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니어 라이프
정영자(가명, 59살) 씨는 아침에 눈을 뜨면 휴대폰부터 찾는다. 밤사이 SNS 게시물에 달린 댓글 반응을 확인하고 놓쳤던 지인들의 근황도 살펴본다. 오전에는 볕이 잘 드는 카페에서 친구들과 브런치를 즐기거나 가끔 등산에 나선다. 오후에는 수채화 수업을 듣고, 귀가 중 백화점에 들러 새로 나온 가을 옷을 구경하기도 한다. 밤이면 요즘 유행하거나 관심 있는 동영상 콘텐츠를 시청하며 잠드는 것이 일상이다.
언뜻 2030세대의 이야기 같지만 은퇴 후 인생을 즐기는 ‘시니어 세대’, 즉 5060들의 이야기다.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삶의 즐거움과 여유를 찾는 이들을 가리키는 ‘그레이네상스(Greynaissance)’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백발을 상징하는 ‘Grey’와 부흥을 뜻하는 ‘Renaissance’를 합친 용어로 5060세대의 전성기를 의미한다.
오늘날 5060 세대는 과거의 노년층으로 볼 수 없다. 시쳇말로 더 이상 ‘뒷방 늙은이’가 아니며 사회적 약자나 소외 계층은 더더욱 아니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의 사업적 번영을 거친 ‘베이비부머’ 세대로, IMF 외환위기를 이겨낸 뒤 지금의 탄탄한 삶을 구축해왔다.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과거 동세대와는 달리 젊고 건강한 삶을 영유하고 있다. 경제력에 소비 욕구까지 갖춘 5060세대가 오늘날 다양한 업계의 주요 고객으로 집중 관리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젊은 세대 못지않게 왕성한 소비 활동을 즐긴다. 이는 수치상으로도 증명된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이 2014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연령별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50~60대의 구매량이 가장 높은 증가율(135%)을 보였다. 60세 이상 고객 구매량은 5년 새 무려 171%나 증가했다. ‘11번가’에서도 2014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50대와 60대 거래액이 각각 93%, 87% 증가했다. 5060세대의 달라진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단순한 쇼핑뿐만 아니라 생산적인 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은퇴했다고 쉽게 사회 활동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녀 양육 등 인생의 과제를 마친 뒤,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자원과 시간을 투자한다. 취미 생활부터 창업 교육까지 이들을 위한 문화센터 강연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으며 시니어 모델, SNS·유튜버 육성 프로그램도 전문화되는 추세다.
나이는 더 이상 흠이 아니다. 흰머리와 주름을 과감하게 드러낸 시니어 모델 김칠두도, ‘키오스크(무인단말기)’ 앞에서 헤매던 인플루언서 박막례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삶의 경험과 내공을 갖춘 5060세대에게 인생 조언을 원하는 젊은 세대도 늘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는 점점 변화할 것이고 청년과 노년의 간극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
‘지구촌 인싸’ 시니어 인플루언서
SNS를 통해 유명해진 국내외 시니어 인플루언서를 주목해보자.
아이리스 아펠 @iris.apfel
15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거느린 ‘SNS 스타’ 아이리스 아펠은 요즘 패션계를 주름잡는 핫한 실버 스타 중 한 명이다. 커다란 뿔테 안경, 화려한 액세서리, 과감한 패션 감각은 요즘 젊은 세대에게도 귀감이 된다. 유니크한 매력으로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다.
린 슬레이터 @iconaccidental
2014년 뉴욕 패션 위크가 열리던 링컨센터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찍힌 사진이 유명해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패션 블로그를 시작한 린 슬레이터는 차별화된 패션 감각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유니클로’ ‘망고’ 등의 모델로도 활동하게 됐다.
오금숙 @greatgrey_oh
척추 수술 이후 흰머리 염색을 포기한 화가 오금숙은 패션 인플루언서로 SNS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고잉 그레이>의 특별 기고문을 통해, 그녀는 그레이 헤어가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패션이자 개성의 표현임을 밝히기도 했다.
여용기 @yeoyongki
부산의 의류 편집 숍 ‘에르디토’의 유명 재단사였던 여용기는 SNS를 통해 패션 인플루언서로 입소문을 탔다. 슈트부터 캐주얼까지 그가 선보인 다양한 코디가 인기를 끌었고 탁월한 감각이 젊은 ‘패션 피플’에게 주목받았다. TV 광고에도 종종 출연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에미코 모리 @1000wave
무려 95살의 인플루언서도 있다. 에미코 모리의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유쾌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에미코의 손녀는 할머니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히고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는 인스타그램에 소개돼 해외로까지 화제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