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 언니의 리더십
여자 배구 김연경
“10억 명 중의 한 명!” 세계배구연맹이 트위터에서 김연경 선수를 극찬한 말이다. 한국 여자 배구의 간판스타이자 2020 도쿄 올림픽 한국 여자 배구 4위 신화의 주역, 김연경은 지난 8월 9일 인천국제공항에 밝은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국민들이 배구를 많이 사랑해주셔서 4강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 같아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금도 실감이 안 나요. 공항에 와주신 분들을 보니까 많은 분이 응원하고 지지해줬다는 게 또 한번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관심과 인기가 이어지도록 여자 배구가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배구 여제 김연경은 2020 도쿄 올림픽 한국 여자 배구팀 주장을 맡아 도미니카공화국,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 끝에 승리를 이끌어 8강 진출을 이뤘다. 이후 터키와의 8강전에서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9년 만에 올림픽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기록했다. 이후 브라질과의 준결승전과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하며 4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사실 도쿄로 떠나기 전엔 예선 통과가 가능할지 의문이었어요. 많은 분이 기대를 안 했던 것도 사실이죠. 우리가 팀워크로 똘똘 뭉쳐서 이뤄낸 값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팀워크가 아니었다면 이루지 못할 부분이 많았습니다. 팀 스포츠에서는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김연경은 결과에 신경 쓰지 말고 120퍼센트를 쏟아내고 오자는 각오로 도쿄로 향했다. 그래서 여덟 경기를 치르는 동안 마음의 변화는 크게 없었지만, 케냐전을 시작으로 도미니카와 일본전까지 5일 동안 타이트한 일정이 이어졌을 땐 압박감과 중압감이 들었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을 이끈 라바리니 감독은 김연경의 경기력에 대해 “100점 만점에 5,000점”이라고 평가했다.
“저와 우리 선수들의 이번 올림픽에서의 점수는 100점 만점에 99점을 주고 싶어요. 함께 힘든 시간을 이겨줘서 고마워요. 뭐 하나라도 목에 걸고 왔어야 하는데….”
평소 거침없는 입담과 솔직하고 털털한 ‘걸 크러시’ 매력으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김연경은 2004년 아시아청소년여자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한국 여자 배구의 에이스로 활약해왔다. 터키, 중국 등 해외 리그에서 눈부신 성과를 낸 것은 물론 비인기 종목이었던 국내 여자 배구의 인기를 끌어올린 것도 바로 김연경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 도쿄 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결정했다.
“국가대표를 그만둔다고 하니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그동안 대표 선수로 뛴 시간은 제 인생에서 너무나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많은 가르침을 주신 감독님들과 코치진, 같이 운동해온 대표팀 선배님, 후배 선수들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김연경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후배 선수들이 잘해줄 거라 믿고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김연경은 휴식기를 가진 후 중국 리그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사각 코트에서 가장 빛나는 영원한 배구 여제의 앞길을 응원한다.
안산 신드롬
양궁 안산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혼성 단체전, 여자 단체전, 개인전의 금메달을 따내며 올림픽 여자 양궁 역사상 첫 3관왕에 오른 안산(20세·광주여대) 선수는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기 때마다 침착하고 담대한 모습을 보여줘 ‘강심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침착함을 유지하는 데 혼잣말이 많은 도움이 돼요. ‘차분하게 하자’ ‘진정하자’는 말을 많이 해요. 평소 성격도 침착한 편이지만 많은 훈련의 결과이기도 해요. 결승전에서 연장전까지 갔을 때도 슛오프를 앞두고 이 한 발로 결정된다는 생각보다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마음먹고 경기에 집중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큰 대회에서는 더 신경 쓰다가 결과가 안 좋을 때가 많아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이라는 말을 새기고 연습 때 하던 대로 쉽게 쏘자고 혼잣말을 하는 거죠.”
‘멘탈갑’ 안산도 시상식에서는 울음을 터뜨렸다. “시상대 위에서 애국가를 듣겠다”고 인터뷰했던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났다고. 안산은 평소 별명이 울보일 정도로 실제 잘 우는 편이란다. 도쿄에 가기 직전에는 부담감 때문에 울었다고 한다.
