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도 드라마 촬영 중이라 만나기 힘들어졌어요.
대본도 외워야 하고 각자 할 일이 바빠서 이야기는 많이 못 나누지만 항상 격려하고 응원해주고 있어요.
대중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 배우와 스태프에게 사랑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더 좋은 사람이 돼야겠죠?
배우 나혜미를 만났다. 날카로운 눈매 때문에 어쩐지 도도할 것 같다는 편견은 첫인사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나날이지만 나혜미는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시종일관 웃는 얼굴에 질문 하나에도 신중한 답변을 전했다. 유려한 언변은 아니지만 꾸밈없는 솔직담백함이 매력이었다. 인터뷰가 익숙지 않아 죄송하다는 말마저도 딱 그녀다웠다.
요즘 나혜미의 최대 관심사는 KBS1 새 일일드라마 <누가 뭐래도>다. 그동안 주말극, 일일극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토록 큰 배역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주연배우로서 장편 드라마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과 걱정도 있었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시청자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이 더 앞섰다.
<누가 뭐래도>는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겪은 자녀들의 성장을 담은 가족드라마. 나혜미는 극 중 한부모가정에서 자라 새아빠를 맞이하는 기상캐스터 '김보라' 역을 맡았다. 달달한 러브라인은 물론 가족 간의 현실 케미까지, 그동안 보여준 적 없는 다채로운 매력을 선사할 예정이다.
"반응이 어떨지 두렵고 긴장돼요." <누가 뭐래도> 첫 방송을 앞두고 진행된 <우먼센스>와의 만남에서 나혜미는 잔뜩 상기된 모습이었다. 여전히 신인 같은 풋풋한 에너지와 정제되지 않은 열정을 발산하는 그녀. 첫인상만으로 쉽게 속단할 수 없는 담백한 여자 나혜미가 궁금해졌다.
새 드라마로 복귀했어요. 첫 방송이 이틀 남았는데 아직 얼떨떨해요. 시청자 반응이 어떨지도 궁금하고요. 8월 말에 촬영을 시작해 지금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아직은 조금 더 현장에 적응해야 할 것 같아요. 주말극과 일일극을 모두 경험해봤는데도 갈 길이 먼 기분이에요.(웃음) 전작들보다 제가 맡은 역할이 커서 어떻게 이끌어나가면 좋을지 고민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무엇보다 현장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전작들이 전부 시청률이 좋았어요. KBS2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 KBS1 일일드라마 <여름아 부탁해> 모두 시청률이 잘 나온 편이었어요.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에 제가 출연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더 감사한 마음이 커요. 저로서는 굉장한 행운이었죠. 그때 인연을 맺은 임예진 선배님, 유이 언니와도 여전히 연락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누가 뭐래도>가 끝난 뒤에도 제가 많은 것을 배우고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번엔 기상캐스터로 변신했어요. 날씨 예보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목소리잖아요. 금세 따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진짜 기상캐스터처럼 보이고 싶어서 열심히 연습하는 중이에요. 펜 물고 발음 교정도 하는데 쉽지 않아요. 실제 기상캐스터나 아나운서들은 발음이나 발성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연습하면서 그들을 더욱 존경하게 됐어요.(웃음)
<누가 뭐래도>에서 나혜미의 어떤 모습을 기대하면 좋을까요? 김보라 라는 캐릭터가 상당히 통통 튀고 재미있어요. 가족드라마다 보니 구성원들끼리의 조화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을 거예요. 특히 극 중 김보라와 '신아리(정민아)'의 자매 케미를 기대해주세요. 제가 실제로는 남동생뿐이라 드라마에서 자매가 생긴 게 좋아요.(웃음) 아직 시작 단계라 큰 진전은 없지만 러브라인도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연말까지는 계속 드라마 촬영을 하게 될 텐데 별 탈 없이 무사히 마치는 게 목표예요. 비판도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달게 받을 테니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공교롭게 남편 에릭도 10월에 신작으로 함께 복귀하게 됐어요(에릭은 MBC 새 드라마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 출연한다). 남편이 저보다 먼저 촬영을 시작했는데 최근엔 저도 촬영 빈도가 잦아져서 만나기가 힘들어졌어요. 집에 오면 씻고 자기 바빠서 도통 얼굴 볼 시간이 없더라고요.(웃음) 대본도 외워야 하고 각자 할 일이 바빠서 이야기는 많이 못 나누지만 항상 격려하고 응원해주고 있어요.
