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되더라도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한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외교계 관계자)
11월 3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을 놓고 외교계는 물론, 정치·경제·산업계 모두 결과를 가늠하느라 정신이 없다. 지난 2016년 대선 때는 사전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집계되면서 힐러리의 승리를 점쳤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를 마주해야 했기 때문에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더 높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도 다들 신중론으로 무장한 모양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다들 하나같이 입을 모아, “너무 다른 트럼프와 바이든 둘 중 누가 승리하더라도 미국 내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얘기한다.
금수저에서 셀럽으로, 셀럽에서 재선을 노리는 대통령으로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기 전, 트럼프 기업의 대표이사 회장을 지낸 기업인이자 준연예인에 해당했던 금수저 출신 셀럽.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자 공화당 대선 후보를 설명하기 가장 적절한 설명이다.
1946년 부동산 재벌인 프레드 트럼프의 넷째로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포덤 대학교에서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스쿨 경제학과로 편입해 졸업한 후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는 길을 선택했다. 그 후, 그는 그냥 성공한 금수저가 아니라 셀럽의 삶을 선택했다. 대통령 출마 전에 베스트셀러 작가, 영화 카메오 출연(<나홀로 집에2>) 등으로 화제를 모은 그는 2004년부터 NBC에서 방영했던 서바이벌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견습생)>를 진행하면서 미국 전국구 스타로 거듭난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어프렌티스>는 연봉 25만 달러의 트럼프 계열사 인턴십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 과정을 그린 일종의 직업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그는 지금도 유행하는 “너는 해고야(You’re fired)”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그 후, 70세의 나이에 로널드 레이건에 이은 미국 역대 두 번째 셀럽 출신 대통령이 된 그. 나이로는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며,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보유 자산이 많은 대통령이다. 정확한 재산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 언론이 추산하는 트럼프의 자산 규모는 4조원에서 12조원가량. 대통령 당선 전 정계에 아예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던, 공직 경험이 없는 첫 미국 대통령이기도 하다.
첫 대선 때는 솔직함이 당선의 무기였다.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내세웠던 그에게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내 백인 유권자들은 강한 지지를 보냈다. 도시와 지방 간 도농 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는 미국에서 소외된 지역의 백인을 대변하겠다는 전략 속에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그. 이번 대선에서도 ‘Keep America Great!(미국을 계속 위대하게!)’를 표어로 전통적인 백인 남성 지지층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중국과의 무역 갈등에서 승리했다는 점, 미국·멕시코·캐나다(USMCA) 협정을 타결한 점 등이 최대 업적으로 꼽힌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통적인 우방 국가들에 방위비 분담금을 대거 부담시키는 등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업적이다. 하지만 셀럽 시절, 방송에서 ‘솔직함’으로 비쳤던 부분들이 대통령이 되면서 예측 불가능과 무능력의 맥락으로 지적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을 받고도 공개 행사를 열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참석한 모습 ▼코로나19 확진에도 퇴원을 강행하며 슈퍼맨의 상징인 ‘S’ 문양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자신이 강한 사람이라는 점을 과시하려 한 것 등은 ‘퍼포먼스’에 치우친 트럼프 대통령을 잘 보여준다는 비판이다.
덜 알려진, 하지만 역시 고령의 ‘바이든’
트럼프가 셀럽의 길을 걸었다면 트럼프보다 4살 많은 조 바이든(1942년생)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는 공직의 삶으로 점철됐다.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난 바이든은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뉴캐슬 의회 의원으로 선출돼 공직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만 29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그는 공화당 후보를 꺾고 당선돼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중도 포기 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부통령)로 지명됐다. 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끈끈한 유대 관계가 브로맨스(브라더와 로맨스를 합한 말)라고 불리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탄탄한 실무 경험이 단연 장점이다.
바이든은 연방 상원의원 6선 출신으로 36년간 의정 생활을 하다 부통령 자리에 오른 정치 거물이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8년간 부통령으로 재직하며 외교와 경제 관련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백악관 회의 때 끝까지 남아 있는 멤버였으며, 일일 브리핑과 중요 회의가 있으면 두 사람은 하루에 4~6시간 같이 보내기도 했다.
오바마가 주로 바이든에게 아이디어를 내도록 부탁하는 편이었는데, 오바마 대통령 시절 이뤄진 정책들에 참여했다는 점은 업적으로도 꼽힌다. 실제 조 바이든 대선 후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하며 유연성 있는 외교적 태도를 시사하는 등 벌써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고 있다.
단점은 ‘잇따른 말실수’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미국인 사망자 수가 2억 명이라고 말했다가 트럼프 대선 캠프 측의 조롱을 받아야 했다. 미국의 코로나 사망자는 20만여 명인데 2억 명이라고 터무니없는 숫자를 제시한 것. 미국 인구가 약 3억 2,800만 명이므로 바이든의 말대로라면 미국 인구의 3분의 2가 숨졌어야 했다. 이는 처음이 아니기에 지적이 잇따랐다. 지난 6월 펜실베이니아주 유세에서도 1억 2,000만 명을 넘었다고 잘못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후보가 자신보다 더 고령인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어눌한 연설을 지적하며 치매 의혹을 내놓다가, 최근 TV 토론회를 앞두고는 “그의 총기가 되살아났다. 정신을 맑게 하는 약을 먹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 극우 VS 극좌의 갈등? ‘충돌 우려’
그리고 진짜 문제는 ‘극’으로 치닫는 트럼프 지지자와 바이든 지지자 간의 갈등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9월 27일(현지 시간) 미국인들의 이 같은 두려움을 전하며 ‘전쟁처럼 될 것이다(It’s going to be like war)’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특히 트럼프·바이든 지지자 모두 자신이 미는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불복해 총격전 등 국내 테러를 벌이고, 이에 상대방 진영도 반격에 나서면서 ‘내전’에 가까울 정도의 혼란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담았다.
지금까지 여론조사 결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리하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보다 10%포인트 가까이 앞선다는 여론조사가 다수다. 정치 전문 웹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가 9월 24일부터 10월 9일까지 미국에서 실시된 대선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를 종합한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2.1%로 51.9%를 기록한 바이든 후보에게 9.8%포인트 뒤졌다.
가만히 있을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급증할 ‘우편투표’를 인정할 수 없다며 벌써부터 대선 불복을 시사하고 있다. 우편투표는 원래 부재자를 위해 투표소에 가지 않고 우편으로 투표하도록 한 제도이다. 2016년 대선 때 30%대 중반까지 올랐던 우편투표 참여율은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40%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 지역에 사는 사회 활동이 왕성한 젊은 층이 주로 하는 우편투표는 민주당에게 유리하다는 게 중론. 이에 트럼프는 우편투표가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며 대선 불복을 시사했다. 특히 첫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는 백인 우월주의 폭력 조직인 ‘프라우드 보이즈’를 향해 “물러서서 대기하라(Stand back and stand by)”라고 말하는 등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모양새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패배할 경우, 흑인들을 중심으로 한 폭력 시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 경찰에 의한 흑인 사망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미국에선 항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진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경찰 측을 옹호했고 이에 흑인 시위는 약탈과 방화를 저지르는 등 더 폭력적으로 악화됐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 확정 시, 흑인 폭력 시위와 같은 대혼란이 다시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미국 흐름에 정통한 외교 관계자는 “물리적 충돌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 대선 이후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할 경우 대선 결과 불복에 따른 후폭풍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전 세계 외교뿐만 아니라 주식과 같은 경제 시장에도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