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성인이 됐을 무렵 기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2006)다.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우는 어린이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모르는 부모의 모습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그 혼돈의 상황에서 어둠 속에 비친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오은영 박사다.
목이 쉬어라 우는 어린이를 끝끝내 진정시키고 변화시키는 그녀는 마치 구세주처럼 보였다. 당시엔 신기하기만 했는데, 10여 년이 지나 부모가 되고 나니 프로그램에 출연한 부모들이 얼마나 간절한 마음이었는지, 또 그들에게 오은영 박사가 어떤 존재였는지 이해하게 됐다.
최근 오은영 박사는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김영사)를 출간해 문제의 원인을 부모나 아이에게서 찾는 것이 아닌 부모와 자녀의 소통 방식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은영 박사는 아이와 ‘찐’ 소통을 하는 것이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시작이라고 말한다.
부모와 자녀의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나요? 말솜씨를 배우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말에는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어요.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라는 말은 ‘어떻게 존중해야 할까?’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거죠. 결국 자녀와 좋은 관계를 쌓으려면 사람을 존중하면서 대하는 법을 알아야 해요. 많은 부모가 자녀와 관련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마지막에 적용해야 할 방식을 먼저 배우려고 해요. 자녀를 사랑하고 잘 키우고 싶으니까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저지르는 실수죠. 그런데 항상 기본에 충실해야 해요. 육아는 아이를 편안하고 건강하게 키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하죠.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는 것도 옛말이죠. 맞아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자식을 잘 키우는 기준은 사회 변화와 맞물려 변화해요. 옛날엔 자식에게 삼시 세끼만 잘 먹여도, 또는 학교에만 보내도 잘 키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이젠 잘 키운다는 것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어요.
그래서일까요? 양육을 공부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습니다. 부모라는 이름을 갖는 것은 쉽지만 양육은 어려워요. 자녀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선 양육하는 법을 공부해야 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이 일방적인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행동이지만 아이가 불편해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죠. 부모와 자녀는 타인이라는 인식이 명확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가 많아요. 아무리 내 자식일지라도 나와 100% 같을 수 없어요. 사람은 천성(nature)과 양육(nurture)의 결합이라, 타고난 기질이 있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는 경험과 지도를 통해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문제를 일으킬 때 스스로를 탓해요. 때로는 지나치게 후회하고 죄책감에 허우적거리죠. 그런데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가 나아갈 방향을 아는 거예요. 반성하고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내가 아이에게 끼친 영향이 있을까?’라는 지점부터 고민해봐야 합니다.
아이에게 끼친 영향력을 파악하기 위한 스텝도 궁금합니다. 기질과 성격을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기질은 태어나는 순간 결정된 생물학적인 특성이에요. 생존하기 위해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는데 그 자극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게 기질이죠. 새로운 자극을 규칙적 또는 불규칙적, 쉽게 또는 어렵게 , 빠르게 혹은 느리게 받아들이는 태도 등으로 판단할 수 있어요. 반면 성격은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과 오랫동안 쌓은 경험, 내면에 자리 잡은 마음,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 갈등이 일어났을 때 해결하는 방식 등이 결합해서 형성돼요. 그래서 만 18세 이상이 돼야 성격을 알 수 있어요.
사랑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어요. 그 형태가 어떤 모양이든 간에 부모의 사랑은 대단합니다. 그러니까 인내하고 헌신하며 완벽한 사랑을 줘야만 부모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세요.
기질 파악이 육아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겠네요. 기질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어요. 순한 기질(easy temperament)의 아이는 자극이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까다로운 기질(difficult temperament)의 아이는 호불호가 강하고 변화를 수용하는 걸 어려워해요. 그래서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는 편이에요. 더딘 기질(slow to warm up)의 아이는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해요. 대기만성형 스타일이죠. 만약 까다로운 기질의 엄마가 더딘 기질의 아이를 육아할 경우 아이가 답답하고 느리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아이에게 새로운 음식을 줬을 때 주저하면, 엄마는 “왜 빨리 안 먹어? 안 먹으면 다 치워버린다”라고 말하죠. 엄마가 아이의 기질을 고려하지 않고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아이는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엄마는 좋은 마음으로한 행동이지만 아이 입장에선 좋지 않았을 거예요. 육아는 아이가 편안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 기본입니다.
