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미스터리 서바이벌 게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9월 17일 공개된 후 94개국에서 1위 콘텐츠에 이름을 올렸고, <브리저튼>에 이어 넷플릭스에서 가장 흥행한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한 달 동안 소셜 네트워크에서 떠돌았으며, 틱톡에서 <오징어 게임>을 해시태그한 게시물은 조회 수 360억 뷰 이상을 기록하는 동시에 수많은 밈을 탄생시켰다. 또 청소년들은 드라마 속 게임을 따라 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극에서 한 라운드의 게임 종목으로 등장했던 일명 ‘달고나 뽑기’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달고나 뽑기 세트’ 품귀 현상을 일으켰으며, 핼러윈을 앞두고 게임 참가자들이 입은 초록색 체육복과 프런트맨으로 등장하는 이병헌이 착용한 가면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드라마에서 ‘새벽’(정호연 분)과 ‘지영’(이유미 분)이 단 한 차례 언급한 제주도에 대한 관심도 치솟았다. 탈북자 ‘새벽’ 역을 맡은 정호연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40만에서 1,900만으로 늘어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오징어 게임>의 주역인 배우 이정재·박해수·정호연·위하준은 미국 NBC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 출연, 글로벌 대세임을 입증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시즌 2에 대한 기대감이 새어 나온다. 외신들은 극에서 게임 현장으로 잠입하는 경찰 ‘준호’(위하준 분)가 죽지 않고 형이자 프런트맨인 ‘인호’(이병헌 분)와 갈등을 빚는 내용이라든가 ‘동대문을 열어라’, ‘우리 집에 왜 왔니’, ‘공기놀이’ 등 새로운 게임이 등장하는 라운드가 펼쳐질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왜 전 세계가 매료됐을까?
쉬운 게임 룰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것은 한국의 전통 놀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시작으로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다리 건너기, 오징어 게임 등은 어린 시절 골목에서 친구들과 함께 했던 놀이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어린아이들이 하는 놀이 특성상 규칙이 간단해, 한국 전통문화를 모르는 외국인들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하나의 이유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달고나 뽑기다. 해외에서는 달고나 뽑기를 ‘허니콤 토피(honeycomb toffee)’라고 부르며 새로운 놀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아마존, 이베이 등 해외 이커머스에서는 <오징어 게임>의 장면을 설명으로 붙인 달고나 뽑기 만들기 세트도 판매한다. 가격은 2만~4만원대로 5,000원~1만원을 오가는 국내 가격의 최대 8배 수준이다.
국가적 경제 불안
<뉴욕 타임스>는 <오징어 게임>의 인기 요인으로 국가적 경제 불안을 꼽았다. 극 중 개인이 처한 경제적 빈곤 문제가 청년들의 현실과 유사하고 사회에서 성공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 경제성장을 저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증가한 한국의 가계 부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 집값 등으로 사회에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한 청년들의 모습이 <오징어 게임> 속 캐릭터들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오징어 게임>의 연출자 황동혁 감독은 “등장인물이 가진 문제는 매우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극 중 캐릭터와 한국 청년들의 현실이 가진 유사점이 예상 밖으로 국제적인 돌풍을 이끌고 있다”고 밝혔다.
K–콘텐츠의 산업화
1990년대부터 국내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콘텐츠의 질이 상승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영국의 BBC 방송은 “<오징어 게임>의 선풍적 인기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서구 전역에 몰아친 한국 문화 쓰나미의 가장 최근 물결”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 같은 열풍은 ‘BTS’, ‘블랙핑크’ 등 K팝 아티스트의 인기와 오스카상을 거머쥔 영화 <미나리> <기생충> 등 한국 영화의 성공과 궤를 같이한다고 전했다.
숫자로 보는 <오징어 게임>
1조
블룸버그통신에서 공개한 넷플릭스 내부 보고서를 통해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으로 창출하는 가치를 약 1조원으로 추산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넷플릭스는 미국 대형 유통업체 월마트와 협업해 <오징어 게임> 관련 굿즈를 판매하기로 했다.
111,000,000
<오징어 게임>을 시청한 시청자 수다. 적어도 2분 이상 시청한 사람은 1억 3,200만 명이며, 그중 8,700만 명은 23일 만에 9회까지 ‘정주행’을 마쳤다. 전 세계 시청자가 <오징어 게임>을 보는 데 소요한 시간을 모두 합치면 14억 시간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햇수로 따지면 15만 9,817년이다.
94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오늘의 TOP 10’ 1위에 오른 나라의 숫자다. 한국은 물론 미국, 브라질, 프랑스, 인도, 터키 등 94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김민영 넷플릭스 아시아 태평양 콘텐츠(인도 제외) 총괄 VP는 “세계적인 수준의 한국 콘텐츠를 선보이고 싶었다. 우리가 상상만 했던 꿈같은 일을 <오징어 게임>이 현실로 만들어줬다”고 밝혔다.
25,300,000,000
총제작비는 253억원이다. 회당 제작비는 약 28억원 꼴이다. 넷플릭스의 인기작 <기묘한 이야기>와 <더 크라운>의 회당 투자비가 각각 95억여원, 119억여원인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적은 비용이다.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을 가성비 콘텐츠로 꼽는 이유다.
58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 참가자이자 창시자인 ‘오일남’으로 분한 배우 오영수의 연기 경력이다. 58년 경력의 배우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을 통해 전 국민의 깐부(극에서 구슬 게임을 할 때 구슬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친구를 의미하는 말)가 됐다. 최근 오영수는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오징어 게임>으로 얻은 인기에 대해 “지금은 스스로를 정리하면서 자제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일상이 달라져 유명해지는 것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 사회가 1등 아니면 안 될 것처럼 흘러갈 때가 있다. 그런데 2등은 1등에게 졌지만 3등에게 이겼지 않은가? 모두가 승자”라며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승자는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해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말해 감동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