서로 작품을 골라주기도 하나요? 작품 선택에 대해서는 딱히 상의를 하지 않아요. 지금은 작품을 고르고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해 저에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남편도 마찬가지예요. 소속된 회사가 다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서는 본인 스태프와 우선적으로 상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시나리오를 읽고 "재미있다" 정도의 피드백은 해요.
2017년에 결혼했는데 결혼 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결혼 전에는 부모님과 살았어요. 물론 그때도 편안하고 행복했지만 결혼 후에 확실히 정서적으로 안정된 느낌이 들어요. 남편과 같은 직종에 있다 보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힘들 때는 서로 고민 상담도 해줘요. 작품을 시작하면 직장인처럼 출퇴근 시간에 맞춰 집에 올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자연스럽게 집안 관리에 소홀해질 때가 있는데 별말 없이 서로 이해해주고 챙겨줄 수 있다는 점도 좋아요. 그동안 작품이 겹친 적이 거의 없어서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울 땐 그 빈자리를 채웠는데 이번에는 동시에 바빠져 챙겨주기가 쉽지 않아요.
2세 계획은 없나요? 아직 없어요. 당장은 주어진 일에 충실하려고 해요. 2세나 육아가 저에게 잘 와닿지 않더라고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앞으로 남편과 잘 상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웃음)
일상이 베일에 가려 있어요. SNS도 잘 안 하죠? SNS 계정이 있긴 한데 잘 안 해요. 사진을 잘 안 찍는 편이기도 하죠. 집에서 쉴 땐 너무 편안하게 늘어져 있다 보니 도저히 제 얼굴을 보여줄 수가 없어요. 요즘은 자연스러운 모습도 사랑해주신다지만, 상투 튼 모습을 어떻게 공개하겠어요.(웃음) 쉬는 날엔 강아지 2마리와 함께 놀거나 간식을 먹으면서 넷플릭스를 봐요. 그게 제 최고의 '소확행'이에요.
피부가 상당히 좋으세요. 특별한 뷰티 팁이 있나요? 요즘 촬영하면서 얼굴에 트러블이 자주 생기더라고요. 유명한 뷰티템부터 저렴하더라도 성분이 좋기로 유명한 화장품까지 다양하게 써봤는데 효과를 거의 못 봤어요. 기본에 충실해보자는 생각에 요즘에는 시간을 들여 2중 세안을 해요. 보통 일 끝나고 집에 오면 피곤해서 꼼꼼히 세안하기 힘들잖아요. 저는 20분 정도 시간을 할애해요. 피부를 문지를 때도 최대한 살살하고요. 평소에는 음료수나 커피 대신 의식적으로 물을 자주 마셔 수분 섭취를 충분히 하고 아침에는 유산균과 비타민을 먹어요. 그러다 보니 피부가 좋아지더라고요.
평소엔 어떤 취미를 즐겨요? 요즘 면역력이나 체력에 부쩍 관심이 늘어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아직 바벨을 다 들지도 못하면서 단백질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 '헬린이(헬스+어린이)'입니다.(웃음) 식단 조절까지 병행하기에는 벅차서 기구를 이용한 근력운동 위주로 해요. 유튜브에 다양한 운동법이 소개돼 그걸 참고하는 편이에요. 원래 운동을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막상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재미있어요. 꾸준히 하는 제 모습이 뿌듯하기도 해요.(웃음)
쉴 때 친구들도 자주 만나나요? 원래 자주 만났는데 올해는 코로나19와 드라마 촬영 때문에 거의 못 본 것 같아요. 술을 즐기지 않아 조용한 곳에서 커피 마시며 수다 떠는 걸 제일 좋아해요. 학교 다닐 때부터 알고 지낸 비연예인 친구가 많아서 만나면 수다가 끊이질 않아요. 결혼한 친구도 있고 아직 일하는 친구도 있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아요. 서로 근황을 나누고 추억 얘기를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요.
