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주부 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하루아침에 자신 명의의 모든 통장에서 돈이 인출되고, 가입한 보험을 담보로 수천만원의 보험사 대출금이 지급됐던 것. 쿠팡에 있는 포인트 머니는 물론 각종 사이트의 마일리지 점수까지 모조리 사라졌다. 놀란 마음에 경찰서로 달려간 A씨는 그날 저녁, 범인으로 지목된 용의자의 정체를 전해 듣고 더더욱 충격에 빠졌다. 용의자는 바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8세, A씨의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털어놓은 사건의 전말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같은 반 친구 B군이 엄마의 휴대전화와 신분증, 계좌 비밀번호만 알아오면 즉시 1,000만원을 입금해주기로 했다는 것. A씨의 휴대전화와 신분증, 계좌 비밀번호를 전달한 아들은 그 자리에서 1,000만원을 전달받았고 이후 A씨는 총 7,400만원가량의 피해 사기를 당하게 됐다. 아들이 그토록 거금이 필요했던 이유는 오직 하나, 명품 신발을 사기 위해서였다.
애미론, 애비론, 이모론, 누나론…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간 일명 ‘부모론’은 성인 가족 중 누구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대출을 받느냐에 따라 그 이름이 달라진다. 부모님의 휴대전화를 이용하면 ‘애미론’ ‘애비론’, 성인인 친누나나 친오빠 명의의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누나론’ ‘오빠론’이 된다.
대출 수법은 교묘했다.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성인 가족 중 누군가의 휴대전화와 신분증을 전달하면 범죄 일당은 금융기관 비대면 서비스를 통해 공인인증서를 발급받고 대출을 받거나 마이너스 통장을 발급받았다. 계좌에 있는 돈을 모조리 대포 통장으로 이체해 빼돌린 것은 물론 해당 휴대전화에 원격 조종 앱을 설치해 현금화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자신들의 대포 통장 명의로 이전했다. 원격 조정으로 대출 관련 문자가 전송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등 치밀함도 보였다.
실제로 계좌 잔액이 모두 없어지고 대출이 4건가량 이루어졌음에도 한 달이 넘도록 사실을 모른 채 일상을 지낸 학부모의 경우도 있었다.
범죄 일당은 일부 금융기관이 신분증 실물이 아니라 사진만 있어도 공인인증서 발급이나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에게는 즉시 고액의 대출금을 쥐어주며 친구나 선후배를 데려오면 더 큰 금액을 주겠다고 현혹시키며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해자 일당과 피해자를 연결해주는 ‘토스 실장’, 일명 ‘토실이’라는 역할도 생겼다. 피해자로 시작해 토실이가 됐다는 이들 역시 미성년자로, 돈이 필요한 청소년에게 접근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이어주고 고액의 소개비를 지급받았다.
실제로 SNS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부모론’의 광고 글에는 최소 3,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준비물은 역시 부모의 신분증과 휴대전화, 계좌 비밀번호가 전부다.
피 같은 돈, 별풍선이 되다
지난 7월 7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부모론’ 사기 혐의로 주범 C씨 등 5명을 구속하고 10명을 불구속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는 최소 22명 규모로 피해 금액은 총 7억 5,000여만원에 달한다. 피해자 중에는 1억원 이상을 사기당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월 17일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해당 사건을 비중 있게 다뤘는데, 일명 ‘김왕관’이라 불리는 주범 C씨가 사기 금액을 인터넷방송 BJ들에게 별풍선으로 대거 사용했다고 보도하며 충격을 더했다.
방송에 따르면 C씨는 BJ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인물로, 평소 고액의 별풍선 선물로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VIP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그 외에도 가해자 일당은 주로 유흥비로 피해 금액을 탕진하며 검거 당시 무일푼 수준으로 붙잡혔다.
