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이면 늘 주안이에게 하는 질문이 있다. "어린이날에 갖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게 있어?" 주안이는 늘 사랑스럽고 귀엽게 대답했다. "레고가 갖고 싶어"라든가 주안이가 하는 게임인 마인크래프트에 나오는 칼을 갖고 싶다거나 베이블레이드 팽이를 갖고 싶다는 답이었다.
올해 역시 같은 질문을 했다. "주안아, 어린이날에 하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게 있어?" 주안이의 대답은 예상하지도 못했던 내용이었다. "응. 친구들이랑 줌(인터넷 화상 전화·회의)을 하면서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같이하고 싶어! 그렇게 해도 괜찮아?"
주안이 또래는 즐기는 게임이나 좋아하는 것이 비슷해서 이맘때 선물을 주문하려면 항상 품절이거나 배송이 오래 걸려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전혀 준비하지 못했던 선물을 원한다는 답변을 들은 것이다.
살짝 당황했지만 침착하고 솔직하게 "응? 아빠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선물인데 주안이가 어린이날에 친구들과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구나. 그런데 너무 오래 화면을 보면 눈도 나빠질 수 있고, 바른 자세로 앉아 있기도 힘들어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라고 했더니 "모니터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놓고 친구랑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영화도 볼 거야"라며 굳게 다짐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이 벌써 어버이날 선물까지 한 번에 주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고대하던 어린이날이 왔다. 주안이와 친구들은 처음으로 온라인에서 랜선 모임을 열었다. 사이좋게 대화를 하고 게임도 하고 영상도 봤다. 어린이날을 손주안 어린이가 하고 싶었던 일로 가득 채우며 보냈다. 그러더니 오늘은 밤을 새울 거라면서 친구와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며 아빠의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했다.
잠시 후, 주안이의 방에 들어가보니 주안이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켜놓고 영화를 플레이한 채로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하루 동안 자신의 에너지를 전부 소진하고 잠이 푹 든 모습이었다. 영화에서 보면 아이들이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잠에 취해서도 행복한 표정을 짓곤 하는데, 현실은 영화와 조금 달랐다. 완전히 곯아떨어져 자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 놀았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기다리던 어버이날이 왔다. 아침에 주안이 방에 들어갔더니 주안이가 "잠시만 기다려"라고 말하곤 책상에서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그리고 웃으며 편지를 쓱 내밀었다. 편지 속엔 주안이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와 게임, 자전거 타는 모습, 캠핑을 가서 해 먹었던 요리, 캠프파이어 등이 그려져 있었다. 편지 내용도 훌륭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행복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쁘고 좋았다. 그러더니 "오늘 아침은 엄마와 아빠가 먹고 싶은 것을 먹자"고 특별히 선심 쓰듯 메뉴를 정하라면서 식탁 앞에 앉았다.
엄마와 아빠가 늘 아들이 먹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 등 작은 것에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행복하게 어버이날을 마무리했다. 행복과 사랑은 누군가가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만드는 것 같다. 부모가 된 후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