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니까 실수하지. 마음껏 실수하고 후회하면서 살아.” 다소 직설적이지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말로 대중을 위로하는 배우 김수미. 하루하루 바쁜 일상에 치여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 같은 말 한마디는 큰 힘이 된다.
김수미는 <수미네 반찬> <밥은 먹고 다니냐?>에 이어 <수미산장>을 통해 스타들의 고민 상담을 도맡고 있다. SKY 예능 <수미산장>은 김수미가 운영하는 산장에 게스트가 놀러와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는 예능 프로그램. 방송의 묘미는 김수미 앞에 앉은 스타들이 마음을 점차 열고 진솔한 대화를 이어간다는 데 있다. 진심을 다해 게스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김수미표 토크쇼’의 힘이다.
“방송이라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이야기에 몰입하게 돼요. 어렵게 말문을 열었을 텐데 당연히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어줘야죠. 듣는 사람의 예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그램이라 어깨가 무거운 것도 있어요. 나를 믿고 모인 스태프, 출연해준 게스트들을 위해서라도 잘 해야죠.”
때때로 직설적인 화법으로 해답을 내놓지만, 이 또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듣기 좋은 달콤한 말보다 따끔해도 고민을 풀 수 있는 해답이 필요하다는 게 김수미의 철학이다. 또 방송임을 의식하지 않은 솔직한 발언은 듣는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코미디언 김현숙이 이혼 절차를 밟고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한 게 <수미산장>이에요.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 있는데 출연을 결심해준 것만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이혼이 무슨 흠인가 싶은데,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회가 어떻게 이혼을 바라보든 ‘용기 있는 선택이다. 나는 용기가 없어 참고 살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그냥 질러버렸어요. 내가 한 남자랑 50년 넘게 살았는데, 그동안 고비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그래서 솔직한 제 마음을 전한 거예요. 그리고 이별을 축하하자고 했죠.(웃음) 그랬더니 마음이 놓였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더라고요.”
“내 위로로 힘듦을 덜 수 있다면…”
그의 이름을 내건 토크 예능이 한결같이 사랑받는 이유는 ‘진정성’에 있다. 배우 이상아가 세 번의 이혼을 겪고 김수미 앞에서 자책할 때 “이혼? 5번, 10번도 해도 돼. 네 잘못 아니야. 네가 법을 어겼니?”라고 말하는 대담함, 일면식 없는 김현숙의 친정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한 뒤 손주 용돈을 보내주겠다며 100만원을 입금하는 등 따뜻하고, 진심어린 일화가 김수미를 따라다닌다.
“영화나 드라마는 대본 외우고 캐릭터에 맞게 연기를 하면 되는데 토크쇼는 달라요. 내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 있어요. 저는 드러내야 한다면 드러내자는 마인드예요. 또 살아온 세월, 경험이 있다 보니 똑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제가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감정으로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시골 마을에 누이 하나 죽으면 작은 도서관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영국 속담이 딱 맞아요. 살아온 세월, 그 안에서의 경험을 무시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지금까지 힘들게 지내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봐왔겠어요. 힘들다고 찾아오는 후배, 동료들을 보면 아들이나 딸 같고 저 자신 같아요. 힘든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루빨리 괜찮아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요.”
김수미표 예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토크의 분위기를 한껏 무르익게 하는 ‘따뜻한 밥상’이다. 한때 사업을 했을 만큼 요리 솜씨로 정평이 나 있는 그다. 김수미는 평소 집에 손님을 초대해 직접 차린 밥상을 대접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사람들이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단다.
“나이가 들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떨어지는데, 반찬거리만 보면 어디에서 힘이 솟아나는 건지 쉬지 않고 요리를 하게 돼요. 그리고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를 닮아서 손이 커요. 기왕 만드는 음식, 많이 해서 나눠 먹으면 더 좋은 거 아니겠어요?(웃음) 나랑 같이 일하는 매니저나 회사 식구들은 꼭 우리 집에서 밥을 먹어요. 한 상 차린 거 맛있게 먹고 기운 내는 걸 지켜보는 것만큼 보람찬 일이 없지요.”
