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황찬란한 조명이 번쩍이는 야시장을 오가며 길거리 스낵을 하나둘 사서 먹는 것은 대만을 대표하는 관광 상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만엔 야시장 문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만 사람들에겐 오후에 차를 마시는 문화도 있다. 오후 3~4시가 되면 가정에서, 또는 회사원들이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오후에 마시는 차’를 뜻하는 ‘시아우차(下午茶)’ 문화는 영국에서 시작해 홍콩, 광동 지역을 거쳐 대만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애프터눈 티 하면 3단 트레이에 샌드위치, 쿠키, 초콜릿 같은 아기자기한 핑거푸드가 홍차와 함께 나오는 것을 떠올리지만 대만의 시아우차는 조금 다르다. 녹차, 우롱차를 마시는 전통 방식부터 홍차 또는 커피와 함께 달콤한 케이크나 푸딩을 곁들이는 서양 방식까지 모두 아우르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회사에서 먹는 간식 역시 시아우차라 부른다는 점이다. 대만의 회사들은 직원 복지의 일종으로 매주 금요일 또는 한 달에 한 번 오후 간식 타임을 갖는다. 이때 차 같은 음료와 함께 대만의 대표 간식인 지파이 또는 유행하는 스낵 등을 곁들여 먹는다. 쉽게 말해 ‘회사 찬스’를 쓰는 셈이다. 대만 사람들이 가장 활발히 사용하는 SNS인 페이스북에 ‘회사 시아우차’를 검색하면 상자에 잔뜩 담기거나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정리된 간식 사진이 나온다. 간식의 종류부터 양까지 천차만별이다.
대만 사람들에게 애프터눈 티 디저트로 인기 있는 메뉴로 ‘지단까오’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풀빵과 비슷한 간식으로 고양이 손, 달걀, 꽃 등 다양한 모양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빵 속에는 커스터드 크림, 초콜릿, 치즈 같은 다양한 필링이 들어 있어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고구마로 만든 ‘띠과구’ 역시 대만의 인기 주전부리 중 하나. 쫀득거리는 느낌이 우리나라의 찹쌀 도넛과 많이 닮았다. 더운 나라답게 차가운 디저트도 많이 먹는다. 흑설탕을 끓여 달달하게 만든 물에 순두부, 타피오카 젤리를 넣어 만든 ‘도우화’나 빙수가 대표적인 메뉴다.
미식을 좋아하는 대만인들에게 애프터눈 티는 중요한 문화 중 하나다. 하지만 대만 사람들에게 시아우차는 사실 간식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집이든 회사든 장소에 상관없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변의 대만인들에게 시아우차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가장 먼저 돌아온 대답은 간식이나 차가 아닌 바로 ‘휴식 시간’이었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거나 직장 동료, 가족들과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며 진정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이다. 바쁜 삶 속에서 ‘잠시 멈춤’을 외치는 것, 그것이 대만인들의 오후 차 문화 속에 숨겨진 진짜 의미는 아닐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글쓴이 유미지
<코스모폴리탄> <M25> 등의 매거진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하며 다양한 분야에 대한 글을 썼다. 대만에서 사업하는 남편을 따라 삶의 터전을 옮긴 뒤, 이곳저곳에 글을 기고하며 디지털 노매드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