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무소유’ 문화를 강조해왔던 혜민 스님. 그가 남산이 한눈에 보이는 서울 자택을 소유한 데 이어 시세 차익을 남겨 팔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욕심을 버려야 비로소 행복해진다’라는 주제의 강연으로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한 혜민 스님의 이번 논란은 대중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남산 뷰’ 2층짜리 자택 공개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집필해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혜민 스님(47세)이 ‘부동산 소유’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논란은 최근 방송된 tvN 예능 <온앤오프>에서 시작됐다. 해당 방송에서 혜민 스님은 남산서울타워가 보이는 2층짜리 자택을 공개했다. 이날 방송에서 혜민 스님은 “(나는) 절에서 살지 않는다. 도시에서 지내는 스님들은 상가 건물 한쪽의 사찰에서 지낸다. 너무 좁아서 따로 숙소를 마련해 생활한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혜민은 고가의 전자 기기를 사용하는 모습, 명상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사로 출근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혜민 스님의 생활이 불교의 ‘무소유’와 대치된다고 지적했다.
방송 직후 한 매체는 혜민 스님이 2018년 3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 건물(단독주택)을 불교 단체에 매도했다고 보도했다. 또 해당 매체는 거래 당시 단체의 대표자 이름이 혜민 스님의 속명(Ryan Bongsuk Joo)과 같다며, 혜민 스님이 여전히 이 건물의 실소유주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혜민 스님의 건물주 의혹이 제기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3월 방송인 홍석천이 자신의 SNS에 코로나19에 따른 임대료 인하 릴레이 운동인 ‘착한 임대료를 응원합니다’라는 게시물을 올리면서 다음 주자로 가수 박혜경과 혜민 스님을 지목해 한차례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당시 혜민 스님은 오히려 자신이 건물에 임대료를 내면서 지낸다고 부인해 논란이 일단락됐다.
이번 논란은 혜민 스님이 개발에 참여한 명상 앱 ‘코끼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혜민 스님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한국 특파원 출신인 다니엘 튜더와 명상 앱 ‘코끼리’를 출시하는 등 명상 아이템으로 사업을 개시한 바 있다. 2019년 8월에 출시된 이 앱은 개설 일주일 만에 가입자 1만 명을 넘겼으며 1년 만에 누적 가입자 33만을 돌파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명상을 매개로 활동했던 혜민 스님에 대한 신뢰 덕이었다. 그러나 혜민 스님이 정작 승려로서 안거 수행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앱 이용자들의 실망감이 커졌다. 안거는 승려가 여름, 겨울철에 각 석 달간 외부와의 연결을 단절한 채 참선 수행에 정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논란이 거세지자 혜민 스님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혜민 스님은 “이번 일로 상처받고 실망하신 모든 분께 참회한다. 저는 오늘부로 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대중 선원으로 돌아가 부처님 말씀을 다시 공부하고 수행 기도 정진하겠다”라며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많은 분께 불편함을 끼쳤다. 승려의 본분사를 다하지 못한 저의 잘못이 크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초심으로 돌아가서 부족했던 저의 모습을 돌아보고 수행자의 본질인 마음공부를 다시 깊이 하겠다”라고 활동 중단 소식을 전했다.
‘힐링 멘토’ 혜민에 대한 배신감
혜민 스님의 논란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불교 이치를 강조해온 데 반하는 모순적인 행동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 불교를 비판해온 ‘푸른 눈의 승려’ 현각 스님은 혜민 스님을 향해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현각 스님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처의 가르침을 팔아먹었다” “지옥으로 가고 있는 기생충” “사업자, 배우일 뿐 진정한 참선 경험이 없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또 이번 논란을 다룬 언론 보도를 공유하며 “(혜민 스님은) 연예인일 뿐. 일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는 도둑놈일 뿐이다”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현각 스님은 1999년 자신의 불교 입문 계기와 수행담을 적은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6년 외국인 행자 교육의 문제점을 비롯해 한국 불교의 기복 신앙화를 지적하며 한국을 떠났다.
혜민 스님을 향한 비판은 불교계 밖으로 번지고 있다. 유튜버 크로커다일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혜민 스님의 논란을 언급했다. 그는 “혜민은 욕망의 결정체”라며 “자신은 단 한 가지도 내려놓지 않으면서 남들 보고는 왜 다 포기하라고 하냐”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청년들에게 위로를 건넸던 과거 혜민 스님의 말을 언급하며 모순적인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논란으로 인해 과거 혜민 스님의 발언까지 재조명되고 있다. 혜민 스님은 지난 2012년 ‘워킹맘’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맥락의 글을 올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혜민 스님은 자신의 트위터에 “어린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은 맞벌이 부부에게 방법이 있다. 엄마가 새벽 6시부터 45분 정도 같이 놀아주는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를 두고 유명 칼럼니스트 임경선 씨는 “엄마들이 잠을 포기하면서까지 육아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가 있냐”는 내용으로 혜민 스님과 맞섰다. 이에 많은 워킹맘의 공감이 이어졌고, 혜민 스님은 결국 사과의 글을 올렸다.
“모든 활동 내려놓겠다”
혜민 스님이 모든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그가 진행하는 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명상 앱 ‘코끼리’와 ‘마음치유학교’에 혜민 스님의 영향력이 컸던 만큼 향후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 이라는 우려에서다.
마음치유학교는 2015년 혜민 스님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줄 목적으로 개설한 치유 시설이다. 현재 서울과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과 비대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강의를 맡고 있는 강사 수만 70여 명에 이를 만큼 이용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음치유학교 관계자는 “현재 혜민 스님 관련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학교 측에서 발표할 수 있는 공식 입장은 없다”며 “스님이 공식적으로 활동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에 학교 프로그램에 일단은 손을 떼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명상 앱 ‘코끼리’ 이용자들의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 ‘코끼리’ 평가·리뷰난에는 “앱 서비스 중단을 하면 환불이 되는 건가” “명상을 빌미로 돈벌이를 한 건가” 등 비판과 향후 서비스에 대한 문의가 잇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