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람들은 친환경적인 생활 습관이 몸에 배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과일이나 채소는 매대에 쌓아놓고, 손님이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 있도록 해두었다. 집에서 가져간 종이봉투나 천 주머니에 과일을 담아 계산대에 가져가도 직원이 무게별로 계산해주는 식이다.
물론 4개씩, 2개씩 개별 포장된 과일, 채소도 있지만, 얼마 전부터는 이러한 개별 포장 제품도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사용 없이 종이 포장으로 바뀌었다. 사실 필자는 정말 급한 경우를 제외하면 슈퍼마켓에 잘 가지 않는다. 가까운 곳에 있는 시장에 가면 플라스틱 포장이 되지 않은 질 좋은 제품들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고기나 생선 같은 식품은 조금 더 '고난도'다. 가벼운 종이봉투나 천 주머니에는 핏물이 흐르고 냄새나는 고기나 생선을 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 프랑스 사람들은 천에 밀랍을 입힌 재활용 가능한 비랩(bee wraps, 밀랍으로 만든 포장 랩)을 쓰기도 하는데, 사실 이것도 몇 번 쓰면 좀 지저분해지고 세척이 까다로워 필자는 밀폐 용기를 가져가거나, 정육점에서 쓰는 플라스틱 용기를 다시 쓰는 편이다.
집에서 가져온 용기를 건네면 상인은 용기의 무게를 잰 뒤, 음식을 담아 가격을 측정한다. 파스타와 쌀 같은 건식품, 커피와 차, 과자와 사탕, 소금이나 후추 같은 향신료 등도 제로 웨이스트 실천을 위해 무게로 파는 가게가 있다. 이곳에 빈 잼병이나 통조림병을 가져다주면 깨끗하게 씻어 손님이 쓸 수 있도록 비치해둔다.
더불어 화장지, 면 생리대, 대나무 칫솔, 가루 치약, 고체 샴푸와 비누 등을 포장지 없이 판다. 친환경 세제와 청소용품도 무게별로 구매가 가능해 거의 모든 일상 생필품을 해결할 수 있다.
물론 필자도 완벽한 제로 웨이스트 실천주의자는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대체 불가능한 것들이 있고, 아이가 주스를 엎지르거나 하면 얼결에 휴지나 물티슈를 쓰기도 하고, 간혹 편리를 추구하는 남편과 충돌하기도 한다. 아무리 고체 샴푸가 좋아도 향기로운 린스는 대체하기 어렵고, 아이 크림 같은 기능성 화장품은 아직 제로 웨이스트 코너에서는 살 수 없다. 이렇듯 하루하루가 선택과 고민과 불가피한 타협의 연속이다.
하지만 적어도 프랑스에선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시작하면서 전반적인 생활 습관이 고쳐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자전거다. 환경을 위해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겠다고 시장에 가면서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은 너무나 위선적이라는 생각에 날씨가 악조건인 경우를 빼고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더불어 필자처럼 게으르고 귀찮아하는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제로 웨이스트 실천이 가능한 프랑스 시스템에 새삼 놀랍기도 하다. 특히 각 도시 행정마다 제로 웨이스트를 주요 정책으로 내걸고, 제로 웨이스트 실천 상인을 지원하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주민 공용 퇴비 쓰레기장을 설치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 체계 덕분에 소비자는 강한 의지와 노력 없이도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다.
글쓴이 송민주
4년째 파리에 거주하는 문화 애호가로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책을 번역했으며, 다큐멘터리와 르포르타주 등을 제작하고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