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돌보기
감정을 숨긴 채 살아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힘든 내색을 하고 싶지만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는 생각에 선뜻 아픔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반대로 나만 불행한 것 같다는 생각에 외출하기 전 가면을 쓰고 밖으로 나서는 이들도 있다. 어느 쪽이든 힘듦을 말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마음의 병을 앓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행복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는 데에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분위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6월 발표한 '우울감 확산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38.6%는 우울증 혹은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 주변 사람 10명 중 4명은 우울한 기분으로 일상을 보낸다는 의미다.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다. 흔히 심리 질환을 두고 '마음의 감기'라고 말한다. 그만큼 걸리기 쉬운 병이라는 것인데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감기처럼 가볍게 넘길 질환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점점 곪아가는 게 마음의 병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못 견디는 사람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활발하다가 집에 혼자 있을 땐 기분이 급격히 다운된다면 우울증이나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닌지를 의심해봐야 한다. 이 증상은 주로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서 발현된다. 가만히 노래를 듣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면 마음이 보내는 불안정한 시그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해결 TIP 나의 일대기를 정리하며 소박한 자서전을 만들어보자. 내가 살아온 길을 천천히 돌아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왜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파악하는 데 효과적이다.
알 수 없는 공허함
직장인이 흔히 겪는다는 매너리즘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으로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목적 없는 목표를 설정했을 때 일어나는 증상이다. 일에서 얻은 성과는 '목표', 성과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일은 '목적'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목적을 품고 일을 시작하지만 목표를 이루는 데 급급해 목적을 상실한다. 이럴 경우 정작 목표를 이뤄냈는데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해결 TIP 입사 초기에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서 초심을 일깨워보는 게 좋다. 잃어버렸던 목적을 찾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SNS 속 세상에 대한 집착
SNS 유저라면 누구나 인스타그램, 틱톡 등에서 주목받는 인플루언서들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매일 분위기 좋은 카페나 근사한 음식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 비해 내 삶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는 기분을 떨치기가 힘들다. 이런 기분이 지속되면 SNS를 잠시 중단하거나 현생의 사람들과 만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게 좋다.
해결 TIP 지인들을 만나 자신의 가치를 점검해보자. 또 자신의 취미를 찾아 내면을 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타인을 과하게 의식하는 나
가끔씩 세상이 아는 내 모습과 나만 아는 내 모습 사이에서 흔들릴 때가 있다.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에 스스로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것이다. 인간의 자아는 공적 자아, 사적 자아로 나뉜다. 공적 자아는 타인에게 인식되는 내 모습, 사적 자아는 스스로 알고 있는 내 모습이다. 자기통제가 강한 사람이라도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해결 TIP 누구나 이중적인 성향이 있다. 보통 자신의 진짜 모습에 불만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자신의 본모습을 비난하지 말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에서의 나와 다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나가는 게 좋다.
퇴근 후에도 불편한 마음
시간을 쪼개어 쓰면서 자신에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 일종의 강박 증세 '슈드비 콤플렉스'. 겉으로 보기엔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맨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어 하루하루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지내야 한다. 슈드비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은 증상이 악화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인 '번아웃'을 겪게 된다.
해결 TIP 쉬면 안 된다는 강박을 새로운 취미로 채우면서 삶의 활력을 찾아보자.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취미는 제외하고 마음을 정리하고 안정된 취미를 찾아가는 게 포인트.
주부들의 육아 우울증
전업맘, 워킹맘 등 모든 주부의 우울증은 주로 아이를 꼭 잘 키워야만 한다는 당위적 사고가 원인이 된다. 주부로서 집안일, 육아, 내조 등 사회가 규정한 100점짜리 엄마에 초점을 맞춰 무리를 거듭하다가 얻는 질병인 것. 100점이 아니면 무의미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쉽게 실패감에 사로잡히고 이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이다. 우선 100점을 맞지 못했다고 해서 90점과 30점이 똑같다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 또 자신이 '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깨닫는 게 중요하다.
해결 TIP 언어 습관을 바꾸는 연습이 필요하다. "~해야 한다"를 "~하고 싶다"로 고쳐 쓰는 것. 당위적 사고에서 벗어나 희망적 사고를 중요하게 만들어야 우울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폭식과 다이어트의 악순환
평생 숙제라고 불리는 '다이어트'. 몸매를 가꾸는 과정에서 잘못된 다이어트의 길로 빠져 식이장애를 겪는 이가 한둘 아니다. 식이장애의 대표 유형에는 폭식증과 거식증이 있다. 두 증상 모두 원하는 몸매를 얻기 위한 강박에서 비롯되는 질환이다. 식이장애가 장기간 이어지면 감정의 흔들림, 우울증, 기분장애를 동반해 정신 건강을 해롭게 한다. 폭식증이 이어지면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해결 TIP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체중 감량을 이어가고 있다면 생각의 다이어트로 전환해야 한다. 혼자만의 힘으로 어렵다면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장녀라는 이름의 무게
집안의 첫째라는 이유로 여러 역할을 부여받는 장녀. 맏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따지면 장남과 비슷해 보이지만, 남아 선호 사상의 잔재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 맏딸은 희생을 강요받는다. 이른바 'K-장녀(대한민국 장녀)'들은 가정에서 제2의 엄마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 때문에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가족의 일이라면 무조건 나서야 한다는 사고를 어릴 때부터 학습한다. 이로 인해 결국 폭발하고 공황장애를 겪는데 자신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끊임없이 효용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마련. 이 글을 읽는 본인이 장녀이고 앞서 설명된 문장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해결 TIP 가족 간의 거리두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우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가치를 점검해야 한다. 내가 해온 일들이 나의 만족을 위해서인지, 가족을 위해서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한 뒤 스스로 편안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게 좋다.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
□ 온종일 우울한 기분이 든다.
□ 일상생활에서 대부분의 활동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 살이 빠지거나(혹은 반대로 살이 찌거나), 지속적 식욕 감소(또는 증가)가 있다.
□ 불면증이 있거나 너무 많이 잔다.
□ 초조하거나 불안하다.
□ 몸이 피로하고 활력이 없다.
□ 무가치감 또는 과도한 죄책감을 느낀다.
□ 집중력이 떨어지고 우유부단해진다.
□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거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위 9개 항목 중 5가지 이상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료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