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면 복잡하지만 쉽게 보면 단순한 사건.” 대선을 5개월 앞두고 터진 성남시 대장동 개발 의혹(이하 ‘대장동 게이트’)을 놓고 나오는 평이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사건이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하게 보면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비리를 검찰이 얼마만큼 밝혀낼 수 있을까’로 귀결된다.
당연히 검찰의 수사 대상도 살펴봐야 한다. 50억원 퇴직금 논란의 곽상도 무소속 의원부터 박영수 전 국정농단 특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까지, 내로라하는 법조인과 정치인은 물론이고 유력 대선 후보들까지 의혹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는 빠르게 진행 중이다. 검찰 수사팀은 사건 관계 핵심 인사들을 소환 조사하며 속도를 내고 있지만 사건이 복잡한 데 비해 시간이 부족한 것은 한계다. 대선이나 총선이 100일 안으로 가까워지면 ‘정치 개입’ 논란을 피하기 위해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 암묵적 룰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사건이 11월 초에는 결론날 것이라는 평이 파다하다.
# 유동규, 김만배 등 핵심 인사 수사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김만배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검찰이 10월 12일 기준 구속영장을 청구한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관련 핵심 인물들이다.
사안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남시는 분당구 대장동 91만여㎡ 부지에 5,903가구를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당초 민간개발로 진행됐으나 개발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발생하자 성남시는 계획을 전면 수정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10년 성남시장으로 취임한 뒤 공영사업으로 바꿨고, 재선에 성공한 후에는 민관 공동 개발로 계획을 바꿨다. 그렇게 2015년, 지금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만든 대장동 사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행을 위해 성남도시개발공사는 민간 사업자가 절반씩 투자한 특수목적법인(SPC) ‘성남의뜰’을 2015년 7월 설립했고, 성남의뜰에는 지분 14.28%를 가진 화천대유라는 회사가 등장한다. 이 회사 소유주는 경제 매체 소속 기자로 법조계를 오래 출입한 김만배 씨였다.
2015년 2월 설립한 화천대유는 곧바로 대장동 개발에 자산관리회사 역할을 맡았고, 얼마 되지 않는 지분으로도 개발을 주도했다. 2017년 매출액이 18억원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6,970억원으로 급증한다. 직원 16명의 작은 회사가 대박을 친 셈이다. 그사이 김 씨는 본인과 가족 명의로 2억원이 되지 않는 돈을 투자해 1,000억원에 달하는 배당금을 챙겼다. 물론 그사이 성남시가 5,000억원의 이익을 환수했지만 나머지 수천억원의 이익은 김 씨와 그의 동업자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누가 봐도 이상한 사업 구조였던 탓에 SNS에서는 이를 풍자한 덕담이 확산됐다. 술자리에서 “화천대유 해라~”는 말이 ‘투자 성공해라’라는 뜻의 인사말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검찰도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에 검사 17명을 투입, 대장동 개발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차장검사)을 꾸리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그 후 성남도시개발공사에서 사업을 주도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를 구속했다.
부동산 개발 관련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는 “보통 시처럼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도하는 개발의 경우, 그 지역에서 오랜 기간 사업을 영위했던 개발사나 시행사가 정보나 소통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하던 곳이 참여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렇게 급히 만들어진 회사가 작은 투자 금액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특혜 논란이 없을 수 없다”며 “검찰도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빠르게 수사에 착수한 것 아니겠냐”고 평가했다.
# ‘50억 클럽’은 국민의힘 게이트? 이재명 게이트?
당연히 ‘거액’을 벌 수 있는 부동산 개발사업에 잡음이 없을 리가 없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대장동 게이트로 비화될 수 있는 핵심 증거를 확보했다. 주요 투자자 중 한 명이었던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 투자자)로부터 당시 핵심 인물들이 나눈 녹취록을 확보한 것.
