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에게 듣는다
내 아이가 학교폭력에 연루됐다면?
학창 시절 겪을 수 있는 갈등이라고 여기기엔 피해의 정도가 심각한 학교폭력. '설마 내 아이는 아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폭력을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한다. '푸른나무재단'의 탁은영 청소년폭력예방 전문가에게 물었다.
Q 요즘 학교폭력만의 특징이 있나요?
사이버 폭력이 현저히 늘었습니다. 언어폭력 피해가 높은 비율을 차지해요. 주로 단체 채팅방을 개설해 피해 학생을 초대해서 욕설을 하거나 SNS상에 저격 글을 올리는 방식의 폭력이 늘고 있습니다. SNS상에서 발생하는 언어폭력 피해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저격 글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댓글창에 이를 동조하는 등, 가담자가 많기 때문에 더 큰 문제입니다. 이전에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을 통한 피해 사례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에스크 등 익명 앱을 많이 사용해요. 신고해도 익명이다 보니 제대로 적발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외에도 온라인 스토킹이나 사진 합성 등을 통한 학교폭력도 접수되고 있습니다.
Q 학교폭력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군요.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단순 폭행이나 금품 갈취는 오히려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앞에서 말한 언어폭력과 사이버 폭력이 늘었고, 또 한 가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이 성과 관련된 학교폭력이 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성뿐만 아니라 동성 간의 성폭력, 성폭행 등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Q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요?
대체로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요. 말 그대로 무력에 의한 힘도 있지만, '인기'와 같이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약한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많아요.
Q 학교폭력을 목격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피해 학생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겁니다. 또래 학생의 경우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문제 제기를 했을 때 피해를 입을 거 같아서 조력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들 선에서 해결할 수 없다면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학교폭력은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학생에게 힘을 보태준다면 그 학생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닙니다.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Q 피해자를 보호하는 효과적인 방법도 궁금합니다.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즉시 개입하는 겁니다. 실제로 피해자들이 부모나 교사에게 피해 사실을 호소해도 '아이들의 장난'이나 '가벼운 사안'으로 생각하고 넘어가는 일이 빈번해요.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어른들과 주변 사람들로 인해 절망에 빠지게 되고 더 이상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게 돼 상황이 악화되곤 합니다. 또 피해자와 가해자의 적절한 분리 조치가 필요합니다. 우리 센터에서도 피해 학생이 학교 출석 대신 일시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놓고 있습니다.
Q 피해를 입어도 털어놓거나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가 뭘까요?
보복 때문이죠. 신고했을 때 가해 학생과 껄끄러워질 수 있다는 생각, 사안이 복잡해질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인해 망설이게 되는 거죠. 가장 두려운 건 또래 친구들로부터 '고자질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겁니다.
Q 가해자에 대한 선도 교육이 미흡하다는 말도 많습니다.
2018년도 푸른나무재단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에 있는 학생들은 가해 학생에 대한 강력한 선도 조치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학교폭력 가해자로 선도 교육을 받았던 기록이 삭제되는데, 이를 지우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Q 내 아이가 가해자라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객관적으로 사안을 바라봐야 해요. 가해자 부모 대부분은 "우리 아이가 이런 적이 처음이다"라고 해요. 하지만 폭력을 저지른 현 상황에 집중해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어요.
Q 가해자 부모의 태도 때문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문제 해결이 힘든 경우가 많다고 해요.
가해 학생의 부모들은 처음에는 자기 자녀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믿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피해 학생에게 먼저 사실 여부를 따지는 행동을 많이 합니다. 먼저 자신의 자녀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확인하고 명확한 사실관계를 알아본 후 대응해야 합니다. 또 감정이 격해질 수 있으므로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가 직접적인 대면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피해 사실이 확인되고 사과할 때는 직접 만나야겠지만, 그 전에 시시비리를 가리거나 학부모끼리의 소통이 필요할 때는 교사 등 학교 측 담당자나 전문가 등 제3자와 동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Q 결국 피해 학생이 전학을 가는 등 피해자가 힘든 경우가 더 많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원래 전학은 학교폭력의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양쪽에 행해지는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잘못한 사람이 가야지 왜 피해 학생이 가느냐는 인식이 형성되다 보니 피해 학생의 전학 조치는 삭제된 상황입니다. 문제는 가해 학생의 경우도 전학 조치는 단계별 처분(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9호) 중 8호로 퇴학 직전의 굉장히 엄한 조치를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매우 심각한 정도의 폭력이 아니면 전학이 쉽지 않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가해자와 피해자의 교내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오히려 피해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또 피해 학생은 학폭 피해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2차 보복이 두려워 학교를 떠나는 경우가 많아요. 적절한 분리는 필요하지만 전학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Q 피해자를 향한 진심 어린 사과가 중요한 것 같아요.
처벌보다 중요한 게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입니다. 물론 폭력의 심각성에 따라 선도 조치와 적절한 처벌도 필요하지만 가해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피해 학생도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았을 때만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어요.
Q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희망은 도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학교폭력의 경우 초기에 개입해 상황을 파악했을 때 빨리 마무리되고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어요. 학교폭력은 보통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이어져요. 학부모든 교사든 동급생이든 주변에서 학교폭력의 조짐이 보이면 방관하지 말고 신속하게 적극적으로 개입해 도움을 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