아이의 기질에 맞는 육아를 하고 있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요? 아이 스스로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느껴요. 그런 아이는 양육자와 함께 있을 때 편안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와 떨어져 있어도 편안한 기분을 유지해요. 그런데 아이에게 적합하지 않은 방법으로 양육한 경우 아이는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느끼지 못해 불안함을 크게 느끼거나, 심지어 부모와 함께 있는 상황이 고통스럽기까지 하죠. 그래서 부모가 아이는 나와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해요.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자식이에요. 아이는 계속 문제를 일으켜요. 몰라서, 잘못해서, 틀려서, 실수해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끊임없이 알려주고 가르쳐야 해요. 다만 말로 잘 가르쳐야 합니다.
간혹 아이의 행동을 고친다고 겁을 주며 무섭게 훈육하는 부모들도 있죠. 엄격한 것과 무서운 것의 개념 정립이 필요해요. 아이의 문제 행동을 고치겠다고 무섭게 대하는 것은 부모의 의도가 좋을지라도 아이에게 해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생각하는 의자’를 잘못 사용해 아이를 방치하는 경우도 있어요. 아이를 앉힌 뒤 부모는 옆에서 기다려줘야 해요.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체벌은 안 됩니다. ‘사랑의 매’? 그런 거 없어요. 많은 연구 결과가 체벌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어요. 오죽하면 민법에서 ‘더 이상 체벌하지 마세요’라고 법으로 만들었겠어요.
아이에게 무섭게 훈육하고 ‘내가 왜 그랬지?’라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도 많습니다. 만약 말로 타이르지 못할 정도로 감정 컨트롤이 안 된다면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지세요. 그럼에도 아이를 대하는 게 버거울 땐 주변에 도움을 청하세요. 무조건 참으면서 한계에 도전하면 안 돼요. 육아는 장기전이에요. 오랫동안 꾸준하고 일관되게 아이를 키우려면 현실을 기반으로 한 육아를 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사랑, 완벽한 모성애를 보여주는 육아는 오래 할 수 없어요. 완벽한 모성을 기준으로 삼으면 도에 넘는 행동을 해요. 나중에 아이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내가 너 때문에 못살겠다”라는 말을 하며 화내거나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기도 하죠. 우리는 모두 인간이니까 찰나의 순간에 아이가 버겁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그런 마음이 들 땐 ‘아, 내가 지금 힘들구나’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야 해요.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깨달으면 조금 편안한 육아를 할 수 있어요.
어떤 엄마는 스스로 모성애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사랑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어요. 연애할 때 뜨겁게 불타는 사랑만 완벽한 것일까요? 편안한 관계, 믿고 신뢰하는 관계 역시 사랑의 한 모습이에요.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자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랑도 있지만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도 깊은 사랑이에요.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을 규정하려 한다거나 완벽한 사랑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면 해요. 그보다 내가 주는 사랑이 아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없는지를 고민하는 게 더 현실적인 것 같아요.
워킹맘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빠지기 쉬워요.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은 많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죠. 하나의 상황을 가정해보죠. 오늘 엄마가 회의가 길어져 목이 아프고 몹시 피곤한 상태예요. 그런데 아이는 자기 전에 엄마와 동화책을 읽는 시간을 좋아해요. 엄마의 컨디션을 모르는 아이는 피곤하다는 엄마에게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조르면서 “엄마는 내가 해달라는 거 해주지도 않아”라며 토라져요. 그럼 엄마는 ‘내가 힘든 걸 조금만 참으면 아이가 행복해질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두 권만 읽어줄게”라고 말해요. 그런데 아이는 더 읽어달라고 조르죠. 그때 ‘약속’이라는 개념이 등장해요. “두 권만 읽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엄마가 이렇게 노력했는데 왜 엄마를 힘들게 하니?”라고 다그치기 시작하죠. 이런 육아는 바람직하지 않아요. 차라리 아이에게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게 낫죠.
어떤 방식으로 설명해야 할까요? “엄마도 동화책을 함께 읽는 게 좋은데 오늘은 목이 많이 아파. 그래서 쉬어야 할 것 같아. 내일 많이 읽어줄게”라고 말하는 거예요. 물론 아이는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징징거리겠지만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시간을 줘야 해요. 아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단 걸 배워야 해요. 이런 게 현실을 딛고 하는 육아예요.