이 과정에서 ‘50억 클럽’이라는 ‘정·관계 로비 대상 명단’이 공개됐다. 김만배 씨가 주요 투자자들에게 “사업이 성공하면 50억원씩은 챙겨줘야 한다”고 제시한 인물들이었는데, 로비 대상 당사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실체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하에 수사를 진행 중이다.
특히 곽상도 무소속 의원은 화천대유에서 근무했던 아들이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사 대상 1호 정치인이 됐다. 곽상도 의원 측은 “아들이 일을 하다가 다쳐 보상 명목으로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오히려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결국 곽 의원은 국민의힘을 떠나야 했지만, 검찰 수사는 피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검찰은 이미 김만배 씨에게 청구한 구속영장에서 “곽상도 의원 아들에게 준 50억원이 뇌물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검찰의 판단을 알 수 있는 지점이다.
그 밖에도 박영수 전 특검,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은 각각 ▼딸 아파트 분양권 특혜 수억 차익 논란(박영수) ▼매달 1,000만원이 넘는 고액 자문료를 화천대유로부터 받은 논란(권순일, 김수남) 등이 불거졌다. 여당은 ‘야당 게이트’라고, 야당은 ‘여당 게이트’라고 서로 공세를 펼치게 된 계기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논란 직후인 9월 14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5,503억원의 이익을 성남 시민의 이익으로 환수한 모범적인 공익사업이었다”고 항변하면서 곽상도 의원 아들 퇴직금 논란 등을 언급하며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공세를 펼쳤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김만배 씨의 누나에게 윤석열 전 총장 아버지의 서울 연희동 자택을 매각한 것을 놓고도 ‘뇌물 성격’이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반면에 국민의힘은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지사가 어떻게 사업 구조를 모를 수 있냐”며 “알았으면 비리, 몰랐으면 무능”이라는 프레임으로 이재명 게이트라고 맞서고 있다. 또 윤석열 전 총장 부동산 매각과 관련해 계약서와 대금이 오고간 통장 등을 공개하며 “이재명 지사가 당당하면 특검에 임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정치권의 공방과 별개로 검찰의 추가 수사는 대충 방향이 정해져 있다. 당시 김만배 씨와 함께 투자했던 인물들은 검찰이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만배가 유동규 등 성남시 측 인사들을 챙겨줘야 한다고 했고, 거기에 건넬 돈을 조달하라고 해서 갈등이 있었다”는 취지로 발언하고 있다. 검찰은 김 씨가 700억원가량을 유동규 전 본부장에게 건네려고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건넨 것은 5억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미리 약속이 있었다는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700억원이 어디로 가려 했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유동규 전 본부장을 거쳐 ‘성남시 수뇌부’로 전달됐으리라는 것이 법조계 다수의 의견이다. 정치인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는 “지방자치단체 개발의 경우 위에서 얼마나 도와줬느냐에 따라 사업 추진 속도와 이익 배분이 크게 달라진다”며 “절대로 혼자서 수백억원이나 되는 돈을 꿀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성남시는 다수의 부동산 개발을 하면서 대장동에서만 초과 이익을 환수하는 조치를 하지 않았다.
