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상은 ‘은둔한 천재‘다. 1830년 12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에서 태어난 에밀리는 2,000편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시를 썼지만 생전에 발표된 것은 거의 없었다. 외출도 하지 않았고, 몇몇 친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집에 온 손님조차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을 때 이미 애머스트의 전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빠인 오스틴, 여동생인 라비니아와 활기찬 어린 시절을 보내고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교에 다니며 상당한 교육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식물학을 공부하고 대단한 독서량을 자랑했다. 지역에 큰 영향력을 가진 가문에서 자라난 그는 여성에게 순종을 가르치려는 시도에 크게 반발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칩거했지만 지인들과 활발하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단단하고 완전무결한 세계를 꾸려나갔다.
그는 평생 불안정하고 폭발적인 사랑을 간직하며 살았다. 상대는 동갑의 아름다운 수전 길버트. 고아로 태어나 의지하던 언니마저 잃은 수전은 20살이 된 해에 디킨슨가로 들어왔다. 에밀리는 수전에게 깊이 빠져들었지만, 수전은 에밀리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었다. 수전이 선택한 사람은 그의 오빠, 오스틴이었다. 수전은 오스틴과 결혼하면서 에밀리가 살고 있는 홈스테드 옆에 새로 지은 에버그린즈에서 살림을 꾸린다. 홈스테드와 에버그린즈 사이에는 좁지만 단단한 오솔길이 생겼다.
에밀리의 표현에 따르면 “그 작은 길이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다니기에 딱 맞게 넓었다.” 에밀리의 오랜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모든 힘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수전은 죽을 때까지 에밀리의 곁에서 살았다.
<진리의 발견>에서 마리아 포포바는 수전을 “평생 시인의 뮤즈이자 스승, 첫 독자, 편집자이자 가장 강렬한 애착의 상대, ‘세상에서 유일한 여성’으로 남는다”고 말한다.
수전에 대한 에밀리의 사랑은 말년에도 식지 않았다. 그는 시를 통해 끊임없이 사랑의 메시지를 타전한다. “영원을 보여줘, 나는 기억을 보여줄게-두 가지 모두 한 꾸러미에 담긴 채 / 다시 한번 되돌아왔지- / 수가 되어줘-나는 에밀리를 할게- /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음의 무한이 되어줘.”
수전이 에밀리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것은 아니다. 수전의 친구인 케이트 스콧 앤손과의 연애도 강렬했다. 케이트와 수전, 에밀리는 이상한 삼각관계를 만들었고 결국 케이트의 단호한 편지로 끝났다. “그녀는 그 예쁜 말들을 마치 칼날처럼 내질렀지-/ 그 칼날들이 얼마나 반짝이던지- /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경을 찔렀고 / 혹은 뼈를 가지고 장난을 쳤어-” 그의 시는 그의 사랑의 궤적을 보여준다.
에밀리가 죽고 난 뒤 여동생 라비니아와 수전, 그리고 오스틴의 애인인 메이블의 헌신적 노력으로 결국 시집이 출간되기에 이른다.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했으나 시집 출간 이후 그는 천재적 시인으로 인정받는다. 지독하리만큼 오로지 수전만을 향하고 있던 그의 시들. 그의 사랑은 죽음으로서만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그런가? 멈추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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