대부분의 부모는 육아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요. 육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녀의 독립이에요. 부모는 아이가 몸과 마음이 모두 부모에게서 자립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다하도록 도와야 해요.
그런데 아이가 실패할까 봐 걱정돼 ‘헬리콥터맘’을 자처하는 부모도 많습니다. 아이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돼요. 그 나이에 필요한 실수를 겪어야 하고 그걸 해결하는 과정을 거쳐야 독립할 수 있어요. 주의할 점은 아이에게 냉정하게 대하는 것이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는 게 아니라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대학교 등록금까진 걱정하지 않게 도와줄게. 그다음의 삶은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과 “우린 모른다. 대학 이후에는 알아서 살라”는 말은 같은 의미일지라도 다르게 느껴져요. 같은 말이라도 진심을 전하는 게 중요해요.
좋은 부모가 되려면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까요? 메르메인이라는 애착학자가 1984년 버클리 대학에서 진행한 유명한 연구가 있어요. 성인을 대상으로 애착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한 개인이 부모와 어떤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며 성장을 했느냐가 미래에 낳을 자녀와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내가 부모가 되면 아이를 어떻게 다룰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만약 내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었다면 아이를 갖기 전에 충분히 성찰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 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게 좋아요.
부부 사이의 갈등이 아이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하겠군요.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언성이 높아지거나 분위기가 나빠지면 위험한 상황이라 생각하고 불안함을 느껴요. 특히 청각이 예민할수록 불안도가 높아지죠. 아이에게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공간이 돼야 하는 집에서 부모의 고성이 오가는 것은 정말 피해야 합니다. 살다 보면 부부끼리 다툴 수 있지만 아이가 모르게 싸워야 해요.
양육 가치관의 차이로 대립하는 부모도 많습니다. 양육관은 경제·종교·정치관처럼 웬만해선 바뀌지 않아요. 만약 부부가 양육관을 두고 갈등이 심하다면 전문가에게 중재를 요청하세요. 만약 조부모가 양육을 한다면 부모와 함께 다 같이 모여 대화하고 양육의 기준을 정해야 해요. 12개월부터 36개월까지 영아에겐 양육자의 영향력이 막대하기 때문이죠. 단, 주 양육자는 엄마와 아빠라는 것엔 변함이 없어야 해요.
엄격한 엄마, 친구 같은 아빠처럼 부모가 정반대의 양육 태도를 가지는 것은 어떻게 보시나요? 아이에게 혼란을 줄 가능성이 커요.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란 말이 있죠? 아이가 부모의 태도를 그대로 배운다는 의미예요. 그런데 부모가 어떤 상황을 직면했을 때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면 아이는 하나의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요. 한 사례가 있어요. 엄격한 아빠와 친구 같은 엄마 사이에서 자란 초등학생이었는데 엄마에게만 화를 낸다는 거예요. 엄마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직장 생활을 했고, 아빠가 무섭기 때문에 아이의 투정을 다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화를 낼 때 행동이 점점 과해져서 엄마는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죠.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보라고 조언했어요. “너도 엄마를 때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 그러니까 굳이 그 부분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게. 엄마는 네가 어딘가 불편해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해. 그렇게 행동할 때 어떤 마음이었니? 그 마음을 엄마한테 말해줘. 혹시 화가 나고 짜증 나는 걸 엄마 말고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게 어렵니?”
화를 표출하는 방식에 대해 묻는 이유가 있나요? 아이는 주 양육자인 아빠가 엄격하니까 무서워서 화가 나는 감정을 억눌렀을 가능성이 커요. 아이가 아빠의 제지에 어떤 행동을 멈췄다면 그건 부모를 존경한다거나 부모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에요. 단지 아빠가 무서우니까 멈춘 거예요.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을 억누르다가 상대적으로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엄마에게 폭발시키는 거죠. 아이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어요. 이유를 찾지 않고 행동과 행위를 금지하는 데 급급하면 안 돼요. 아이가 왜 그러는지 파악하고 아이가 느낀 감정에 공감한 후 잘못된 행동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알려줘야 하죠. 만약 아이가 화를 내거나 울음을 터뜨린다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주면 돼요.