지금 집으로 손님을 초대한다면 김수미는 어떤 음식을 내주고 싶을까? 이 질문에는 “4~5월은 꽃게 철이에요. 꽃게가 정말 좋을 때죠. 단호박을 넣은 꽃게탕을 진하게 끓여주고 싶네요. 그리고 열무김치. 제가 열무김치를 맛있게 하거든요. 고향이 군산이라 갈치, 꽁치 같은 생선을 많이 먹으면서 자랐어요. 5월에 나는 제철 해물로 한 상 푸짐하게 차려보면 좋겠네요. 또 아귀찜도 자신 있는 요리예요. 너무 많죠? (웃음)”
그래도 잘 살아봅시다
어느 때보다 모든 이에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 코로나19로 경기 침체, 활동 제한 등 갖가지 어려움이 겹치면서 우울함을 느끼는 ‘코로나 블루’가 우리 일상에 들이닥쳤다. 특히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전업맘은 물론 워킹맘 등 많은 주부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
“나도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여자도, 아내도 아니고 그냥 아이만 보다가 세월이 훌쩍 지났다는 느낌에 우울했거든요.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얼굴이 많이 상했더라고요. 그럼에도 우울감에 몰두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내 일’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무언가가 필요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몸도 마음도 건강해요. 사정상 어려움이 있다면 작은 취미라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한 번씩 다 내려놓고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도 떠나세요. 하루이틀 손 놓는다고 달라질 거 없어요. 두려움을 떨치세요.”
김수미는 <수미산장>을 시작하면서 청년에게 위로가 되는 방송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어른으로서 청년 세대가 겪는 취업난과 경제적 궁핍에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그다.
“어른들의 잘못이 커요. 모두가 힘들지만 특히 젊은 사람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진 세상이잖아요. 부모들의 교육 방식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아이가 반드시 좋은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깊이 고민해봐야 해요. 시켜서 겨우 하는 거랑 하고 싶은 걸 즐겁게 하는 건 결과적으로 달라요. 대학교도 필수 코스로 여기지 말고 아이의 진로에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했을 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아이가 목공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면, 학원에 보내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우리 청년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당장 일이 안 풀린다고 자책하고, 좌절에 빠지면 본인만 힘들어요.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세요.”
비혼을 택하는 싱글 여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돌아온 대답도 김수미답다.
“생각 없으면 안 만나는 게 맞지!(웃음) 죽고 못 살 정도로 사랑해도 이혼하는 마당에 마음에 없는 결혼을 왜 해요. 과거에나 결혼 못 하면 초조했던 거지, 지금은 본인이 살 만하고 원하지 않으면 결혼을 꼭 해야 하나 싶어요. 50~60대가 돼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도 늦지 않아요.”
어느덧 70대에 들어선 김수미. 여전히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는 그지만, 예전 같지 않은 체력에 내려놓아야 할 때를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때때로 우울함이 느껴져도 세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자 노력한다.
“내 나이에는 손에 무언가를 더 쥐어야겠다는 욕심보다 내려놓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돼요. 이때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부정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큰 거 바라지 말고 주변에서 크고 작은 행복을 발견하면서 사는 거죠. 남들이 보면 70대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싶을 거예요. 희망 좀 없으면 어때요?(웃음) 나의 늙음을 사랑하고, 세상이 변하는 걸 충분히 느끼면서 살면 되죠.”
김수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고부 관계’다. 며느리인 배우 서효림과 특별한 고부 관계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효림은 지난 2019년 배우 김수미 아들 정명호 나팔꽃 F&B 대표와 결혼해 슬하에 1녀를 두고 있다. 서효림은 김수미의 아들인 정 대표와 연인으로 발전하기 전부터 김수미에게 ‘엄마’라고 칭할 정도로 친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 후에도 이전과 같은 사이를 유지하는 데에는 시어머니 김수미만의 비결이 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내내 큰 사랑을 받았어요. 항상 제 편을 들어주셨죠. 우리 시어머니를 보면서 ‘내가 며느리를 보게 되면 시어머니한테 받은 사랑을 그대로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리사랑의 중요함을 깨닫게 해주신 분이에요. 딸 같은 며느리는 세상에 없어요. 그렇기에 많은 부분을 바라지 않아야 해요. 나는 잘해주는데 며느리는 왜 나한테 잘 못 할까 싶은 마음도 내려놔야 갈등 없이 지낼 수 있어요.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고 주는 사랑은 언제든 다치게 돼 있어요. 그러니 주고 싶은 만큼 사랑을 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좋아요. 저 같은 경우에도 아들 내외가 집에 오라고 말해야 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간섭하지 않으려 하고요.”