# 문재인 대통령 ‘속도전 지시’는 무슨 의미?
그동안 침묵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사안이 중대하다는 점을 고려해 직접 나섰다. 앞서 청와대 핵심 관계자발(發)로 “엄중하게 수사하라”는 입장을 내놨던 것을 넘어 지난 10월 12일에는 직접 “검찰과 경찰은 적극 협력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달라”고 지시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문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면서 “정치적 의미를 더한 해석은 말아달라”고 말했지만 법조계에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원론적인 얘기지만 검찰에게는 ‘빠르게 수사해 사실관계를 규명하라는 얘기로 해석되지 않겠느냐”며 “검찰이 유동규를 구속함에 따라 ‘대장동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는 뇌물 수수 대상자들에 대한 수사 속도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회의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제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검찰 수사가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해석이다. 검찰 출신의 변호사는 “검찰은 수사해 사실관계를 밝혀야 하지만 대선이나 총선 일정이 100일 안으로 가까워지는 경우 ‘정치에 개입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수사를 멈추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며 “11월 초가 되면 검찰은 수사하기 부담스러운 시점이 된다. 그 전까지 최대한 빠르게 수사하되 대선 후보들과 관련된 수사는 대선 때까지 진행하지 않고 있다가 대선 후에 결과를 고려해 수사를 재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0월 14일 법원이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김만배 씨에 대해 “소명이 덜 됐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만 해도 750억원의 뇌물 혐의에 대해 ‘단군 이래 최대 뇌물 금액’이라고 강조했지만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수사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핵심 인물의 신병을 확보해 외부와 입을 맞추지 못하게 하는 게 뇌물 사건의 시작인데 시작부터 흔들리게 됐다”며 “영장이 기각될 때마다 검찰의 수사 자체도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재명 지사, 경선 승리했지만 불안…
성남시장 재임 기간에 진행된 개발사업에서 불거진 게이트 탓에 조마조마하게 사안을 바라봤던 이재명 경기도지사.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과반 득표(50.28%)에 성공하며 승리했지만 잡음이 적지 않다. 특히 마지막 3차 국민·일반 당원 선거인단 투표에서 나온 결과는 이재명 지사 측을 고민에 빠지게 했다.
그동안 이낙연 전 대표에게 완승했던 이재명 지사는 마지막 3차 투표에서 28대 62로 완패했다. 24만 8,880명이 참여한 3차 국민·일반 당원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재명 지사는 28.30%(7만 441표)를 얻는 데 그쳐 이낙연 전 대표(62.37%, 15만 5,220표)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3차 선거인단 투표는 10월 6일부터 10일까지 이뤄졌다. 이재명 지사의 ‘옛 측근’으로 꼽히는 유동규 전 본부장이 10월 3일 구속된 이후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정점으로 치닫던 시점이라 더불어민주당은 결과를 놓고 대선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이재명 지사, 뇌물 받은 ‘그분’인가?
사안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뇌물’을 받았는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검찰이 확보한 녹취록에 등장하는 ‘그분’이 핵심 키워드다.
일단 김만배 씨는 ‘그분’은 실체가 없다고 말했다. 언론과의 인터뷰는 물론, 검찰 수사에서도 “천화동인 1호의 절반은 ‘그분 것’이다”라는 녹취록 내 본인 발언에 대해 “그분은 없다. 천화동인 1호는 제 것인데 어떻게 그분이 있을 수 있냐”고 발언했다.
하지만 동업자들의 얘기는 다르다. 천화동인 4호 투자자인 남욱 변호사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만배 씨가 거짓말을 많이 한다. 주변에 챙겨줘야 할 인물들이 있다고 해서 갈등이 있었다”는 취지로 얘기했고, 대화를 녹취한 정영학 회계사 역시 “김만배가 유동규 등에게 챙겨줘야 한다고 해서 갈등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그분’이 언급된 것은 사실”이라는 맥락으로 검찰 등에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은 ‘그분’이 이재명 지사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유동규 전 본부장과 김만배 씨,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는 서로 형, 동생 하며 지냈는데 김만배 씨가 나이가 가장 많아 유동규 전 본부장을 ‘그분’이라고 높여 지칭할 리가 없다는 추측에서였다.
다만 검찰 수사팀은 ‘정치적 역풍’을 우려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 역시 “검찰이 확보한 녹취록 속 ‘그분’은 이재명 지사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 10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여한 이정수 지검장은 “(언론이 확보했다는) 녹취록에 (김만배 씨가) 그런 부분을 말했다는 것을 전제로 보도되고 있는데, 저희가 아는 자료와 사뭇 다른 측면이 있다”면서 “녹취록 다른 부분에 ‘그분’이라는 표현이 있긴 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 부분이 언론에서 말하는 인물(이재명 경기도지사)을 특정한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대선 전에 검찰 수사가 결론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되는 대목이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지금 검찰 수사팀은 친정부 인사들로 세팅돼 있어 여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재명 지사를 지칭했는지 판단하려면 적극적으로 처벌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