친구들에게 고민 상담도 자주 하나요? 사실 요즘에는 딱히 고민이 없어요. 제가 멀티가 안 되는 스타일이라 작품할 때는 온전히 작품에 대한 생각만 하거든요. 지금도 <누가 뭐래도>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자 숙제예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고민해보고 그래도 안 풀리면 감독님이나 상대 배우에게 조언을 구하죠.
결혼 이후에 작품 활동을 더 활발히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원한 건 아니었지만 한때 공백기가 길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 시절에는 작품에 대한 갈망이 상당히 컸어요. 다른 인기 드라마들을 모니터하면서 빨리 작품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하지만 연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가 공평하게 기회를 얻는 건 아니잖아요. 그 시절에는 제가 배우로서 부족한 면이 많았기 때문에 소중한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 같아요.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 마음이 울적하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그저 하루하루가 행복해요. 굵직한 장편 드라마에 연달아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하죠.
공백기 때는 무엇을 하면서 버텼나요? 가만히 있으니 사람이 무기력해지고 처지더라고요. 그래서 중국어, 기타 등 다양하게 배웠어요. 한 가지를 진득하게 배운 게 아니라 제대로 마스터한 건 없어서 사실 뭘 배웠다고 말 꺼내기가 민망해요.(웃음) 그래도 그 당시에는 즐거운 경험이었고 공백기를 버틸 수 있는 활력이 됐어요.
2001년 데뷔예요.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뭘까요? 작품을 하나 끝내고 돌이켜보면 촬영을 했던 모든 순간이 저에게 큰 즐거움으로 남더라고요. 분명 힘들거나 한계에 부딪힐 때도 있었지만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에요. 그 느낌 때문에 다음을 이어갈 힘을 얻는 것 같아요. '내가 이런 연기가 부족했구나.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올바르게 잘 나아가고 있는지, 배우는 작품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잖아요. 그 기회를 얻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온 게 아닐까 생각해요. 잘하고 싶은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요.
아직도 나혜미 하면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요. 13년 전 작품인데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게 신기해요. 유튜브에도 관련 영상이 자주 올라오고 최근까지 TV로도 방영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테도 잘 봤다고 얘기해주는 분이 간혹 있어요.(웃음) <거침없이 하이킥> 꼬리표가 싫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저는 너무 영광스러워요. 촬영 당시에도 즐거웠거든요. 다만 신인 시절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게 부끄러울 뿐이죠.(웃음) 다시 찍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회가 된다면 <거침없이 하이킥> 같은 작품도 꼭 도전해보고 싶어요.
배역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새침하고 도도하거나 화려하게 꾸민 역할을 많이 해왔어요. 앞으로는 옆집 언니 같은 털털하고 편안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전혀 꾸미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내추럴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의사 같은 전문직 연기도 해보고 싶고요. 오랜 시간 스크린에서 인사를 못 드렸으니 영화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로맨스든 장르물이든 코미디든 상관없어요. 기존 나혜미의 모습에서 벗어난 색다른 작품이라면 전부 좋아요. 무엇이든 열심히 임할 준비가 됐습니다.(웃음)
나혜미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란 무엇인가요? 대본에 있는 느낌을 잘 표현하고 시청자에게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나아가 대중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 배우와 스태프에게 사랑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더 좋은 사람이 돼야겠죠?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잘해보자는 말로 저를 북돋워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