 풀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특히 실내 암장의 경우 다른 사람의 루트와 겹칠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감안하는 것도 중요했다. 짜본 루트대로 문제를 푸는 데 성공했다. 엄청난 성취감이 밀려왔다. 클라이밍 입문자들 사이에서 성패가 갈린다는 노란색 단계에 도전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곳에 잡아야 할 홀드가 있었다. 몸을 움츠렸다가 뛰어올라 홀드를 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톱 홀드에는 닿지 못한 채 내려와야 했다. 다시 앉아서 루트를 재점검했다. 실패의 원인을 찾고 다시 문제 풀기에 도전했다. 결국 어떻게 됐을까? 클라이밍의 여운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남았다. 팔은 물론 겨드랑이까지 근육이 살아 있음을 자극으로 알려주었다. 이 글을 쓰면서 마감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아직 오르지 못한 암장의 정상이 눈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