김수미는 고부 관계에 있어 ‘조심스러움’을 늘 마음에 새긴다. 한 명의 귀한 손님을 집에 초대하는 것과 같다는 걸 잊지 않는다.
“며느리가 손녀를 데리고 자주 집에 오는데, 그때마다 주방에 못 들어오게 해요. 주변 친구들은 ‘설거지라도 시키라’고 하는데, 나도 불편하고 며느리도 불편하잖아요. 남들 다 하는 것처럼 며느리를 대하려고 하지 않아요. 시어머니로 사는 게 참 쉽지 않아요. 우리 며느리도 그렇겠죠?(웃음)”
요즘 마음이 답답할 때가 많아요. 젊었을 때는 남의 말을 잘 흘려들었는데, 이제는 작은 것에도 상처를 받죠. 그럴 때마다 김혜자 언니를 찾게 돼요. 별말을 하지 않아도 힘들다는 걸 알아채고 좋은 글귀를 보내주세요. 내가 유일하게 투정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에요.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다
많은 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김수미에게도 고민은 있다. 그는 요즘 들어 섭섭함을 자주 느끼는 자신을 보면서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하고, 세월 앞에 놓인 것들을 잘 내려놓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이럴 때 김수미가 위로를 구하는 사람은 배우 김혜자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연락만 주고받아도 마음에 있던 무거운 덩어리가 눈 녹듯 사라진다고.
“요즘은 마음이 답답할 때가 많아요. 젊었을 때는 남의 말을 잘 흘려들었는데, 이제는 작은 것에도 상처를 받죠.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이 맞다는 걸 깨달아요. 그럴 때마다 김혜자 언니를 찾게 돼요. 별말을 하지 않아도 힘들다는 걸 알아채고 좋은 글귀를 보내주세요. 내가 유일하게 투정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에요.”
김수미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 중 하나는 책이다. 책을 좋아하는 그는 항상 침대 머리맡에 시집을 두고 여유가 날 때마다 펼쳐본다. 책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김수미를 찾는 이들에게 조언해줄 때도 큰 도움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읽는 시 한 편이 일상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요.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하죠. 지금은 류시화 시인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 떠오르네요. 다들 살면서 한 번씩 후회해본 적 있잖아요. ‘지금이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러운 거 같다는 생각을 해요. 또 정호승 시인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도 좋아해요. 우리 모두 사람이니까 외롭고 힘든 거 아닐까요? 그러니 외롭고 힘든 마음을 구태여 밀어내려고 하지 않았으면 해요.”
대화는 자연스럽게 김수미의 인생관으로 이어졌다. 방송 생활 50여 년간 누려온 꾸준한 인기, 토크쇼의 대모라는 수식어 등을 얻은 그를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김수미는 “손녀 ‘조이’. 나이 70을 넘기니 새로움, 감동을 느끼는 순간이 점점 줄더라고요. 이미 본 거나 알고 있는 것이 더 많은 나이가 된 거죠. 이렇듯 심심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우리 조이가 찾아와준 거예요. 고사리 같은 손, 맑은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며느리랑 아들이 조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주는데 작은 손으로 무언가를 잡으려고 하는 그 모습이 너무 기특해요. 무엇보다 하루하루 성장하는 조이를 보면서 생명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이름을 간판으로 건 예능, 바라던 아들의 결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까지. 더 얻을 게 없을 것 같은 김수미의 소망은 무엇일까?
“건강 지키면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며 사는 게 남은 목표예요. 이 정도면 내 소임을 다한 게 아닌가 싶네요.(웃음) 바라는 게 하나 더 있다면, 우리 가족에게 엄마 김수미, 아내 김수미에 대한 좋은 기억, 손녀에게 우리 할머니 참 좋은 사람이었다는 기억을 남겨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