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법 남자 냄새가 난다고 표현해야 할까? 항상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아빠’라는 로망이 실현돼가는 요즘이다. 나는 녀석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 나이보다 훨씬 앞서가는 선물을 해주곤 했다. 축구공으로 월드컵 공인구를 사준다거나 농구공으로 KBL 공인구를 사주면서 말이다.
주안이의 입장에선 다소 버거운 선물일지라도 내 기준 최고 수준과 컨디션의 선물을 해주고 싶은 욕심에 가끔 오버 아닌 오버를 하곤 했다. 나의 이런 깊은 뜻도 모르고 주안이는 공들을 자기 방에 모셔놓고 쳐다보는 데 만족하거나 가끔 이리저리 굴리며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노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아직은 완벽하다고 볼 수 없지만 주안이가 적재적소에 공을 다루며 나와 남자 대 남자로 스포츠를 즐기기 시작하는 등 요즘은 꽤 남자 냄새 물씬 나는 9살 어린이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땀이 많은 아이라 격렬한 운동 후 땀에 흠뻑 젖은 옷을 빨래통에 넣을 때면 특유의 땀 냄새가 풍기곤 하는데, 이 냄새가 가족적이고 친밀하게 느껴져 주안이 옷에 코를 대고 킁킁거릴 때가 많다. 오늘은 얼마나 우리 아들이 열심히 운동하고 땀을 흘렸나 확인이라도 하듯 주안이가 벗어놓은 옷을 들고 몰래 체취를 맡는 것도 하나의 작은 습관이 됐다.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최대한 주안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해 질 무렵 놀이터에 나가 축구를 할 때가 있다. 우리가 재미있게 놀고 있으면 동네 또래 친구들이 하나둘씩 주변에 모이곤 하는데 언젠가부터 주안이가 나와 놀다가도 친구들을 기다리는 눈치가 느껴졌다. 오늘도 역시다. 함께 축구공을 주고받으며 놀고 있는데 녀석이 나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멀리서 놀고 있는 친구들에게 자꾸만 눈길을 주는 것이 아닌가.
섭섭한 마음이 들던 찰나, 내 속도 모르는 주안이는 공을 가지고 친구들에게 달려가 자연스럽게 패스하며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녀석의 친구에서 짐꾼으로 전락했고 주안이는 그 어느때 보다 승부욕 넘치는 상남자다운 모습으로 친구들과 축구를 했다.
공놀이를 한참 즐긴 아이들은 킥보드를 타며 놀기 시작했고 그제야 주안이는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 “아빠, 우리도 집에 킥보드 가지러 가자”고 손을 잡아당겼다.
아들과의 축구 시간만 기다렸던 나는 “오늘 아빠랑 축구하기로 했는데 공 더 안 차도 되겠어?”라고 물었지만 녀석은 눈을 반짝거리며 “응, 오늘 아빠한테 공 높이 띄우고, 세게 차는 거 보여줬으니까 만족해. 지금은 친구들이랑 킥보드 타고 싶어”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마치 내가 친구들보다 후순위로 밀려난 것 같아 울컥했지만, 자기가 잘하는 것을 아빠에게 자랑하고 싶어 했을 모습이 생각나 녀석이 너무 고맙고 예쁘게 느껴졌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신나게 킥보드를 타고 있는 주안이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해맑게 웃는 녀석을 보며 이제 내게서 한 걸음 떨어져도 세상에 잘 적응하고 즐길 줄 아는 남자가 됐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에선 감동이 밀려왔다. 나를 잊지 않고 중간중간 눈을 맞추며 웃어주는 아들의 모습에 ‘심쿵’하기도 하고 말이다.
아들을 통해 나는 오늘도 한 뼘 성장했다. 주안이로 인해 나의 세계 역시 한층 더 풍성하고 깊어졌달까. 그저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아들이 있어 행복한 하루다. 사랑해, 손주안!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