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 시내에서 서쪽으로 20여 분 달리다 섬강을 건너면 수리봉과 간현봉 사이인 지정면에 복합문화시설인 유알컬처파크가 자리 잡고 있다. 상호명의 '유알(ur)'은 영문 'your'의 약어. 입구에 들어서자 주차장 콘크리트 벽 위로 거무튀튀한 입구와 야산을 배경으로 한 전나무들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유리 거울 벽에 비친 전경이다. 자연이 우선이고, 건축은 조연에 불과한 '자연주의 건축'을 표방한 건축가이자 유알컬처파크 이형호 대표의 산물이다.
"나무와 풀, 흙으로 둘러싸인 자연과 이질적인 콘크리트 건물을 세우고 싶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자연과 일치된 구조물을 세울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하다 자연을 그대로 보여주는 유리 거울 벽을 생각하게 됐지요."
멀리서 보면 건물 형상이 보일 듯 말 듯 하면서 자연을 온전히 담고 있다. 자칫 새들이 거울 벽에 부딪힐 것을 우려해 그 앞에 전나무를 심었다. 전나무는 곤충이 드물고, 나뭇가지가 위로 빼족해 새들이 잘 찾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자연과 어우러진 건물이 아닌 그 건물이 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사운드 포커싱 홀' 때문이다. 이 대표의 독자적인 노하우가 담긴 '소리 건축'의 결정체인 사운드 포커싱 홀은 음향 장비 없이 유리판의 반사로 증폭된 소리를 내는 자연 그대로의 공연 무대다.
Q 오픈한 지 약 2년 된 유알컬처파크가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다.
유알컬처파크는 어떤 곳인가. 유알컬처파크는 전시, 공연, 아카데미, 세미나, 프라이빗 파티, 웨딩 등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약 3만6,300m²(1만 1,000평)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파크 중심부에 위치한 '사운드 스페이스'는 음향 장비 없이 공연이 가능하도록 특수하게 설계된 건축물이다. 야외 중앙무대의 사운드 포커싱에 의한 공명 현상으로 최적의 잔향과 뮤지션들의 순수한 목소리, 원음이 들려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이외 각종 행사와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우드 스페이스, 워터 스페이스, 스카이 가든과 8개의 객실을 갖춘 유알풀빌라 등으로 이뤄져 있다.
Q 여러 공간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가 있는가?
잘 만들어진 복합문화공간은 사람들이 와서 마음 편히 즐기고 쉴 수 있도록 숙박 시설과 식음료 시설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이곳을 찾는 분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숲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문화예술 콘텐츠를 향유하기를 바란다.
'자연주의 건축'은 한마디로 말해 자연이 우선이고, 건축은 조연에 불과하다는 개념이다. 사람이 개입하지 않은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각종 소리가 건축에 우선한다.
Q 사운드 포커싱 홀은 특허협력조약(PCT)이 출원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 공간은 소리가 반사돼 되돌아오는 메아리 현상에서 착안해 설계했다. 탁 트인 잔디밭에 들어선 중앙무대를 둥글게 에워싼 수많은 유리판이 여느 장비 못지않은 훌륭한 소리 증폭기 역할을 한다. 특히 무대를 감싸고 있는 유리 거울 위 스카이 데크에서 소리를 들으면 그 울림이 더욱 깊다고 한다. 유알컬처파크를 찾은 국내외 음악가들이 감탄하는 이유다.
Q '자연주의 건축가'를 표방하고 있다.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 치악산에 터를 잡고 그림 작업을 할 요량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사업을 하다가 다시금 잊고 있던 꿈이 생각났다. 작업실에 설계를 맡겼지만, 만족스럽지 않아 결국 건축 공부를 하고 내 힘으로 건물을 만들었다. 작업실과 카페를 겸한 '소롯길'은 자연주의 건축의 첫 결과물이다. '자연주의 건축'은 한마디로 말해 자연이 우선이고, 건축은 조연에 불과하다는 개념이다. 건축은 지극히 시각적 언어다. 건축가가 펼쳐내는 조형 언어와 감각적인 디자인은 보는 눈을 즐겁게 해준다. 자연주의 건축은 이와 반대다. 사람이 개입하지 않은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각종 소리가 건축에 우선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유알컬처파크에 그대로 적용됐다. 비스듬한 산의 지형, 기존에 자라던 나무를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 건물을 설계했다. 거대한 규모의 건물 외관은 거울로 마감해, 숲속에 건물이 들어가 있는 느낌을 주었다.
Q 소리 건축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대학원에서 건축 설계를 전공할 당시는 너도나도 일본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의 노출콘크리트 방식을 따르던 시기였다. 유행을 좇지 않고 시대를 리드하는 건축을 하고 싶었다. 고민의 해답은 자연주의 건축과 소리 건축이었다. 영화관, 공연장 등 실내에 사용된 건축 소재나 흡음제 등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경험은 누구나 했을 것이다. 이처럼 건축은 소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나는 그것을 건축공학적 언어로 재정립한 것뿐이다. 건축물 자체가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이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Q 이곳을 다녀간 음악가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이탈리아 부파(Buffa, 희극 오페라)의 대가이자 바리톤인 마우리치오 피코니(Maurizio Picconi)는 야외 홀임에도 녹음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소리가 나온다며 감탄했다. 유럽에서 시작된 음악이 한국에서 완성됐다고 말이다. 지난 2월에 진행된 '대관령겨울음악제' 예술감독을 맡았던 손열음 씨 역시 무대에 서보고는 연신 놀라워했다. 사운드 포커싱 홀에서 공연한 클래식 연주가들은 물론이거니와 관객 역시 새로운 소리의 경험에 즐거워했다.
Q 유알컬처파크와 어울리는 공연은 어떤 것일까.
내가 전문가가 아니기에 공연 기획과 관련해서는 트러스트무용단 김형희 단장에게 일임한 상태다. 김 단장에게 요청한 주제는 '소리와 몸짓'이다. 클래식 공연 외에도 춤이나 연극, 서커스가 펼쳐지기도 한다. 9월 5일까지 열리는 '유알아츠페스티벌'이 내가 이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함축시킨 행사가 아닌가 싶다.
Q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이탈리아문화예술협회와 MOU를 맺고, 이탈리아에 소리 건축 기술을 이전하는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소리 건축 기술을 알릴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내년 봄 완공을 목표로 충주 국제학교에 또 하나의 소리 건축 건물이 생길 예정이다. 사운드 포커싱 홀은 모든 예술가에게 열려 있다. 전문적인 음향 장비가 필요치 않으니 누구든 와서 노래하거나 연주할 수 있다. 관객 역시 자연스럽다. 무대와 객석이 구분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이 문화예술을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열린 광장이 되길 바란다. 건축가로서 나의 소임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의미 있고 기여할 수 있는 건물을 만들어내는 일일 것이다.