안산의 3관왕은 논란과 역경에도 흔들림 없이 경기에 임한 끝에 이뤄낸 결과라서 더욱 값지다. 대회가 한창이던 지난 7월 말 짧은 머리와 과거 sns에 쓴 표현, 여대를 다닌다는 이유로 그를 ‘페미니스트’로 규정하고 무차별한 ‘온라인 테러’가 이어졌다.
당시 안산은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경기력 외에 질문은 대답하지 않겠다”며 강한 멘탈을 보여줬다.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멘탈갑의 안산이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스무 살의 젊은이다. 걸 그룹 ‘마마무’와 밴드 ‘루시’를 좋아하고 엄마가 끓여주는 애호박찌개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며, 팔이 아플 정도로 사인을 열심히 하다 보니 인기를 실감한다는 농담도 던질 줄 안다.
“개인전에서 150점 만점을 쏘는 게 운동선수로서 남은 목표예요. 언젠가 한번 이뤄내고 싶어요.”
시합을 즐기며 운동하고 싶다는 안산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9월에 열리는 세계 양궁선수권대회를 잘 마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도마 요정
여자 체조 여서정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도마에서 동메달을 딴 여서정(19세·수원시청) 선수는 우리나라 여자 기계체조 사상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다. 아버지 여홍철 경희대 교수에 이어 올림픽 메달을 거머쥔 도마 요정 여서정은 지난 8월 1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도마 결선에서 1·2차 시기 평균 14.733점을 획득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도마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아버지와 함께 ‘부녀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등극한 것이다.
“기술 성공을 목표로 올림픽에 출전했는데, 메달까지 따게 돼서 정말 기뻐요. 열심히 준비한 거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같아 좋았어요. 많은 분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메달을 딴 것 같아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걸 발판으로 삼아 더욱더 열심히 하고 성장하는 여서정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4초’라는 짧은 시간에 승패가 판가름 나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긴장감 넘치는 스포츠 종목이 바로 도마다. 여서정은 1차 시기에 ‘여서정 기술’이라고 이름 붙은 고난도 기술을 완벽에 가깝게 보여줬다. ‘여서정 기술’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연습해 2년이 걸려 완성된 기술이다. 2차 시기에서는 1차보다 조금 낮은 수준의,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기술을 선보였다. 1차보다는 조금 아쉬운 결과였다.
“아빠가 정말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농담식으로 2차 시기는 아빠와 거의 똑같이 됐다고 하셨어요.”
여홍철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착지 때 하체가 무너지는 바람에 아쉽게 금메달을 놓친 전적이 있다. ‘여홍철의 딸’에서 ‘서정이 아빠’로 부녀의 호칭이 뒤바뀌며, 아빠의 뒤를 이어 도마의 신이 된 여서정은 오는 10월 세계기계체조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그 대회에서도 여서정의 밝은 미소를 보고 싶다.
올림픽 라이징 스타
‘긍정의 사나이’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5cm를 넘어 한국 신기록을 세운 우상혁(25세·국군체육부대) 선수는 남다른 에너지와 실력으로 4위를 기록했다. 경기 전 박수를 유도하며 활짝 웃는 밝은 모습과 2m39cm에 실패한 뒤 “괜찮아!”라고 크게 외친 후 카메라를 향해 거수경례하던 자신감에 찬 모습은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긍정의 에너지를 심어주었다.
‘졌잘싸’ 남자 스프링보드 우하람
우하람(23세·국민체육진흥공단) 선수는 도쿄 올림픽 남자 3m 스프링보드 4위에 오르며 한국 다이빙 역사상 올림픽 최고 성적을 기록해 한국 다이빙의 희망을 보여줬다. 우하람은 “다음번에는 한 단계 더 올라갔으면 좋겠다.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이번에 메달을 딴 선수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다이빙 사상 첫 메달을 목에 걸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값진 동메달’ 근대5종 전웅태
전웅태(26세·광주광역시청) 선수는 한국 근대5종 역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했다. 근대5종은 펜싱, 수영, 승마에 육상과 사격을 합한 레이저 런을 한 명의 선수가 모두 치르고 합산 점수로 순위를 매기는 종목이다. 그는 “나에게는 금메달보다 값진 동메달이다.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울컥했다”며 “앞으로 ‘은’과 ‘금’이 남았다. 다음 기회에 내가 더 높은 위치에 서서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