방송을 통해 안타까운 사연들도 여럿 등장했다. 막노동을 하며 홀로 두 남매를 키워온 아버지 D씨는 여전히 자신의 전 재산이 왜 사라졌는지, 어떻게 5,000만원이 넘는 빚더미에 앉게 된 건지 모르겠다며 정확한 피해 사실도 인지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피해자 중에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일당과 공범으로 검찰에 기소된 경우도 있었는데, 이들은 피해 금액을 만회하기 위해 모집책으로서 주변 친구들을 가해자 일당에 소개하고 대출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날로 진화하는 ‘청소년 범죄’
검거된 가해자 일당은 15세 중학생을 비롯한 미성년자가 대부분이었다. 날이 갈수록 흉포해지는 청소년 범죄에 강력한 처벌은 물론 혁신적인 교육 대안에 대해서도 활발한 여론이 형성됐다.
현행법상 만 10세 이상~14세 미만은 촉법소년으로 분류돼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 만 19세 미만 소년범은 소년법에 따라 일반 형법보다 기소 여부나 처벌 수위가 약하다는 논란이 있다.
실제로 전체 소년범의 90% 가까이가 불기소처분을 받거나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범죄가 높은 재범 가능성을 가진 만큼 강력범죄 엄벌을 위해 시대에 알맞은 혁신과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여론에 휩쓸린 무조건적인 소년법 폐지가 답이 아니라 소년원을 선진화하고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며 소년원생의 재사회화를 위한 처우 개선과 교육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
현재 소년 보호처분 중 가장 무거운 처분은 10호다. 반대로 청소년 범죄자 역시 성인범 못지않게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선 10호 처분이 최대 2년간 소년원에서 보호하는 처분이라는 점을 들어 현대 청소년의 범죄에 비해 너무 약한 처사라며 ‘소년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항간에는 청소년이 오히려 범죄를 저질러도 엄중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큰 죄책감 없이 범죄를 저질러 소년법을 악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년법이 시대에 따른 개정의 필요성을 지닌 것은 맞지만, 분명한 건 청소년의 비행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할지, 처벌 이후 재비행을 막기 위해 어떻게 관심을 기울일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성년자의 범죄가 흉악해지는 요즘이야말로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한 때다.
범죄에 빠진 아이들
요즘 10대 사이에선 성인 범죄 못지않은 강력범죄가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1 수업 시간에도 가능한 ‘불법 도박’
스마트폰을 활용한 청소년의 사행성 도박 게임 중독 문제가 심각하다. 교육청 역시 학교 폭력보다 도박 중독을 더욱 심각한 문제로 인지하고 학생들을 단속할 정도다. 앱을 통해 불법 사다리, 달팽이, 로하이 등 사행성 도박 게임에 대한 접근이 쉽게 이루어져 절제력과 자제력이 미완성된 아이들의 중독성을 자극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는 국내 중고교생 6.4%, 학교 밖 청소년의 경우 21%가 도박으로 인해 문제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청소년 도박은 학교 폭력, 가출, 강력범죄, 사채 등 사회적인 문제로 연결되는 만큼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2 랜덤 채팅 앱으로 ‘성매매’
청소년 성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제적인 대가에 현혹돼 조건 만남의 길에 빠져드는 여성 청소년의 수는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치다. 단순 성매매에서 그치지 않고 성 착취나 성폭력 등 각종 성범죄에 연루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교우 관계가 좋지 않아 온라인상에서 관계를 구축하려는 10대나 가출 청소년 등이 가해자들의 타깃이 되고 있다. 대다수의 랜덤 채팅 앱들은 범죄의 통로로 전락해 여성 회원이 가입하는 즉시 즉석 만남이나 성매매를 제안하는 쪽지가 쏟아진다. 익명이라는 콘셉트상 원활한 단속이 어려운 점도 문제로 꼽힌다.
3 죄의식 없는 ‘중고 사기’
중고 거래 사이트에 고가의 제품을 올리고 돈만 가로채는 방식의 청소년 ‘중고 사기’가 증가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가출 청소년을 중심으로 모습을 드러낸 중고 사기는 불법 도박으로 돈을 잃은 청소년과 조직적인 비행 청소년까지 더해져 범행 방식이 더욱 치밀해지고 교묘해졌다. 특히 10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딩 점퍼나 스마트폰, 이어폰, 명품 운동화 등을 미끼로 범행을 일삼아 또래 피해자를 많이 양성해내는 것이 특징이다. 일부 청소년은 이를 ‘중고나라론’이라고 칭하며 놀이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여 충격을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