대화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의미군요.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를 어려워하는 부모도 많습니다. 대다수 부모님은 자녀와 대화가 되지 않을 때 아이가 사춘기라서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하고 그걸 꺾으려고 해요. 우선 고집의 정의를 정확히 알아야해요. 고집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과 방식입니다. 아이는 이전에 해왔던 방식을 고수할 때 편안함을 느껴서 생각을 바꾸고 싶지 않은 거예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충고를 모두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고 공격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언제나 무언가를 물으면 “싫어요” “아니요” 같은 부정의 대답이 먼저 나와요. 자기에게 들어오는 자극에 대해 저항하는 거죠. 이런 상황에 놓인 부모는 아이를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오히려 아이는 상처받을까 봐 불안함을 느끼는 예민한 상태일 가능성이 커요.
그럼 부모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요? 우선 아이가 고집을 부릴 때 지고 이기는 문제나 잘잘못을 가려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야 해요. 아이가 예민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따를 때 마음이 편안한 타입이라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또 갈등을 겪는 양육자 외의 인물이 어설프게 두 사람 사이의 잘잘못을 판단하면 안 돼요. 아이는 스스로 이 상황을 해결하면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배우거든요. 다만 부모가 아이의 성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져야 해요.
무조건적인 헌신을 하는 육아는 오래 할 수 없어요. 아이와의 관계가 힘들 땐 그 감정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해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깨달으면 안정된 육아를 할 수 있어요.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닐 때,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은 어떻게 가르칠 수 있나요? 도덕 발달의 개념을 알아야 해요. 도덕 발달은 주어진 상황을 도덕적으로 판단했을 때 무엇이 우선인지 판단하는 기준이에요.
도덕 발달과 훈육이 같은 건가요? 아니요. 훈육은 세상의 옳고 그름, 즉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과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을 가르치는 거죠. 훈육은 인간의 자기 조절의 기초이기 때문에 제대로 이뤄줘야 해요.
언제부터 훈육을 시작해야 하나요? 36개월부터요. 훈육의 가르칠 훈(訓) 자는 말씀 언(言)에 내천(川)이 결합된 한자예요. 즉 말귀를 알아들어야 가능한 거죠. 24개월 미만의 영아라면 대다수 생존에 관련된 것에 대한 요구만 하기 때문에 위험하거나 해로운 게 아니라면 대부분 들어줘도 돼요. 또 36개월이 지나면 아이는 부모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훈육은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투와 목소리, 표정이 변해도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아이가 불안함을 느끼지 않아요.
부모와 아이 사이에 두터운 신뢰가 쌓여야 하는군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직장을 다니는 부모가 36개월까지 아이를 직접 양육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제도적 뒷받침이 따라야 해요.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은 대체로 훌륭한데 육아 부분에서 아쉬운 게 있어요. 자식을 키우는 것이 오롯이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도와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회나 국가가 도와야 해요. 가장 큰 문제의 연령대는 영유아예요. 초등학생 정도만 돼도 학원을 다니는 등 부모 없이 홀로 생활하는 게 가능한데, 영유아는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에요.
어떤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직장 어린이집이 필요해요. 현재 관련 제도가 있지만 회사 입장에선 어린이집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보다 벌금을 내는 게 비용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에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직장 어린이집 설치 의무화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와 이를 어길 시 가해지는 제재를 강화해야 해요. 다만 갑작스럽게 직장 어린이집이 증가할 경우 보육교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서 질이 보장되지 않은 보육교사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양과 질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보육교사 양성 제도가 함께 마련돼야 해요. 그 외엔 유럽의 복지국가들처럼 아빠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아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어린이집 학대 관련 이슈가 들려옵니다. 어린이집을 고를 땐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요? 우선 대다수의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아이를 귀하게 여긴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도 몇 가지 팁을 드리자면 보육시설의 원장님과 선생님을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간접적으로라도 알아봐야 해요. 또 시설이나 커리큘럼을 살펴보는 것보다는 이미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도움이 되죠.
육아가 쉬운 여정이 아닙니다. 모든 엄마에게 응원의 말을 해주세요. 많은 엄마가 제 말을 믿고 따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막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한 말을 지키려고 더 열심히 육아를 했죠. 저도 엄마라서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제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에요. 육아는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아요. 내 한계를 뛰어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에게 오늘도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